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 차원에서 기자를 심사하는 일은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윤화진 로이터 기자, 2020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사 출입처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보고서 중)

윤화진 기자가 언급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은 한국 기자단 시스템이다. 한국에선 어떤 기자가 공공기관 취재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를 기자가 정한다. 한국 출입처 제도는 기자단과 공공기관의 협력관계로 이뤄졌다. 한 편에는 기자단에만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기관이, 반대편에는 기자단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기자단이 있다. 

널리 알려진 서울 법조 기자단 외에 18개 행정부에도 모두 기자단이 있다. 부처별 차이는 있으나 폐쇄적인 기자단이 실체적 지위를 가지고 배타적으로 지원받는 구조는 모든 부처가 똑같다. 이 관계를 내규나 법령으로 규정한 부처는 한 곳도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세종정부청사 출입기자들을 취재해 확인한 일부 부처 기자단 운영 관련 현황 표. 디자인=안혜나 기자.
▲미디어오늘이 세종정부청사 출입기자들을 취재해 확인한 일부 부처 기자단 운영 관련 현황 표. 디자인=안혜나 기자.

국토부 출입기자 하려면 1년에 2번 투표 통과

18개 부처 기자단 모두 다른 매체 가입 여부를 기자단 투표로 정했다. 6~12개월 단위 출석율 등을 가입 신청 자격으로 두고 이를 충족하면 가입 투표에 부치는 구조는 같다. 폐쇄성은 부처 별 차이가 있었다. 국토교통부 기자단은 인터넷매체 경우 ‘랭킹닷컴’ 기준 100위권 내로 신청 자격을 제한했고, 투표도 2번으로 늘렸다. 6개월 간 활동을 보고 1차 투표해 ‘예비 가입 매체’로 둔 뒤 또 6개월 간 활동을 보고 2차 투표해 ‘정식 가입 매체’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기획재정부 기자단은 최근 신문일 경우 유료 발행 부수로, 인터넷신문은 하루 방문자 수 등을 자체 기준으로 정했다. 특정 수치를 넘는 매체에만 가입 신청 자격을 준다. 이미 기자단에 속한 매체 중에  이 기준을 넘지 않는 매체들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통산부, 환경부 등 기자단은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같은 협회 소속을 신청 자격으로 둔다. 

국방부는 기자 지위를 방문기자, 등록기자, 출입기자(기자단)로 나눴다. 국방부를 취재하려면 처음엔 방문기자로 시작한다. 매체가 언론 유관 협회 가입사여야 하고 재직증명서 등 국방부가 정한 서류를 증빙하면 방문기자 지위를 얻는다. 정례 브리핑이 열리는 월·화·목 기준으로 3개월 간 출석율 100% 가까이 채워야 ‘등록기자’가 된다. 

등록기자에서 기자단에 속하려면 기자들 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6개월 간 출석율 약 100%를 충족해야 한다. 전체 출입기자의 3분의 2 이상이 참여해 재적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가입된다. 현재 뉴스토마토, 뉴스핌, 아주경제, 뉴데일리 등 매체가 기자단 가입을 시도 중이다. 기자단이 되면 출석 의무는 대폭 낮아진다. 

기자단과 방문기자 취재 권한 차이는 크다.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기자단만 들을 수 있다. 방문·등록 기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다. 장·차관, 대변인 등 주요 공보 관계자와의 간담회, 식사 자리 등 공식 행사도 기자단만 갈 수 있다. 내부 연락망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대부분 보도자료도 기자단에 먼저 배포한 후 격차를 두고 방문·등록기자에 보낸다. 

▲주요 수사 브리핑이 열리는 서울고검 검찰 기자실. 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의 출입은 제한된다. 사진=민중의소리
▲주요 수사 브리핑이 열리는 서울고검 검찰 기자실. 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의 출입은 제한된다. 사진=민중의소리

그러다보니 황당한 일도 생긴다. 한 국방부 출입기자는 “2017년경 ‘대북 확성기 납품비리’ 논란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백브리핑이 열렸는데 정작 최초 보도한 기자는 참여하지 못했다. 기자단 소속이 아니었다”며 “기자단 일부 기자들이 ‘문제 제기한 기자가 정작 브리핑을 못 듣고 있다’고 항의해 그때 한 번 비기자단 기자가 백브리핑을 들었다”고 전했다. 

