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옹호 발언으로 비판받은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 본인의 삼성옹호 발언을 부인하려 없는 말을 지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수년 동안 대기업 중심 시각을 지적받은 가운데 그간 해명의 진정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앞서 양 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이던 2017년 3월6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유족 단체인 ‘반올림’을 “전문 시위꾼” “귀족 노조”로 표현했다. 기자들과 식사자리에서 “(반올림이) 유가족을 위해 활동하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아니다. 전문 시위꾼처럼 귀족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한다. 삼성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농성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유가족도 아니다. 그런 건 용서가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반올림은 당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500일 넘게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2015년 10월 삼성이 가족대책위와 사측 등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 권고안을 거부하고 자체 보상 절차를 강행하면서 시작된 농성이다. 심지어 양 의원이 반올림 폄하발언을 한 3월6일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숨진 고 황유미씨의 10주기였다.

언론 보도로 이 발언이 알려지자 양 의원은 페이스북에 “기자들과 식사자리에서 ‘반올림’ 관련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유족이 수긍할 수 있는 해법이 찾아질 때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해왔다”며 “황유미씨 사망 10주기에 유가족의 아픔에 더 큰 상처를 남긴 것 같아 가슴 아플 따름이다. 유가족 여러분과 오랜 기간 유가족의 곁에서 함께해주신 반올림 구성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 올린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날 한겨레 통화에서는 ‘귀족노조’ 발언 취지를 재확인했다. 3월7일자 한겨레(양향자 “반올림, 전문 시위꾼” 폄하 논란)는 “나도 ‘바닥 노동자’부터 시작한 사람으로 유가족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인정한다. 이재용 부회장도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보상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귀족노조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양 의원 발언(6일 통화 내용)을 전했다.

결국 양 의원을 영입했던 당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튿날인 8일엔 반올림이 성명을 내고 “10년 전 삼성은 고 황유미님 아버지 황상기님에게 ‘당신이 이 큰 회사와 싸워 이길 수 있느냐’며 조롱했다”며 “양씨의 말은 친재벌 언론이나 삼성의 언론플레이 가짜뉴스들과 얼마나 다른가” 물었다. 같은 날 민주당은 사과 논평과 함께 양 의원에게 ‘구두 경고’ 조치했고, 양 의원도 국회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추미애 당시 대표가 비공개 회의에서 제대로 사과하라 질타한 결과로 알려져 ‘등 떠밀린 사과’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6월 양 의원은 팟캐스트(정치신세계)에 출연해 한겨레 보도를 ‘왜곡 보도’로 규정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귀족 노조 등은) 평소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고 유가족한테 그렇게 피해 갈 얘기를 제가 할 리 없다. 그런데 기사가 그렇게 나왔다”며 “(반올림 폄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더니 (기자가)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본인과 통화한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판적으로 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방송이 공개된 뒤 비난 화살은 언론에 돌아갔다. 그러나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왜곡은 양 의원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문제의 식사 자리에 참석한 취재진 및 관련 자료에 따르면 양 의원의 반올림 폄하 발언은 실제 있었고, 기자가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 직후 한겨레 측은 관련 녹취 등을 제시하며 양 의원에게 공개적인 사실관계 정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후 해당 방송분은 삭제됐다.

양 의원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3일 통화에서 그는 이미 지난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사를 전했다. 여전히 온라인에는 양 의원 주장을 기정사실화해 ‘전후 사정 따져보니 보도에 문제가 있었더라’는 반응들이 남아 있다.

한편 양 의원은 과거의 일을 다시 꺼내드는 것이 ‘후배들’에게도 상처가 될 거라 우려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직업병으로 스러져 간 이들 역시 자신의 후배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양 의원의 궤적은 그가 대변해 온 진짜 동료들이 누구인지 의구심을 불러왔다.

▲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민중의소리
▲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민중의소리

가까운 예로 양 의원은 지난달 29일 YTN라디오(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년간이나 재판을 받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가”라며 “가깝게 일했던 분들 이야기도 들어보면 의사결정이 바로바로 되지 않아서 답답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라”고 했다. 

민주당 노웅래·박용진 의원 등은 ‘민주당 입장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고, 정의당은 “양향자 의원은 아직도 삼성전자 상무인가”라며 비판 논평을 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경우 “삼성 전직 임원 경력을 가진 분이 전직장 회장님을 옹호하는 것에 공중파를 낭비하는 것 자체가 기본적 이해상충 관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 의원 행위를 ‘로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양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이 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하자 이 교수는 “말도 안되는 꼬투리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둔갑술 부린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간 양 의원은 대기업에 판단 준거를 둔 시각을 꾸준히 보여줬다. 최고위원 시절 “기업의 불공정 관행이나 도덕적 일탈을 엄벌해야 하지만 기업에 지나치게 적대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지도 되돌아봐야 한다”거나 “대기업이 하청 기업이나 노동 임금을 착취한 결과로 보는 문제 의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발언 등이 그 예다. 지난 4월 뉴스핌 인터뷰에서는 광주지역 발전 전략으로 “중요한 것은 기업이다. 특히 마중물 역할을 할 대기업이 중요하다. 대기업이 들어오면 중소기업과 벤처, 스타트업 등 경제 구조가 다양해지는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국내 제일기업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고졸 신화’를 쓴 양 의원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직업병 피해자·유가족 목소리가 “전문 시위꾼” 떼쓰기로 치부됐고, 비판 기사를 왜곡 보도로 규정하기 위해 잘못된 주장까지 펼쳤다. 재벌 총수일가의 탈법·불법적 행위를 끊고 ‘오너 리스크’ 고리를 해소하자는 목소리는 경제위기를 방관하는 한가한 소리로 취급됐고, 비판 여론은 “제 진짜 뜻을 이해하지 못한 보도”라 칭했다.

정의당은 “삼성의 대국회업무 담당자로 스스로를 위치 지을 것인지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인지 양향자 의원 본인이 판단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삼성 임원 출신 정치인’을 정체성으로 유지할지, 떼어야 할 꼬리표로 여길지 스스로 선택할 시간은 무한정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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