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위에 염증이 있었어요.” 한 여성이 과거 자신의 질환에 대해 말한다. 내레이션으로 “원인은 체지방이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다행히 그는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고 식습관을 개선한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갈색 가루인 ‘시서스’가 등장한다.

“항산화에 좋은 식품들이 파프리카나 양파, 시서스 같은 게 있더라고요.” 여성이 시서스를 주기적으로 먹는다는 언급과 함께 시서스 가루가 화면에 등장한다.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시서스를 섭취하자 체중과 허리둘레 복부지방률은 물론이고 체지방률까지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내용이다. 갑자기 전문의가 등장해 “지방의 흡수를 방해해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3월29일 방영된 SBS ‘모닝와이드 3부’의 한 대목이다. 

▲ MBC '생방송 오늘아침' 갈무리
▲ MBC '생방송 오늘아침' 갈무리
▲ SBS '모닝와이드' 갈무리
▲ SBS '모닝와이드' 갈무리
▲ MBC '생방송 오늘아침' 갈무리
▲ MBC '생방송 오늘아침' 갈무리

3월15일 방영된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는 다이어트에 도전 중인 여성이 등장해 고기를 구우며 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지금 뿌리는 이거 뭘까요?”라는 질문에 이 주부는 “시서스라고 해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뿌려 먹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이번에도 시서스에 대한 설명, 관련 연구, 의학 전문가의 설명이 이어진다.

지상파와 종편의 교양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시청자에게 이 같은 방송은 익숙하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전문적인 정보 같지만 두 방송 모두 시서스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제작한 ‘협찬’ 방송이었다.

돈 받고 만든 건강제품 홍보 석달 간 1255건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지난 1~3월 지상파3사·종편4사의 ‘제품이나 성분의 효능·효과를 다룬 협찬 고지 내역’을 분석한 결과 1255건에 달하는 협찬이 이뤄졌다. 비일비재한 홈쇼핑 연계편성을 통해 방송사 건강 프로그램에 협찬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긴 했지만 지상파·종편 전반의 건강 프로그램 협찬 내역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방통위가 지난해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때 조건으로 ‘효과나 효능을 다루는 협찬의 경우 협찬 사실을 시작, 종료 시점을 포함해 최소 3회 이상 고지할 것’을 강제하면서 현황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방송사별로 관련 협찬 내역을 보면 MBN이 306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MBC 225건, 채널A 219건, JTBC 188건, SBS 158건, TV조선 152건, KBS 7건 순으로 나타났다. KBS를 제외하고는 매일 건강제품 협찬이 쏟아진 셈이다. 건강제품 협찬 문제는 종편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MBC와 SBS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 지난 1~3월 주요 방송사 효능/효과 관련 협찬고지 내역. 디자인=이우림 기자
▲ 지난 1~3월 주요 방송사 효능/효과 관련 협찬고지 내역. 디자인=이우림 기자
▲  지난 1~3월 주요 방송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효능/효과 협찬 품목. 디자인=이우림 기자
▲ 지난 1~3월 주요 방송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효능/효과 협찬 품목.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 같은 협찬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은 MBC ‘기분 좋은 날’·‘생방송 오늘 아침’ SBS ‘모닝와이드’·‘생방송 투데이’ 채널A ‘닥터지바고’·‘나는 몸신이다’·TV조선 ‘굿모닝 정보세상’·‘명심보감’, MBN ‘천기누설’·‘한번 더 체크타임’ JTBC ‘TV정보쇼 알짜왕’·‘웃고 떠들고 맛있는 하우스’ 등이다.

성분별로 살펴보면 유산균류가 277건으로 가장 많은 협찬이 이뤄졌다. 다음으로 콜라겐 113건, 시서스 95건, 단백질류 87건, 오메가3류 64건, 새싹보리 51건, 루테인 41건 순이다. 이 외에도 녹용, 노니, 락티움, 매스틱, 보스웰리아, 어골칼슘, 여주, 초유, 칼슘, 콘드로이친, 폴리코사놀, 흑염소 등이 10회 이상 협찬이 이뤄졌다. 이들 성분이 건강에 좋다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면 그만큼 대대적인 협찬이 이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종편의 경우 지상파보다 ‘재방송’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채널A는 지난 1~3월 동안 관련 협찬이 이뤄진 프로그램 219건 가운데 재방송만 146건으로 재방송이 본방송보다 2배 많았다. 채널A의 재방송 편성을 보면 불규칙적이었다. 지난 1월5일 ‘나는 몸신이다’는 293회를 재방송했는데, 직후인 1월12일에는 262회를 편성했다. 262회는 2020년 1월14일 방영분으로 1년 전 방송을 갑자기 재방송한 것이다.

