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인터넷상의 선거법 위반 게시글을 삭제하고 있는데 이에 불복하는 소송이 제기된다. 

오픈넷은 22일 대전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워마드 사이트 운영자를 대리해 선거법 위반 인터넷 게시물 삭제 요청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픈넷은 23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소송에 대해 알릴 계획이다.

선관위는 선거 기간마다 인터넷 게시글에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선관위의 게시글 삭제 기준이 불분명하고 과도한 경우다.

▲ 기표소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기표소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 오픈넷이 소송에 나선 게시글을 확인한 결과 ‘과도한 개입’으로 볼 소지가 컸다. 

한 게시글은 전과기록이 있는 비례대표 후보자가 많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여성 후보만 부각시킨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작성자는 “범죄기록 소지 후보들이 등록됐단 소리 (기사에) 쓰고 싶은 건데 심지어 범죄기록이 젤 많은 후보들도 아니고 만만한 여자후보 두명 메인에 골라잡아 사진이랑 제목으로 엮어놨노. 이런 XX잡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게시글은 신원미상의 한 남성이 여성의당 비례대표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던 당원에게 돌을 던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언급하며 남성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대전 선관위는 삭제 사유로 공직선거법 가운데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하여 정당, 후보자, 후보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와 관련하여 특정 지역ㆍ지역인 또는 성별을 공연히 비하ㆍ모욕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에 위반하는 정보로 판단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후보자 및 가족에 대한 ‘성별 비하·모욕’을 금지하는 내용인데, 해당 게시글은 ‘후보’가 아닌 기자와 선거유세를 방해한 시민을 향한 표현이었다. 선거 운동을 위한 행위로도 보기 힘들다

이와 관련 오픈넷은 “본 선거법 조항은 그 자체로 이번 사안과 같이 판단자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선거의 공정이나 평온을 현저히 해할 위험이 없는 표현물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위헌성이 높은 조항”이라며 “적용되는 경우에도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낙선이나 당선을 도모하는 ‘선거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경우에만 한정되어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전 선관위가 삭제 요청한 게시글 갈무리.
▲ 대전 선관위가 삭제 요청한 게시글 갈무리.
▲ 대전 선관위가 삭제 조치한 게시글 갈무리.
▲ 대전 선관위가 삭제 조치한 게시글 갈무리.

그러면서 오픈넷은 “미디어가 여성 후보에 대한 편견이나 공격을 조장하는 행태를 지적하고자 하는 표현물, 일종의 여성 혐오 범죄로 볼 수 있는 행동을 비판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호가치가 높은 표현물”이라며 “함부로 삭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워마드 게시글이 남성에 대한 비하·모욕 표현이 과도한 점을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비하적 표현이 후보자나 정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에도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잘못된 법 적용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선관위는 ‘허위사실’ ‘비방’ ‘여론조사 공표 위반’ 등 게시글을 삭제한다. 허위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비방과 여론조사 공표 위반에까지 대응하다는 게 과도하다는 지적은 이전에도 제기됐다. 

▲ 한 누리꾼이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게시글과 동일한 인스타그램 게시글(왼쪽)과 카카오의 통보.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글이 선거법 위반으로 삭제됐다.
▲ 한 누리꾼이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게시글과 동일한 인스타그램 게시글(왼쪽)과 카카오의 통보. 카카오스토리에 남긴 글이 선거법 위반으로 삭제됐다.
▲ 20대 총선 당시 삭제된 MLB파크의 게시물.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지워졌다.
▲ 20대 총선 당시 삭제된 MLB파크의 게시물.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지워졌다.

[관련기사: 선거 여론조사 사진올렸더니 게시물이 사라졌다]

[관련기사: 선관위, 총선 때 게시물 1만7101건 삭제]

21대 총선 기간 한 누리꾼은 시사저널 여론조사가 실린 지면을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는데 여론조사를 언급할 때 공표해야 하는 여론조사 기관, 오차범위 등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제 조치됐다.

20대 총선 때는 당시 나경원 후보 자녀의 대학 부정입학 의혹을 언급하며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고 밝힌 누리꾼의 글이 허위사실로 간주돼 삭제 조치됐다. 윤상현 후보에 대해 “전두환 장군 청와대 있을 때 딸과 결혼해서 대통령 사위로 사시다가 (중략) 이혼하고 돈 많은 재벌가 롯데사위로 갈아타시고”라고 쓴 댓글도 비방이라는 이유로 삭제됐다.

선관위가 지난 총선 기간 위법으로 판단해 삭제를 요청한 온라인상 선거 관련 게시물은 5만3716건에 달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삭제요청 건수 1만7101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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