“제작비 부족·안전 무방비, 4년 전 김광일과 같은 현실 겪는다”
“제작비 부족·안전 무방비, 4년 전 김광일과 같은 현실 겪는다”
김광일·박환성 PD 4주기 “두 죽음에 모든 독립PD가 느낀 ‘억울함’”
“김광일들이 일하는 현장은 그들을 얼만큼 사랑할까…독립PD·작가 산재, 방송사도 책임져야”

열악한 환경 속 EBS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숨진 고 김광일 독립PD의 4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 김광일 PD의 유족과 동료 문화예술인들은 10일 서울 방화동 엠케이스튜디오에서 4주기 추모제를 무관중 온라인으로 열었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고 김광일·박환성 PD를 비롯한 독립PD들과 문화예술인들이 겪는 불공정 관행과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김 PD에 대한 추억을 나눴다.

▲고 김광일 PD의 4주기 추모제가 10일 서울 방화동 엠케이스튜디오에서무관중 온라인으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김광일 PD의 4주기 추모제가 10일 서울 방화동 엠케이스튜디오에서무관중 온라인으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박환성·김광일 PD는 2017년 7월14일(현지 시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EBS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촬영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두 PD는 열악한 환경 속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사고를 당했다. 제작비가 부족해 현지 운전기사 없이 직접 운전해 이동하다 맞은편에서 중앙차선을 넘어 돌진한 차량에 치였다. 이는 박환성 PD가 출국에 앞서 ‘독립PD들이 받은 정부지원금 일부를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요구했다’고 폭로한 직후였다.

EBS는 두 PD의 사망과 제작환경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다 지난해 사건 3년 만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EBS는 올해 가을편성부터 외주 기획안 자유공모로 편성된 프로그램에 대해 본방송 종료 뒤 2년까지 프로그램 수익을 5:5 배분하는 등 내용을 담은 상생협약을 KIPA, 한국독립PD협회와 맺었다.

고 김 PD 배우자이자 방송작가 오영미씨는 “김 PD가 4주기를 맞은 지금 그의 죽음이 묻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씨는 1주기엔 엄청난 화제가 됐고, 2주기까지만해도 그랬다. 그러나 현재는 방송사와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생각에 안타깝다”며 “1년에 한 번이지만 이렇게 이날의 일을 들춰내는 것으로 누군가가 김 PD를 봐준다면 성공이 아닌가. 그로 인해 변화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도 추모제를 열었다”고 했다.

두 PD의 동료였던 복진오 독립PD는 “광일이와 환성이의 소식을 듣고 비통할 뿐 아니라 억울함이 밀려왔다. 나뿐 아니라 모든 독립PD들이 ‘억울함’이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며 “환성이와 함께 인도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모든 현장이 힘들고 고독하고 외롭다. 남아공에 찾아가 (숨진) 그를 데려왔는데, 보는 순간 안타까움이 많이 밀려왔다. 계속해서 열악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슬펐다”고 했다.

▲고 김광일·박환성 PD의 동료 복진오 독립PD가 김광일 PD 추모제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김광일·박환성 PD의 동료 복진오 독립PD가 10일 김광일 PD 4주기 추모제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의 곽헌상 독립PD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의 곽헌상 독립PD가 10일 김광일 PD 4주기 추모제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의 곽헌상 독립PD는 “지금 독립PD들이 겪는 상황이 여전히 김 PD에게 일어난 사건과 흡사하다”며 “지금도 독립PD들은 제작비 부족과 안전 문제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곽 PD는 “나 역시 아프리카 현지촬영을 간 적이 있다. 제작사에서 준 건 통역사 1명의 페이뿐, 운전기사와 길안내, 현지코디 등 필요한 제작비를 모두 거부당했다”며 “함께 일했던 PD는 무릎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 촬영을 강행한 적이 있다. 이후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 치료비를 주지 않아 1년을 쉬어야 했다. 경력 공백으로 한동안 취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곽 PD는 “방송사는 ‘외주 주는 비용과 자체 제작비가 같다’고 주장하지만, 자체 제작할 때에는 PD 인건비는 제한 비용을 말한다. 또 방송사 소속 정규직 PD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촬영에 필요한 기본 인력이 보장된다는 차이가 있다”며 “최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됐는데, 소속이 애매한 PD나 작가가 일하다 사고를 당하면 그가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지를 따져 방송사가 일정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좌담에 참여한 윤수현 미디어스 기자는 “두 PD의 죽음은 EBS가 제작비를 충분히 지급하고 안전대책을 강구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것”라며 “사건이 당장 불거진 뒤 국회가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른바 ‘유효기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추모식을 지켜보는 이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이 나서 국회와 정부에 제도를 개선하도록 압박하고 문제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

김 PD의 동료 연극배우 이기욱씨는 “김 PD라면 ‘이제는 너희가 잘 살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보라’고 하지 않을까”라며 “불공정한 계약 현실이 바뀌고 다른 PD들이 원활하게 작업하는 현실이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2017년 EBS의 열악한 제작환경과 갑질 문제를 고발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고 김광일, 박환성 독립PD의 영결식 영정사진. 사진=금준경 기자
▲2017년 EBS의 열악한 제작환경과 갑질 문제를 고발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고 김광일·박환성 독립PD의 영결식 영정사진. 사진=금준경 기자
▲김 PD의 동료 연극배우 이기욱씨가 10일 열린 김 PD 4주기 추모제에서 김 PD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 PD의 동료 연극배우 이기욱씨가 10일 열린 김 PD 4주기 추모제에서 김 PD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씨는 공연예술계 배우들이 겪는 현실도 언급했다. 이씨는 “최근 트럼펫을 하는 친구의 죽음을 접했다. ‘많이 아프다, 다쳤다, 급한 돈이 필요하다’가 아닌 ‘죽었다’는 한 마디에 작게라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며 “핸드폰비를 내고 월세를 내고 최소한 먹고 살 수입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에 제도적 보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 이사장은 “어떻게 하면 예술문화 전반에 걸친 양극화를 완화하느냐가 고민이다. 상위 1% 문화예술인 외 문화예술인들은 너무나 열악한 현실”이라며 “지원을 위한 예산편성과 재원 마련뿐 아니라 해외와 같이 문화예술 저작물에 대한 ‘사적 복제보상금’ 제도를 들여오도록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추도사에서 “김 PD는 하루를 52시간처럼 일했고, 일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또 다른 김광일들이 일하는 현실은 과연 그들을 그만큼 사랑할까”라며 “EBS가 책임을 인정하고 방송사와 제작사, 창작자가 성과를 나누는 일정의 성과를 이뤘지만 희생 없는 변화는 언제 올까”라고 반문했다. 유 의원은 “앞으로 불공정 관행 유형을 정리하고 상생방안을 모색해 공정한 유통·제작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추모 공연에선 샹송 가수 김주연이 김 PD의 아내 오씨의 작사곡 ‘멈춘 시간’을 노래한 영상이 방영됐다. 마임이스트 최규호의 마임 공연과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 기타리스트 최훈의 기타연주, 아이돌 그룹 제넥스의 멤버 태하의 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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