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류언론이 삼성을 다뤄온 방식을 검토하고 기록해야 한다.”

6일 방희경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서울 사단법인 ‘언론과 사회’가 주최하고 뉴스통신진흥회가 후원하는 ‘한국 사회 언론 위기의 어제와 오늘’ 기획 세미나에서 ‘삼성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 지난 10여 년간 삼성 사태에 관한 보수언론의 사설 분석’ 연구를 발표했다. 

방 연구원은 이 연구를 통해 언론이 삼성 사건을 다룰 때 ‘경제지상주의’와 ‘민족주의’ 프레임을 고수했다고 분석했다. 

방 연구원은 이미 지난 2014년 ‘행위자-관계망 이론으로 재구성한 삼성반도체 작업환경과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 논문을 발행하는 등 삼성과 언론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방 연구원은 발표에 앞서 왜 다시 삼성과 언론을 주제로 다루게 됐는지 설명했다. 

방 연구원은 “언론학계와 시민단체, 미디어 비평지 등이 계속해서 삼성과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를 비판해 왔지만 또다시 ‘장충기 문자 사건’이 터지면서 민낯이 드러났다”며 “내 연구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한국 주류언론이 삼성 사태를 다뤄온 방식들을 검토하고 기록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6일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에서 열린 '한국 사회 언론위기의 어제와 오늘' 기획 세미나에서 방희경 서강대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6일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에서 열린 '한국 사회 언론위기의 어제와 오늘' 기획 세미나에서 방희경 서강대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장충기 문자는 지난 2017년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전 사장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언론인 등 유력 인사들의 문자가 공개돼 파장을 부른 사건이다. 언론계 종사자들이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등 삼성 편향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방 연구원은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과 삼성 태안 기름 유출 사건 △2006년부터 지속된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을 중심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사설을 분석했다. 

방 연구원은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이들 언론이 내부고발자인 김용철 변호사를 “‘내부고발자’로 보기 어렵고 ‘배신자’로 봐야 한다”(동아·중앙)는 논조를 펼치고, 이 사태를 조사하는 ‘특검팀’에 “국가역량 낭비”(중앙)라고 비판하고, “세계시장에서 숨 가쁜 경쟁을 벌이는 삼성의 발목을 잡는다”(조선·중앙·동아)고 보도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방 연구원은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을 ‘삼성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이라고 명명하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방 연구원은 “이 사고는 삼성 중공업 예인선이 부선을 끌고 가는 도중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부선이 바다에 정박해 있던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일방적으로 들이받으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고 책임은 삼성 중공업에 있었지만 언론은 이 사건을 ‘태안 기름 유출사건’이라고 명명하면서 삼성 이름을 감췄다”고 비판했다. 

2006년부터 지속돼온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태와 관련해서도 방 연구원은 “보수언론은 피해자 측과 삼성의 법정 공방이 이뤄지고 있을 때는 침묵하다가 2014년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산재를 인정하자 삼성이 ‘통 큰 삼성’이라며 입을 열었다”며 “또 고용노동부가 노동자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조선)고 썼다”고 지적했다. 

방 연구원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이들 언론이 삼성을 ‘피해자’(동아)라고 부르며 ‘정치권이 기업들의 돈을 갈취’(조선·동아·중앙)했다고 썼다면서 “결국 보수언론이 가장 크게 무게를 두는 사안은 ‘경제’이고 삼성 위기는 곧 대한민국 위기라는 ‘민족주의’를 반복적으로 이용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학계에는 삼성 관련 논문이 적고, 우리사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논문 주제로 삼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런 가운데 나온 방 연구원의 연구는 매우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삼성과 언론 관계를 다룬 논문이 적은 이유에 이 교수는 “삼성 펀딩이나 장학금 등을 받지 못해서 연구하지 않는 연구자도 소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학자들이 현재 뜨거운 쟁점을 논문화하지 않는 습성이 강하고, 순응적인 학계 분위기에도 이유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사회를 맡은 박선희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계에선 언론과 삼성의 유착관계를 디폴트(기본값)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가 안나올 것이라 생각해 삼성과 언론에 관한 논문이 적을 수 있다”며 “학자들 사이에서도 ‘내 안의 경제 지상주의와 민족주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연구가 적을 수 있다. (방 연구원의 연구는) 이런 구도를 깰 수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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