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 초판은 실험용인가.
최근 같은 날자 초판 신문과 시내판 신문의 널뛰기 보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면 구성이 저녁과 아침사이에 너무 다르게 변한다.

초판의 특성상 기사 교체와 뉴스 가치판단 등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빠지거나 변형된 보도의 대부분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들이어서 개운치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1월 5일자 4면에서 안기부 사찰 내용을 다루었다가 밤 사이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급격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중앙은 10판에선 <안기부장 반격 진두지휘> 제하의 기사와 안기부 사찰을 풍자한 검은 선글라스를 낀 삽화 2컷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43판인 서울시내판에선 <안기부장 “사찰증거 없다”>로 제목이 바뀌고, 삽화는 온데 간데 없었다.

6일자에선 한나라당을 비판한 사설을 내보냈다가 시내판에선 내용이 극히 순화된채 게재됐다.
제목도 <한나라 본업에도 충실하라>에서 <조급한 여당, 불성실한 야당>으로 교체됐다.

7일에는 야당의 66개 법안 단독 처리를 다루면서 부제에 ‘날치기 무효’ 등의 제목을 사용했으나 시내판에선 이를 빼버렸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면 우리 신문 초판을 봐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7일자 사회면에서 줏대없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동아는 이날 7일자 초판에서 사회면 박스 기사로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전 동화은행 이사가 예금보험공사 전무로 임명된 것과 관련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뤘다.

제목은 아예 <김 대통령 처조카 낙하산 인사 의혹>으로 뽑았다. 대통령 친인척 보도가 일종의 성역으로 금기시돼고 있는 언론계 풍토에서 상당한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45판 서울시내판에선 이 기사를 경제섹션 1단 기사로 축소 처리했다.

이같은 사례는 부지기수. 물론 최근들어 각 신문사 초판이 일제히 배달된 이후 경쟁지 지면을 비교 검토해 순발력있게 대응하는 것을 일종의 경쟁력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판갈이는 자연스런 현상의 하나로 해석할수도 있다.

또 초판 제작 이후 새롭게 발생한 사건에 따라 지면의 연쇄적인 변화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변형된 기사의 대부분이 청와대, 안기부, 대통령 인척 문제 등 몇가지 소재에 한정돼 정치권의 로비에 좌우되는 흔적이 역력하다.

기업 보도의 경우는 광고를 유도하기 위해 초판에 해당 기업과 관련한 비판적 기사를 실었다가 치고 빠지는 식의 수법이 다반사로 동원되기도 한다. 초판과 시내판에서 나타나고 있는 널뛰기 지면 구성은 한국적 언론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초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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