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 시행됐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노동자 죽음의 바탕에는 기업과 기업주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거치지 못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피해가족들과 시민사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하려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를 산재피해 유가족과 동료가 나서서 이야기합니다. -편집자주
 

제 동생 태규는 지난해 4월10일 경기 수원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일했지만 일용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안전화, 안전모, 안전벨트 같은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태규를 살릴 수 있었을 안전대, 추락방지망 같은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승인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운행된 화물용 승강기에 태워진 태규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공사 현장 차장은 팔에 깁스를 한 채 5층 엘리베이터에서 신호수도 없이 지게차를 운행하기도 했습니다. 안전교육도 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짓이었습니다. 첫날 태규와 함께 일했던 태규 형이 증인입니다.

회사는 태규 죽음에 대해 사과를 하기는커녕 근로계약서를 위조하는 등 회사 잘못을 감추기 급급했습니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에서 조사가 있었는데요. 근로계약서 위조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분명한데 검찰이 불기소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근로감독관이 되레 저한테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후, 태규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 위해 현장에 갔습니다.

▲지난해 4월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씨 누나 김도연씨.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지난해 4월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씨 누나 김도연씨.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2019년 4월14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사고 지점인 5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태규 것으로 추정되는 피범벅인 안전모가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있었습니다. 피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이튿날 다시 현장에 방문했습니다.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5층에 있었던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시공사 은하 종합건설 이사, 현장차장에게 물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왜 1층에 내려져있나?” “1층에 있는 게 보기가 좋아서 내렸다”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시공사 이사는 본인이 내리라고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내려도 된다고 해서 내렸다”라고 했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아래에 있는 심장 제세동기로 태규를 살리고자 심폐소생술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심장 제세동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현장을 훼손했지만, 시공사 이사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사측의 증거 은폐를 용인하기까지 했습니다

발주처이자 건축주인 ACN 관계자는 안하무인 막말을 퍼붓습니다. “우리가 피해자다. 재수 없게 여기서 죽어 다 된 밥에 돈 들게 만든다”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졌으니 엘리베이터 업체에 연락하라”며 인면수심 태도로 저를 조롱하고 밀치기까지 했습니다. 공사현장에 문지기를 배치하고 사유지라면서 들어가려면 공문을 보내라고 합니다. 안 그러면 신고한답니다.

▲지난해 4월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씨 납골당.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지난해 4월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씨 납골당.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이런 ACN이 경기도지사에 의해 유망 기업으로 인증까지 받았습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빚어낸 죽음임이 분명한데 태규를 죽게 만든 회사가 상도 받는 세상이니 더욱 억울한 맘이 듭니다.

7개월이 지날 무렵,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봤습니다. 태규가 떨어졌을 때 80m를 내달려 응급조치를 했다던 시공사 이사는, 화면 속에서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꽃은 채 동네 마실가듯 어슬렁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짐승이 죽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태규 죽음이 이들에게 어떻게 취급되었고, 또 어떻게 취급될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이후로도 사측의 태도는 CCTV 화면 속 시공사 이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저희 유가족이 보름 동안 밤을 새워 조사했던 자료를 경찰에게 제출하며 강력히 재수사를 요구했습니다. 경찰은 시공사 대표 등 6명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수사결과를 검찰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실무자들의 책임만 묻고, 시공사 대표 등 실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무혐의 불기소 처리하여 태규와 저희 유가족을 두 번 죽였습니다. 경찰의 부실했던 초동수사보다 못한 검찰의 처분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씨 모녀.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지난해 4월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청년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씨 모녀.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지난 15일, 1심 2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승강기안전관리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시공사 현장소장과 현장 차장에게는 징역 1년과 징역 10월을 구형했습니다. 승강기 제조업자에게는 벌금 300만원, 은하 종합건설에는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의 양형규정에 비해서도 낮았습니다. 재판부는 감정적 부분과 당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라며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기사를 써 달라 기자들에게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법 자체의 처벌규정이 미약한데, 양형규정을 통해 처벌수위를 한 번 더 낮추고, 법을 적용하는 검찰과 법원이 또 한 번 무력화하는 상황입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이래서 노동자들이 반복해서 죽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죽어도 실형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이런 상황을 바꿀 힘이 있는 발주처와 사장들은 기소도 되지 않고, 기업은 벌금 몇 푼 내고 끝나니 왜 기업이 돈과 노력을 들여 위험을 없애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겠습니까?

검찰과 재판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본인들 가족이 죽었어도 이렇게 면죄부를 주었을 겁니까? 왜 죽은 태규는 있는데 죽게 만든 회사는 죄가 없습니까? 이렇게 면책된 기업들이 무엇이 무서워서 안전 관리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이 나라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편입니까?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제공

노동자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관행부터 꼭 바꿔야 합니다. 노동자가 왜 죽는지 기업의 책임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상 규명은 고사하고 책임자 처벌 역시 눈앞이 캄캄합니다. 꿈에서라도 태규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 처벌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뀔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더는 노동자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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