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개XX’란 말도 그렇고 청년들한테 “역사 경험치가 낮다”는 식으로 막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이 있다. 자신들은 민주화 경험이 있는데, 청년들은 그렇지 않기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무지하다는 식으로 비난한다. 청년들에게 와 닿는 정책 하나 제대로 펴지 못하면서 뭐만 하면 청년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아니, 이들을 비난한다고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마찬가지로 언론에서도 ‘공정한 경쟁’과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 정작 청년 비정규직 삶은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지금의 청년 비정규직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제대로 돌아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 번은 현장에서 작업대 높이가 안 맞아 “제대로 된 작업대를 설치해 달라” 회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수개월 동안 방치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억울하고 분해서 싸웠다. 반년 가까이 지나서야 설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사소한 작업대 하나 놓기가 뭐가 어렵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장치를 설치해달라는 정당한 요구조차 눈치 보며 해야 하는 게 비정규직 현실이다. 주변으로 밀려나 가장자리에서 간신히 매달린 채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은 고분고분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며 지내야 그나마 불안정한 고용이라도 지킬 수 있다.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 이는 시험에 의한 신분제라며 무한경쟁사회의 구조를 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민중의소리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 이는 시험에 의한 신분제라며 무한경쟁사회의 구조를 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민중의소리
▲서울 지하철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맡았던 용역업체 소속 청년 노동자들 모습. 노동존중을 표방한 서울시는 용역노동자들을 2017년부터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원들이 불공정하다고 반발했다. ⓒ민중의소리
▲서울 지하철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맡았던 용역업체 소속 청년 노동자들 모습. 노동존중을 표방한 서울시는 용역노동자들을 2017년부터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원들이 불공정하다고 반발했다. ⓒ민중의소리

 

비정규직 내에서도 청년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더 가혹한 근무환경에 노출된다. 젊다는 이유로 더 많은 업무량을 떠맡는 일도 빈번하다. 일하는 내내 허덕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불만을 말하면 ‘싸가지가 없다’며 찍힌다. 악의적인 소문을 내고 수준 낮은 업무를 주면서 모욕하기도 한다. 원치 않는 업무로 갑자기 이동시키거나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고 배제하면서 투명 인간 취급하기도 다반사다. 고함을 지르고 의견을 무시하며 불합리한 명령도 지시받는다. 이것이 일상적으로 비정규직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비정규직 하청인 청년노동자의 삶

“위험은 아래로 흘러 ‘하청’에 고인다”는 표현이 있다. 저임금의 굴레와 언제든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사고라도 나면 온전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노동에는 위험과 가난이 뒤따른다. 자본이 비정규직을 만들고 하청에 재하청으로 꼬리를 무는 산업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공정한 경쟁’ 이런 얘기 자체가 무슨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적어도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그렇다. 흔히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도 잘 보고 정규직 돼라’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애당초 다수가 탈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거기다가 다 욱여넣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친구들 만나보면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다들 가정은 꾸리고 싶어 하는 데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출은 껴야 가능하다. 하지만 불안정한 비정규직 인생에 대출을 끼는 건 저당 잡힌 인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친구들은 많은 것 바라지도 않고 그저 지금보다 나은 삶을 꾸리고 싶어 한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산재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 사진=민중의소리
▲평택항에서 일하다 산재사고로 숨진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 사진=민중의소리

 

무엇보다 내가 일하는 한국 지엠은 지난 16년간 불법 파견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해왔다.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 판결을 받았음에도 한국 지엠 사장은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8100억 원의 국민 혈세를 받아먹고도 오히려 공장 구조조정을 통해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일자리에서 내쫓고 있다.

이러한 불법 파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치권이 공정을 논하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인 내게 와 닿지 않는다. 청년 문제를 언급하는 지역구 정치인조차 한국 지엠 청년 비정규직의 문제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다. 반노동 정권인 것은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이나 똑같은데 지난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이남자·이대녀’라는 틀로 나누고 청년을 분열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매번 정치권이 청년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노동 규제를 풀거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건 전혀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의 편에서만 정치하려고 하니 청년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그러니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우선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결국, 비정규직 제도 자체가 문제인데 그거부터 없애자는 논의가 나와야 타당하지 않겠는가.

<연재 순서>
① 우리는 왜 세대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가-김건수 (청년학생 시국선언 집행위원)
② 청년비정규직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시장의 불공정, 불평등-김태훈(한국지엠비정규직 청년노동자)
③ 능력주의는 장애인차별에 왜 무력한가-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청년장애인)
④ 학력주의에 기반 한 공정담론이 청년의 이해를 대변 못하는 이유-김정래 (투명가방끈)
⑤ 공정담론은 여성의 안전한 삶과 평등한 일자리에 대안이 되지 못 하는가-안지완 (인천대 페미니즘 학생모임 젠장)
⑥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⑦ 정상성을 기준으로 한 능력주의는 차별을 막기 어렵다-한빛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⑧ 시대의 위기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바꿔야-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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