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이재학 PD와 아들 한빛이는 같은 이유로 떠났다
이재학 PD와 아들 한빛이는 같은 이유로 떠났다
[ 연속기고 ⑤ ] “한빛이가 떠난 바로 그 이유로 오늘도 방송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된다”

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 시행됐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노동자 죽음의 바탕에는 기업과 기업주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거치지 못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피해가족들과 시민사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하려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를 산재피해 유가족과 동료가 나서서 이야기합니다. -편집자주

 

“방송국이 너무해요. 계약금으로 받은 임금을 이미 전세금이나 빚을 갚는 등 다 써버렸는데, 반환하라 독촉하는 일은 정말 못할 짓인 거 같아요. 비정규직은 1년에 겨우 6개월 일하는 경우가 많아, 일정한 수입이 없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방송비정규직의 절박한 사연을 접한 제 아들 고 이한빛 PD의 말입니다.

한빛이는 CJ E&M의 tvN의 정규직 공채 드라마 PD로 입사했습니다. tvN의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로 의상, 소품, 식사 등 촬영준비, 데이터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등 업무를 했습니다. 혼술남녀는 전체 16회 중 4회분을 사전 촬영으로 진행했으나, 방영을 앞둔 8월 초에 촬영·장비·조명 담당 외주업체 및 소속 스텝이 교체됐습니다. 교체를 이유로 일부 계약직 스태프가 해고됐습니다. 한빛이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설움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방송제작 현장에서 비정규직 스태프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이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하지 않냐고 말해봤지만 돌아온 건 배제와 따돌림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문제 제기로는 개선될 수 없었던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 문제에 제 아들 이한빛 PD는 2016년 10월26일 절규하는 글을 남기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사진=한빛센터
▲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사진=한빛센터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한빛이가 생의 끝에 남긴 글엔 비정규직을 착취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외주업체를 해고하는 임무를 부여받으며 방송업계와 자신의 일에 대한 절망감이 커졌고, 결국 그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한빛 PD가 꿈꾸었던 세상을 향한 날개짓

고 이한빛 PD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했던 청년입니다. 학생시절 기륭전자와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 한빛이에게 외주업체 비정규직 해고 등의 업무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강압처럼 느껴지며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빛이는 죽음으로 방송계 비정규직의 문제를 고발한 것입니다.

한빛이가 죽은 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습니다. 한빛의 유지를 이어받아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빛의 죽음은 방송노동자의 노동환경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방송계의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빛센터와 노조들의 노력으로 방송제작 현장의 노동환경이 자그마한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빛이의 생명을 건 날개짓이 방송계 비정규직들에게 힘이 된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 사진=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 사진=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그러나 방송노동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방송노동계의 가장 고질적인 구조 문제는 장시간 노동과 계약서도 없는 프리랜서 구두계약입니다. 계약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고, 아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형 하도급 구조와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도제식 문화, 외주제작 형식의 하도급 구조는 턴키계약이라는 변종 계약 방식으로 노동자를 압박합니다. 주당 120시간이라는 살인 노동을 가능케 하는 고용구조입니다. 게다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사고가 나도 드러내지 않거나 노동자가 개인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또다시 올해 2월4일, CJB청주방송에서 근무한 이재학 PD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에서 14년 간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PD로 일해왔습니다. 계약서 한 번 작성 않은 프리랜서였지만, 정규직 PD보다 더 강도 높은 업무량을 소화했습니다. 청주방송은 이런 이재학 PD를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해버렸습니다. 이재학PD가 인건비 증액, 인원보강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자마자 벌어진 일입니다.

같은 해 9월 부당해고라며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냈고, 지난 1월 22일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이재학 PD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마지막으로 기댄 법원조차 진실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그는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재학PD는 한빛이가 떠난 바로 그 이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사진=반올림 제공
▲ 사진=반올림 제공

이러한 불의한 사망 사고와 산재사고가 나도 방송사와 책임자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체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습니다. 이한빛 PD가 방송제작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송제작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망사고와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구조를 바꾸도록 방송노동 법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죽음에 방송사, 제작사, 원하청 등 모든 업체는 물론 그 책임자, 정부관련기관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다시 한빛이와 이재학 PD와 같은 죽음이 계속돼서는 안 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