국방부의 또 다른 A기자도 기관의 지나친 기자단 중심성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 3월부터는 방문기자만 브리핑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코로나19 때문이라는데 방문기자만 코로나19에 취약한 게 아니라 등록기자, 기자단 누구든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매체 급 따져’ 옆에 있어도 명함 교환 안해”

외교부 기자단 가입을 시도해봤던 B기자도 “취재접근성 차별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백브리핑 전면 차단이 가장 불편했고 보도자료, 부처의 중요 일정과 소식도 매번 기자단에게만 먼저 전달돼 비기자단은 기자단 보도를 따라가기 급급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부처에 만연한 엠바고는 ‘보안 유지’ 의미보다 ‘보도 편의’에 가깝다. 기관은 시급성이나 기밀성을 다투지 않는 정보까지 엠바고를 설정해 기자단에 미리 제공한다. 길게는 며칠 전부터 짧게는 2~3시간 전이다. 기자단 기자들은 기사 작성이나 추가 취재를 미리 해놓지만 비기자단 기자들은 보도를 보고 추가 취재를 시작한다. 이 차이가 쌓이니 비기자단 눈엔 기자단 자체가 큰 혜택으로 보인다. 

서울시청 기자단에 있었던 C기자는 “기사 가치가 적어도 기자들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나눠주는 개념이 돼 하등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며 “엠바고가 필요한 뉴스가 분명히 있을 텐데 출입하는 동안 그런 기사는 없었다. 단적으로 엠바고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면은 매일 나오는데 질 좋은 취재 기사로 지면을 메울 방법이 없다. 출입처 발 기사와 보도자료 의존도를 낮추려면 편집국장, 데스크, 일선기자 마인드가 전부 바뀌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세종정부청사 기준 기자단 운영 실태를 보면 대부분 부처가 기자단만 쓸 수 있는 기자실을 마련했다. 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는 보통 공개 브리핑이 열릴 때만 출입할 수 있다. 세종 청사를 출입하는 D기자는 “여러 부처 돌아다녀 봤는데 공석이 많다. 한 전국 일간지 기자는 1년에 3~4번 오더라”며 “보건복지부는 좌석에 앉지도 못하게 한다. 기자단 가입을 시도하는 한 기자는 출석 기록은 해야 하니 일단 들어와서 작은 공용테이블에 앉았다가 바로 나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종청사 한 기자실에 모 실장급 공무원이 인사 차 방문했던 때다. 보통 고위 공무원이 기자실을 들리면 기자실장이나 기자단 간사가 그에게 기자들을 소개해준다. D기자는 “당시 기자단과 비기자단 기자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기자실장은 기자단 기자만 인사를 시켜줬다. 해당 실장도 기자단 기자와만 명함을 교환했다”며 “공식 간담회, 티타임에 부르지 않는 건 아주 당연하다. 이런 소소한 격차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서울 법조 기자단 내부 운영 구조 도식화. 디자인=안혜나 기자
▲주로 서울 서초구 법원·검찰청사를 취재하는 서울 법조 기자단 내부 운영 구조 도식화. 법원·검찰은 이들 취재만 선택적으로 지원한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기자 사회의 ‘구별짓기’

차이가 특권이 되며 일부 기자는 모멸감도 느꼈다. 기자단에 가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자단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기자들이 생긴다. C기자는 “서울시청에선 한 비기자단 기자가 기자단 회식 자리에서 트로트를 불렀던 에피소드가 있다. 투표 직전마다 가입을 희망하는 기자들이 포스트잇에 손편지를 쓰고 사탕, 과자 등의 선물을 기자석에 돌리는 것도 빈번했다”며 “가입에 성공한 어떤 매체들은 기자단에 선물을 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기자를 만나면 모멸감은 더 커진다. B기자는 “한창 가입을 준비하던 때 일일이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해야 했는데 소위 ‘매체를 가리는 기자들’은 인사를 하고 명함을 달라고 해도 안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세종청사의 D기자는 “비기자단 기자가 기자단 가입 때문에 간사에게 술을 산 적 있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기자단=취재 지원’인데 왜 기자가 허가권자냐”

