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지역방송 살리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부터
지역방송 살리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부터
[지역방송 위기] (07)

코로나19는 미디어 생태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특히 지역 방송은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코로나19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지역 방송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계속돼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기고글을 통해 지역 방송의 정체성부터 다매체 환경에 놓인 지역 방송의 자구 노력, 나아가 정부의 지역방송 정책에 대한 방향을 묻고자 합니다. 지역방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따끔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를 담겠습니다. 지역 방송 존재가치를 묻는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당 릴레이 기고는 미디어오늘과 MBC계열사 전략지원단이 공동기획했습니다. - 편집자주

 

# 왜 변화하지 않았을까?

지역민영방송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프로그램 비평을 맡아 꽤 오랜 기간 출연했다. 충북지역에선 처음으로 만든 옴부즈맨 프로그램이기에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지역방송 발전에 기여하고픈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름 성실히 비판했지만 프로그램의 내용과 형식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았다. 제작진이 너무나 편의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 프로그램 제작에서 빠졌다.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보면서 프로그램의 질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이해했다.

# 지역엔 PD저널리즘이 없는 이유

지역언론은 심층적으로 지역현안을 파고들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에 인력이 최적의 출입처를 유지하는 현 시스템에서 심층보도를 기대하는 건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나마 PD저널리즘을 구현했던 시사프로그램도 최근 몇 년 사이 자취를 감췄다. 문제는 제작비, 제작인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시사프로그램은 없어지고 그나마 만들기 쉬운 시사토론만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방송은 신문과 달리 사주의 간섭에서도 자유롭고, 지역언론에 막강한 광고주 노릇을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눈치도 그나마 덜 보는 편인데 방송마저도 지역현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엔 보도마저 축소되는 분위기다. 지역방송의 어려운 경영 형편은 프로그램이나 보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 사람이 죽었다

고(故) 이재학 PD는 CJB청주방송에서 14년을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했다. 2017년 한해만 해도 세 개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4개의 프로그램 조연출을 맡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또 그걸 해냈다니 놀랍다. 이재학 PD는 비정규직 동료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가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재판으로 노동자임을 인정받고자 했지만 패소하자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재학 PD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사회와 노동단체 등이 전국적인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며, 사측과의 합의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죽음의 원인과 CJB의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벌였다. 진상조사를 통해 고인은 부당해고와 노동자임을 인정받았다. 이재학 PD는 170여 일만에 정규직으로 명예복직을 했다.

▲7월28일 마련된 고(故) 이재학 PD 추모공간에 그의 추모 사진이 놓였다. 사진=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7월28일 마련된 고(故) 이재학 PD 추모공간에 그의 추모 사진이 놓였다. 사진=최영기 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

# 비정규직 노동자 없이는…

진상조사보고서를 살펴보니 CJB의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정규직 대비 53.8% 정도이다. 이들 가운데 20~30대의 젊은 연령층이 82.3%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5년 이상 근속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적은 임금을 받고 있고, 과도한 업무량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이재학 PD처럼 조연출을 맡았던 이들은 정규직PD의 3배에 달하는 업무수행을 했다.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4대 보험 혜택조차 받지 않는다. 프리랜서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전에는 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하다 2018년도부터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CJB에 종속돼 있으며 자신의 업무를 대체할 만한 이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방송사를 경영하는데 꼭 필요한 인력을 비정규직 노동으로 대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

고(故) 이재학 CJB 청주방송 PD의 사망사건 진상조사 결과는 대한민국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동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면서도 그동안 본격적인 조사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 현실을 파악했으니 대책도 필요하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재허가 심사 때 경영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방송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노동환경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질 높은 콘텐츠를 기대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언론사들의 경영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는 아우성이 들린다. 열악한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내쳐질 수도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재학 PD의 뜻이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 이수희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 이수희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20-08-31 14:23:16
"지역방송 살리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부터", "지역언론은 심층적으로 지역현안을 파고들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에 인력이 최적의 출입처를 유지하는 현 시스템에서 심층보도를 기대하는 건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나마 PD저널리즘을 구현했던 시사프로그램도 최근 몇 년 사이 자취를 감췄다. 문제는 제작비, 제작인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시사프로그램은 없어지고 그나마 만들기 쉬운 시사토론만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 나는 그대의 말을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