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코로나 19사태의 여파로 사회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하루하루를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내 집 마련을 꿈꾸기 어려운 청년들은 ‘코인으로 영수 철수 돈 복사해서 퇴사’한 것처럼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영끌’하여 코인을 샀다. 모두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번 사람도 있었지만 잃은 사람이 더 많았다. 하락장이 펼쳐진 후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한강에 가겠다는 자조적인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급기야는 지난 4월 2억을 잃은 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대 당대표가 탄생했다. 많은 이들이 청년 당대표의 등장에 기대감을 표했다. 드디어 정치권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세대교체에는 생물학적 나이뿐 아니라 세계관과 관점도 중요하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이준석 대표는 “머리로 상위 1%보다는 재산으로 상위 1%가 되고 싶어 코인(투자)을 조금 하고 있다”라며 수억 원의 코인 투자 이득을 서슴없이 자랑했다. 김종인식 경제민주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자유에 기반을 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경제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삼겠다고 의사를 밝힌 그는 자기 영달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고,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대중을 선동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91%가 여성이라는 지점에는 9%의 남성도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OECD 유리천장지수 꼴찌 통계에 대해서는 애초 데이터 자체가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존재 자체로 대한민국의 여성혐오를 증명한다. 불평등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이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된 시점인데도 분배는 모두 시장에다가 맡겨두겠다며 경쟁 지상주의를 설파한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위기가 이준석 대표에게서 발화된 것은 아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지난 몇 년간 산산이 깨졌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내로남불 정치는 청년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겼다. 어떻게 해도 이 구조가 바뀌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하는 청년들에게는 차라리 룰대로 공정하게 경쟁하자는 이준석의 주장이 합리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연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시세가 급락하는 가운데 5월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화폐자산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연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시세가 급락하는 가운데 5월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화폐자산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그러나 이준석이 말하는 경쟁은 정말로 공정한가?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룰이다. 어떻게 룰을 만드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그리고 이준석이 제시한 당내 경쟁 룰은 컴퓨터 능력, 토론 배틀 같은 본인에게 유리한 잣대다. 또 공정을 말하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인맥과 운의 결과다. 아버지 친구 인맥 유승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그가 국민의힘에서 최고위원을 할 수 있었을까? 3루에서 태어났으면 적어도 3루타를 친 것처럼 으스대지는 않아야 옳은 인간이다.

무엇보다 그가 내세우는 능력주의는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청년의 삶이 척박한 것은 청년들이 못나서도, 루저라서도, 누가 내 자리를 뺏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관문을 너무 좁혀놓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수저 색깔이 내 삶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 노력보다 부모의 자산과 문화자본의 영향이 개인의 능력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집에서 혼자 영어공부 하는 학생보다 부모의 지원으로 방학 때마다 어학연수를 갔다 온 학생이 영어 특기생이 되기 훨씬 쉽다는 것은 우리 모두 다 안다.

이런 구조적 불평등 때문에 실상은 완전히 공정한 경쟁이 성립되기 어렵다. 마이클 샌델은 잘못된 능력주의는 금수저들이 자신이 얻은 것을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했다고 과신하게 만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시에 경쟁에서 밀린 이들은 낙타가 바늘구멍 가듯 좁은 사람답게 사는 길을 통과하지 못한 자기 자신만 탓하게 된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군의 5주기인 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내선 순환 9-4 승강장에 김군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붙어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군의 5주기인 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내선 순환 9-4 승강장에 김군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붙어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강남역 인근 여성 살해 1주기인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을 혐오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문화를 개선할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몀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김철수 기자
▲강남역 인근 여성 살해 1주기인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을 혐오하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문화를 개선할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몀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김철수 기자

 

솔직히 나는 이준석을 당대표로 뽑아준 사람들이 고맙다. 이준석 대표는 젊다는 것이 다가 아니며, 바뀌어야 할 것은 세대뿐이 아니라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오랫동안 정체된 진보 정치의 담론이 다시 역동성 있게 논의될 필요성도 상기시켜주었다. 과거 좌우의 프레임을 넘어 여성, 성소수자, 생태, 노동, 자영업 등 인정 정치와 분배 정치의 연합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물꼬를 틔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할 일은 낡은 좌우 정쟁을 넘어 대한민국이 평등한 국가로 넘어가기 위한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것이다.

그 주체는 누구인가. 위성정당 사태 이후여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당이 편법과 월권으로 정치적 명분을 잃었다. 성폭력과 정규직,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제대로 된 종합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586 민주화세대를 자임하는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치 시스템을 전환하지 않고 권력을 독점 중이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이 시점에 누군가 새로운 시대를 불러내야 한다. 그 주체는 성폭력 성차별에 시달리며 일상에서 싸워가는 여성들이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는 기후위기 활동가들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죽거나 다치지만 계속해 조직될 노동자들일 것이다.

사회의 진보는 자동적이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헌신과 연대가 필요하다. 정치적 영역에는 더더욱.

<연재 순서>
① 우리는 왜 세대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가-김건수 (청년학생 시국선언 집행위원)
② 청년비정규직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시장의 불공정, 불평등-김태훈(한국지엠비정규직 청년노동자)
③ 능력주의는 장애인차별에 왜 무력한가-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청년장애인)
④ 학력주의에 기반 한 공정담론이 청년의 이해를 대변 못하는 이유-김정래 (투명가방끈)
⑤ 공정담론은 여성의 안전한 삶과 평등한 일자리에 대안이 되지 못 하는가-안지완 (인천대 페미니즘 학생모임 젠장)
⑥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⑦ 정상성을 기준으로 한 능력주의는 차별을 막기 어렵다-한빛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⑧ 시대의 위기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바꿔야-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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