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왜 지역은 ‘촌스러움’ ‘먹거리’ 등으로 소비돼야 하는가
왜 지역은 ‘촌스러움’ ‘먹거리’ 등으로 소비돼야 하는가
[지역방송 위기] (09)

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오늘도 텔레비전을 켜면 어김없이 거의 모든 채널에서 리포터들이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먹거리와 즐길 거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진다. TV 앞 시청자들은 그저 ‘다음에 ○○○ 한번 먹으러 저 지역에 한번 가봐야겠군’ ‘은퇴하면 저런데 가서 고기나 잡고 살고 싶네’하며 지역이라는 공간을 가볍게 소비한다. 지역과 관련된 방송 콘텐츠는 분명 늘어난 것 같은데, 그 속에 지역은 존재하는가?

소위 ‘서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에서 서울과 지역의 양극화는 점차 심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지역에도 서울 못지않은 명문고·명문대가 존재했고, 지역민들 나름대로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국민 대다수가 ‘인서울(In-Seoul)’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인서울 직장을 목표로 취업준비를 하며, 영혼까지 끌어모아 인서울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물리적 공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의 공간이란 서울과의 거리에 의해 가치가 부여된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지역이란 ‘서울이 아닌 나머지’를 의미하며, 2등 시민들이 사는 곳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서울과 지역’이라는 이분법적 담론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지역은 곧 ‘고향’과 동일시되었으며 ‘도시 생활로 인해 잊고 있었던 순수성(노스텔지어)을 재발견하는 곳’으로 정형화되었다. 또한 ‘지역성’이라는 ‘유사 정체성(Pseudo Identity)’은 근대 민족국가의 핵심동력인 ‘민족주의’ 작동 시스템에서 ‘과거에 대한 집합기억’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은 항상 거기에 원형 그대로 머물러야 하는 고향으로 재현되며, 이러한 사회적 담론의 재생산 메커니즘 속에서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지역 역시도 과거에 대한 집합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과거 향수적 공간으로 멈춰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은 도시인들이 일상에 지쳐서 심적인 위안을 받고자 할 때 언제든 반겨줄 것 같은 상상적 공간으로서의 고향과 동일시된다. 

▲ 방송. 사진=gettyimagesbank
▲ 방송. 사진=gettyimagesbank

문제는 이러한 상상적 공간으로서의 지역성을 확대재생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방송이라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은 한국사회가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도시인들에게 지역에 대한 소식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용자들은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통해 지역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지역성 담론을 자연스럽게 구축하게 되었다. 

2018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 중 서울 출생자는 절반에 가까운 47.8%로 수도권 출생자까지 포함하면 대략 70%에 육박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여전히 지상파 방송에서 제작되는 지역 관련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지역을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정형화하는데, 이러한 시선은 지속적으로 서울과 지역 간의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내부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게끔 하는 결정적 메커니즘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지역에 대한 정형화된 시선을 확대재생산하는데 동원되는 곳이 서울 중심의 방송 시스템에서 일종의 하청업체 취급을 당하는 지역 방송사들이라는 사실이다.

방송사들이 정형화하는 지역의 모습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통음식과 ‘고향의 맛’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으로서의 지역이다. 이것은 전국이 반나절 문화권으로 좁혀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지역의 특산물을 현지에서 먹어야 한다는 강박과 ‘고향음식은 건강식’이라는 착각이 빚어낸 담론이며, 고향의 맛으로서 지역의 향토음식을 소비하는 설정은 지역민들에 의해서가 아닌 도시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방송사들은 지역을 ‘과거에 머무는 곳’으로 재현하는 경향도 강한데, 이것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역을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곳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관련 프로그램에 전성기가 지난 연예인들과 리포터들을 출연시키고 수 십 년이 지난 웃음코드나 과장된 리액션 등을 통해 여전히 지역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담론을 재생산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역 사투리를 과장해서 사용하는 것도 지역을 정형화하는 요소다. 지역민들의 사투리 사용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이것이 방송에서 가치중립적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교양없음’, ‘촌스러움’, ‘우스꽝스러움’ 등을 나타내는 언어적 장치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 지역성을 왜곡된 방향으로 정형화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지역을 특수하고 신비한 곳으로 막연히 미화하는 관점도 문제다. 지역민들이 늘 유기농 먹거리에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게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오히려 지역의 이국성과 타자성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다.

종합해보면 방송에 등장하는 지역은 ‘민족의 고향’, ‘힐링’, ‘관광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 ‘잠시 머무르다 오는 곳’ 등으로 정형화되어 ‘항상 거기에 변함없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 곳’ 정도로 소비되는 것 같다. 이러한 담론 구조는 서울(중앙) 중심의 패권적이고 내부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지역이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정주 공간(定住空間)이자 일생을 통해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재의 터전이라는 사실은 축소되고 은폐된다.

지역을 바라보는 이러한 서울(중앙)중심적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지역방송에 대한 정책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지역방송에 대한 정책적 논의 이전에 방송사가 생산하는 지역담론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지역이 현재의 공간이자 서울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동일한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곳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지역인들에게는 특별한 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시선이 필요하다. 지역에도 사람이 산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 주재원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부교수
▲ 주재원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부교수

 

※ 이 글은 <한국방송학보> 34-5호에 투고된 논문 ‘만들어진 지역성: 상상된 고향과 내부 오리엔탈리즘’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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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9-15 15:24:21
지역의 특성을 먼저 살리는 게 어떨까. 영화의 도시. ICT 도시, 농업 근대화의 도시, 금융의 도시, 문화 체험의 도시, 역사유적의 도시, 제조업 도시. 조금 이기적일 수 있지만, 사람은 이익(돈, 내 유일한 힐링 포인트, 지역마다 다른 세제혜택)이 돼야 움직인다. 고인 것은 썩고, 지역(지방자치, 재정확보)도 변해야 산다.

ㅇㅇ 2020-09-15 14:19:59
지역이라길래 뭔가 했네. 지방이라고 표기하는게 빠른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