미디어오늘은 18개 부에 기자단과의 관계를 규정한 내규나 법령이 있는지 물었고 국방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가 없다고 답했다. 국방부는 국방홍보훈령을 댔으나 훈령에는 등록기자와 출입기자의 취재 접근권을 구별하는 조항은 없었다. 훈령엔 출입증을 발급받는 기자에 대한 일반 규정만 나와 있다.

각 기관의 재산인 기자실, 출입증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18개 부처는 “기자단 운영은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한다”고만 답했다. 기자실·출입증 제공을 포함해 각종 취재 접근권을 차별적으로 제공하지만 정작 누가 그 혜택을 받을지 결정은 사적 결사체인 기자단이 한다. 18개 부처는 ‘결정 권한을 기자단에 위임했느냐’는 질문에 “기자단 운영은 기자단이 정한다”고 답했다. 

기자단 존재 이유에 기자단이 내세우는 주된 논리는 ‘자질 부족 매체가 난립한다’는 것이다. D기자는 “그걸 왜 기자들이 기관보다 먼저 걱정하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법조 기자단의 F기자는 기자의 개인 정보를 제출케 하는 ‘출입기자 등록부’도 기자단이 스스로 돌아본 적 없는 방증이라고 했다. 법조 기자단 경우 등록부에 고향, 출신 고교 및 대학, 학과, 이전 경력 등을 적어내고 이를 검찰, 법무부, 법원 등에 보낸다. ‘작성을 거부할 수 있으나 기자단 공지를 못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대부분 기입한다. F기자는 “국회 같은 곳에서 발견됐으면 당장 보도됐을 거다. 기자들이 등록부를 두고 봐 왔다는건데 그만큼 무뎌졌거나 출입처에 순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법조 기자단이 출입 기자 등록시 작성하는 출입기자 프로필. 디자인=안혜나 기자.
▲서울 법조 기자단이 출입 기자 등록시 작성하는 출입기자 프로필. 디자인=안혜나 기자.

공공기관이 기자단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말도 나온다. 공공기관이 설명 책임을 기자단에 협조하는 선까지만 적당히 진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공식적인 언론 접촉을 더 늘려야 한다는 기자단 기자들의 갈증도 크다.   

특히 국방부처럼 폐쇄적인 부처는 언론 대응에 호의적이지 않다. 국방부의 G기자는 “군은 ‘왜 알려고 하느냐, 뭣도 모르면서’ 식의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다. 언론을 소통 대상으로 보지 않고, 보도를 막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며 “대변인의 균형을 잡는 역할이 중요한데 몇 해 전 대변인이 자신에게 합리적 비판을 한 기자를 반말로 혼내며 반성문을 쓰라고까지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비기자단이었던 B기자는 “당시 대변인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다가가면, 대변인이 원하는 질문을 해달라고 노골적으로 브리핑 직전에 요구했다”며 일부 공보담당관의 언론관을 비판했다. 

C기자는 언론사 대부분이 출입처 제도 변화에 준비돼 있지 않아 구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관 눈으로 이슈를 판단하고 뉴스를 생산하는 방식은 폐기해야 한다”며 “출입처 문제는 각 언론사가 양질의 콘텐츠를 어떻게 생산할지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에 관한 논의와 고민 부재로 인해 관행적으로 기자단을 운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6명의 기자들은 기자단 스스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들이 몸 담았던 기자단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하며 자신이 누리는 편의를 스스로 내려놓는 사람은 없다는 경험칙은 공고하다. 기자 개인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기자단에 소속되면 몸이 편의에 적응한다.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문제 의식이 무뎌지는 이유다. D기자는 “근본 전제는 ‘너와 나의 급이 다르다’는 인식 아닐까. 언론계는 특권의식이 강한 집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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