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시키겠어"
"파멸시키겠어"




"당신 인생을 파멸시키겠어."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청춘의 덫´에 나온 심은하의 대사가 아니다.

자는 본지 249호에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위원의 시론을 비평하는 <시론인가 보고서인가>를 썼다. 바로 다음날 윤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점잖게 시작한 대화는 곧 바로 욕설로 이어졌다. "말로 해서는 안될 X", "네 인생 힘들어질 거다" 등등. 격앙돼서 다그치는 그에게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다"는 말로 대응했으나 욕설과 협박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다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면 녹음하겠다"고 대응했고, 얼마 안 있어 전화는 끊어졌다.

재를 하다 문화일보 노조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에 윤위원이 들어왔다. 그전에 안면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노조 상근자가 인사를 시켜줬고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서 들은 말이 ´파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미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는 말도 이어졌다.

론계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당혹스러움을 넘어 허탈한 것은 이 정도의 대응 밖에 못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비평은 쓰는 사람의 일정한 관점이 기본이다. 때문에 비평을 매개로 벌어지는 토론을 통해 사회 의제가 설정되고 여론이 모아지게 된다.

로 그것이 인신공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언론종사자끼리라면 우선 지면을 통해 다퉈야 한다. 그도 안되면 그때 법에 호소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 과정없이 바로 욕설과 법적 절차로 들어가는 이런 상황은 두려움이 아니라 허탈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나 하는 그런 실망감 말이다.

으로 묻고 싶다. 이런 상황이 되면 윤선배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