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조사를 진행하던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권이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사참위 활동 결과 피해자를 더 찾아낼 단서를 확보했고 가습기살균제와 호흡기 질환의 인과관계를 조사할 실마리를 찾았지만 추가 진상규명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환경부가 지속적으로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말 국회는 환경부 입장을 받아들여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사회적참사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최근 해당 법 시행령에서 사참위의 조사권한을 없애는 내용의 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참위 안팎에서는 진상규명 관련 부서 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조사권한도 없애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사권을 없애는 시행령이 확정될 경우 특별조사위라는 조직 명칭이 무색하게 앞으로 조사를 못하게 될 전망이다. 

25일 옥시레킷벤키저 본사앞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는 사참위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7개단체는 “환경부가 사참위의 존재 이유이자 핵심 업무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 규명 업무를 중단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 피해자들은 환경부가 감히 피해자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부는 사참위 기간 연장 등을 이유로 국회에서 사회적참사 특별법을 개정할 때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사연장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전시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의 '가습기메이트' 사진=노컷뉴스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전시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의 '가습기메이트' 사진=노컷뉴스

최근 사참위는 CMIT·MIT(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치아졸리논)이 들어간 가습기메이트 등의 제품을 사용한 사람 중 호흡기 관련 증상을 호소한 이들과 실제 제반서류를 갖춰 피해를 신고자한 이들이 늘고 있으니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이마트 관계자 등 13명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해당 업체에서 만든 가습기살균제(가습기메이트)의 주 성분인 CMIT·MIT가 폐질환·천식 등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검찰은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각각 금고 5년을 구형했다.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을 원료로 쓴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신현우 전 옥시 대표는 지난 2018년 징역 6년형을 확정받았다. 

참사 피해자들은 지난 1월 판결이 입증연구가 부족한 결과인 만큼 추가 조사·연구를 통해 2심에선 다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참위 최종보고서를 보면 사참위는 조사대상자로 선정한 13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연락을 취했고 CMIT·MIT 성분 제품을 사용한 이들 중 3200여명이 피해경험이 있고 700여명이 피해신청 서류를 준비해 176명이 신고를 완료했다. 사참위가 추가 자료를 확보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들을 접촉해 피해자 확보에 나선 결과다. 

CMIT·MIT 성분 제품(가습기메이트·이마트 가습기살균제·함박웃음 가습기세정제)을 사용한 이들 중 추가 신청자가 나오면서 피해자로 인정받는 이들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사참위 추산 피해경험자가 약 67만명에 이르는 만큼 추가 조사의 필요성은 분명하고 이제 조사의 첫발을 뗐다는 게 사참위 판단이다. 

▲ 가습기살균제.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 가습기살균제.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지속된 환경부의 방해로 지난달 25일 문호승 사참위원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모든 조사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강력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문 위원장은 이어 “환경부가 의견 제시와 별도로 지난해 말 개정된 사참위법이 공포·시행되기도 전에 이미 조사 차원의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공문을 보내왔다”며 “조사 결과 감사 요구나 수사 요청, 개선 권고안 등을 내놓을 수 있는데 조사 일체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게 환경부 의견이라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날 환경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 특조위의 법적 업무 수행을 위한 요청에 적극 협조 중”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개정된 특별법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해서는 특조위의 진상규명 조사 업무가 제외됐다”며 “그럼에도 법적 업무 수행을 위해 협조 요청을 하는 경우 모두 협조했다”고 주장했다. 

사참위는 지난 2일 환경부 입장을 재차 반박했다. 사참위는 “법 개정 후에도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피해자 지원 대책 점검, 관련 안전제도 개선, 종합보고서 작성을 포함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여전히 수행할 수 있다”며 “지난해 12월 이후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지원 대책 점검과 관련해 환경부에 조사 차원의 자료 제출 8건을 요구했으나 거부 입장을 전달 받았다”고 비판했다.

피해자들은 25일 기자회견에서 “한정애 환경부 장관에게 면담을 공식 요구한다”며 “환경부 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입장과 같이 사참위가 해야 할 일이 더 없다고 자신한다면 피해자들 앞에서 직접 설명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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