방송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협찬 프로그램의 경우 재방송을 하는 조건으로 추가로 협찬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협찬을 한 기업이 홈쇼핑 판매를 하게 되면 홈쇼핑 시간대에 맞춰 방송사에 재방송을 요구하기도 한다. 협찬은 제작비 지원 명목으로 지급하는데 재방송은 별도의 제작비가 들지 않아 재방송 프로그램에 협찬을 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방통위 ‘협찬 언급’ 강제했지만 문제 해결 못 해

지난해 방통위가 방송사에 협찬 관련 재허가·재승인 조건을 강제하면서 전과 달리 건강 성분이 나온 협찬 프로그램에서 협찬 사실을 ‘고지’(알림)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 있다. 하지만 협찬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다.

일례로 단골 협찬 품목인 시서스의 경우 방송에서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강봉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기준과장은 2019년 한국일보 기고글을 통해 “시서스에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가 많이 함유돼 있어 여성이나 성장기 청소년이 식품으로 복용하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우려하면서 “영·유아, 어린이, 임산부, 고혈압약 복용자는 시서스를 섭취할 때 섭취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서스’ 협찬 방송에서는 이 같은 유의사항을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방통위는 방송사에 ‘협찬임을 고지하라’고 했지만 방송사마다 고지하는 방식이 제각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KBS·MBC·MBN·JTBC·TV조선은 “본 프로그램의 홍삼 관련 내용은 협찬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본 방송은 ‘콜라겐’ 협찬주에게 협찬을 받아 제작된 프로그램입니다”처럼 협찬 품목에 대해 설명했다. 자막이 잠깐 떴다 사라져 분명히 인지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무엇을 협찬했는지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 MBC '생방송 오늘아침' 협찬 고지 화면. 협찬 품목을 언급했다.
▲ MBC '생방송 오늘아침' 협찬 고지 화면. 협찬 품목을 언급했다.
▲ SBS '모닝와이드' 협찬고지 화면. 품목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 SBS '모닝와이드' 협찬고지 화면. 품목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 방송사별 효능/효과 관련 협찬고지 방식 비교
▲ 방송사별 효능/효과 관련 협찬고지 방식 비교

하지만 SBS는 “본 프로그램은 일부 협찬을 받아 제작하였습니다”라며 협찬을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채널A는 두 가지 방식을 혼용했다. SBS와 채널A의 협찬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어떤 내용이 협찬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없다.

방통위는 협찬 제도 개선을 위해 지난해 △ 협찬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 △ 협찬과 협찬고지의 허용 범위 및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협찬 고지를 명시하고 △ 방송사에 관련 자료 제출 의무를 부여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국회에 계류돼 있다. 

협찬 문제와 관련한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방통위는 정필모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법안소위 상정 및 법안 통과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중”이라며 “추가 개선방안으로는 (제작비 지원 방식의) 제작 경비 협찬을 의무적인 협찬고지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 부적절한 협찬주 광고효과 방지를 위한 금지행위 정비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협찬 고지가 이뤄진 (건강 제품 협찬) 프로그램 외에도 음성적인 협찬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MBN은 보도 프로그램에 협찬을 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방통위 차원에서 고지하지 않은 협찬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경비 협찬이 이뤄지면 협찬 장면이 나올 때마다 고지하고, 프로그램별로 협찬 횟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연우 교수는 “협찬은 원래 경비(제작비)가 아닌 장소나 물품을 지원해주는 개념이었다. 방송사는 감사의 의미로 협찬주의 이름을 고지하면서 고지 자체가 혜택인 측면이 있었다”고 전한 뒤 “하지만 경비(제작비) 협찬이 일반화되면서 사실상 음성적인 광고로 변질됐다. 이 경우 협찬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광고 효과를 낸 것인데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기에 규정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정필모 의원은 “협찬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방송과 상품 콘텐츠의 경계가 무너져 방송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시청자가 협찬 품목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고지 방식, 횟수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에 방통위의 협찬제도 개선안이 제출돼 있는 만큼 심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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