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정치권력은 자기들에게 불편한 뉴스를 ‘나쁜 뉴스’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이면서,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가하는 법안들을 ‘언론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입법하려 하고 있다.”(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창간 101주년 기념사)

지난 5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창간 101주년 기념사는 정권 비판 수위가 예년과 크게 달랐다. 작심이라도 한 듯 문재인 정권과 언론단체 등을 맹비난했다.

방 사장은 “시민단체로 위장한 이념단체들과 권력의 편에 선 매체들을 동원해 진실을 수호하려는 언론들에게 ‘적폐’이자 ‘말살되어야 할 악’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언론 개혁’ 입법 등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마저 이념과 진영논리로 오염시켜 흔들어대는 참으로 부도덕한 일들”이라고 규정한 뒤 “이런 시도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위험한 징조이며 자칫 ‘민주주의의 종언’을 부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악이라는 오명 씌워” 정권 작심 비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264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김도연 기자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지난 1월 신년사에선 상당 부분 조선일보 영향력과 TV조선 뉴스·예능 시청률 상승 등 ‘조선미디어그룹 성과’를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관해선 “사회 곳곳이 포퓰리즘과 위선, 거짓으로 흔들릴 때 우리는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우리는 늘 언론으로서 할 말을 해왔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지난해 창간 100주년 기념사에서도 사원들에게 조선일보 100년사의 ‘영광’을 강조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요즘이야말로 진실보도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라며 원론적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조선일보 안에서도 이번 기념사를 ‘왜 이렇게까지 세게’ 냈는지 방 사장 생각을 궁금해 하는 여론이 있다.

문재인 정부를 직격한 방 사장에 대해 언론계 일각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조선일보 대해부’를 공동 집필한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7일 페이스북에 “언론의 자유를 이용해 이 나라를 이념과 진영논리로 오염시켜 공동체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은 조선일보 등 수구족벌언론들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가”라며 “ABC협회를 이용해 광고주들을 속이고 언론소비자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기질은 과연 언론의 자유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도 SNS에 방 사장의 창간 101주년 기념사 발언을 인용한 뒤 뉴스타파가 제작한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 무료 공개 영상을 홍보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족벌은 조선·동아일보 두 신문의 100년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다뤘다. 방일영, 방우영 등 조선일보를 이끌었던 선대 회장들의 독재정권 부역사를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방 사장 표현을 빌리면, ‘족벌’은 조선일보 입장에선 “‘적폐’이자 ‘말살되어야 할 악’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영화인 것이다.

방 사장에게 2020년은 조선일보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 해였다면, 2021년은 ‘위기의 한 해’일 수 있다. 조선일보 출신의 한 인사는 고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회장 사망에 관해 “방 사장 고민과 걱정이 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상훈 사장의 동생 방용훈 회장은 지난달 18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일보 인사의 말은 자녀들에 대한 승계와 증여·상속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추후 방용훈 회장 재산을 두고 그의 자녀들(2남2녀) 사이 증폭될 수 있는 갈등 상황에 비춰보면, 올해 74세인 방상훈 사장도 ‘세대교체’를 생각할 시점인 셈이다. 조선일보 기자들 사이에선 지난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조선미디어그룹을 방준오·방정오 등 자식들에게 넘기지 않을까 전망도 있었지만 방 사장은 1993년부터 28년째 명실상부 조선일보 사장이자 오너로 활동한다.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여당 주도하는 언론 관련 입법도 방 사장에게 무시 못할 ‘부담’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다수 언론이 비판적이다. 실제 거대 자본의 언론 재갈 물리기로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다수 시민들은 언론의 무책임과 왜곡 보도를 지적하며 제도 도입을 환영하고 있다.

이는 언론사들에 큰 부담이다. 2019년 12월 공시 기준 조선일보가 피고로 계류 중인 소송 사건은 13건이다. 소송 가액은 14억5800만원 수준. 중앙일보의 경우 기사 관련 명예훼손 등 피고로 계류 중인 사건의 소송가액은 15억원이다. 반면 동아일보는 5건(소송가액 2억300만원)에 그친다. 진보언론인 한겨레도 16건의 소송(소송가액 13억3000여만원)이 피고로 계류돼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 경영진은 “소송 결과가 조선일보 재무상태에 중요한 영향을 미지치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제도가 도입되면 부담은 크게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조선일보를 ‘말살되어야 할 악’이라고 판단하는 정치권력과 지지세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부담은 현실이 될 공산이 크다.

최근 제기된 ABC협회의 부수조작 의혹도 악재다. 2019년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116만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100만을 넘긴 것으로 발표됐다. ‘1등 신문’을 확인한 셈이지만 부수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 시장에서 조선일보 등 신문가치는 급전직하할 수 있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2일 조선일보 법인과 방상훈 사장, 한국ABC협회 등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조선일보는 ABC 협회 규정에 따라 자료를 제출했고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방 사장은 “회사는 여러분이 ‘조선일보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튼튼한 재정의 울타리를 더욱 공고히 하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버텨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했다. 2021년 마주한 위기에 이 선언이 흔들리지 않을지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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