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일까.
18일 신문을 받아든 독자라면 충분히 느겼음직한 궁금중이다. 이날 각 신문은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일제히 1면에 올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내각제 개헌은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하겠지만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때인만큼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내각제 연기를 ‘공식’ 제기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각 신문은 약속이나 한듯이 이 고위관계자를 철저히 익명 처리했다. 내각제 연기를 공식제기했다고 보도하면서 그 출처는 비공식 처리한 셈이다.

이날 일제히 보도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박지원 공보수석이다. 박 수석은 일요일인 17일 점심,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내각제 연기 문제를 제기했다. 박 수석은 이날 발언에 앞서 익명 보도를 전제 조건으로 내 걸었다고 한다. 얘기 중간에 한 기자가 ‘기명 보도는 안되느냐’고 재차 물었으나 익명 보도를 거듭 주문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청와대의 특성을 감안해 통상 3가지 정도의 익명 보도 기법을 구사한다. 일반적으로 ‘고위관계자’는 직급이 높고 발언 내용이 주의, 주장에 가까울때 사용된다. 이에 비해 ‘핵심 관계자’는 고위 관계자에 비해 직급은 낮으나 소위 집권세력의 ‘이너 서클’이라고 판단될 경우이다. 반면에 ‘소식통’은 주의, 주장 보단 ‘사실’에 근접한 내용을 털어 놓을때 자주 등장한다.

이들 단어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지면에 반영할지는 순전히 기자들의 판단에 따른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익명 처리 보도는 5공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전까지만해도 청와대발 기사는 대통령 일정을 알리는 차원에 머물렀다.

따라서 민감한 발언은 아예 보도를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5공 후반 권력 교체기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이른바 ‘기사다운 기사’를 송고하면서 익명 보도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18일자 보도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한겨레 성한용기자는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한 이상 이를 어긴다는 것이 솔직히 어렵다. 언론보도에 극히 민감한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해결방안 마련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익명 보도의 경우 결국 최종적인 피해자는 독자이다.
또 한국 정치의 음모화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 역시 익명 보도가 활개치는 한국적 언론상황과 무관치 않다.

익명 보도의 그늘에 정치인과 기자가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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