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 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시민사회의 거센 요구와 국정감사 지적을 받고 여러 조사를 진행한 뒤 몇 가지 의미 있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 위반 사항을 조사하여 관련 법령에 따라 과징금·과태료 처분을 내렸고, 원안위의 직접적인 처분 결과는 아니지만 서울반도체에서 사고를 발생시킨 장비와 유사장비가 폐기됐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허용선량기준을 초과하여 방사선에 피폭됐음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처분 내용에 비판적으로 지적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첫째, 건강진단·교육 및 기록관리를 강화하는 일부 제도개선 계획을 밝혔지만, 유사사고 재발을 막기에는 부족합니다.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분석 혹은 검사장비는 허가대상에서 제외돼 신고만 하도록 돼있습니다. 신고대상 설비는 정기적인 검사 대상에서 제외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이 때문에 서울반도체에서도 신고 없이 임의로 설비를 이동시키고(2대) 다른 회사로 보내고(3대) 해외로 수출까지 했지만(1대), 사고가 발생하고 난 후에야 원안위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허가대상 설비에서는 처벌되는 위법사항이 신고대상 설비가 되면 처벌에서 면제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번 사고처럼 방사선 선량한도를 초과했을 때 허가대상이라면 2개월 정지 또는 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있지만, 신고대상 설비는 이런 처분을 받지 않습니다. 손쉽게 안전장치를 해제할 수 있어 이번 사고를 유발했던 종류의 설비에 대해서는 허가대상 설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번 처분은 과징금 과태료를 모두 합쳐도 4050만원에 불과해 연매출 1조원이 넘는 서울반도체와 같은 기업에게는 너무나 미약합니다. 이번 사고처럼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사고에 대해서는 처벌수위를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부실한 관리로 사고를 방치하고, 또 사고에 대한 처벌에서도 면제되는 현실이 사고를 부추기고 무책임한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처벌을 강화하고 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빌딩 앞에서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은 8일 오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입주한 서울 종로구 KT빌딩 앞에서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 제공

피폭 인명피해, 고작 과징금·과태료 4000만원

둘째, 서울반도체와 원안위의 안이한 인식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요인입니다. 

원안위는 이번 행정처분에서 ‘7인이 기준을 초과하여 방사선에 피폭’되었음을 최종 확인하고 있습니다. 방사선 작업종사자의 노출한도는 일반인에 비해 10배나 높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이 기준까지 초과했습니다. 과거 반도체 산업 방사선 노출사례에서 일반인 피폭한도를 초과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방사선 작업종사자에 대한 기준까지 초과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특히나 이번 사고는 간접피폭을 넘어 X-ray에 직접 피폭되는 일이 발생했고, 두 명의 피해자에게는 홍반, 통증, 열감 등 뚜렷한 증세가 나타난 상황입니다. 이런 증상을 볼 때 방사선 종사자 선량한도에 비해서도 50~100배 심하게 피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사선 피폭이 특히 위험한 것은 오랜 기간의 잠복기를 거쳐서 암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손에게 유전적인 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안위 처분은 이런 심각한 위험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고 안전하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반도체 유현종 대표이사는 지난해 8월22일 직원들을 모아놓고 원안위의 조사결과를 근거로 들며, ‘피폭된 노동자들에게 별 이상증세가 없’고, ‘X-ray 노출량이 미미해서 안전’하다는 취지의 설명회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피폭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걸 확인한 원안위가 나서서 서울반도체가 사고 위험을 무시하고 노동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원안위부터 방사선 피폭사고에서 암과 유전장애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경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부실한 조사로 위험을 축소하고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원안위는 서울반도체 노동자 237명을 조사해 ‘비정상작업을 주장하는 2인이 확인됐고, 그 외에는 비정상 작업에 대한 목격이나 진술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이 결과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서울반도체에서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진행하는 비정상작업’에 대한 증언이 이미 상당수 있었는데, 조사결과에는 터무니없이 축소됐습니다. 서울반도체는 지난해 노동부와 원안위의 조사과정에서 문제를 축소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부실한 조사결과는 부실한 조사과정이 낳은 것입니다. 공정한 조사였는지 납득할 수 있게 원안위는 조사방법과 세부결과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바랍니다.

넷째, 유사사고를 막을 대책이 없다면 위험설비를 폐기해야 합니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원안위는 사고발생장비와 동일 유사 장비를 사용하는 신고기관(59개 기관, 85대)을 조사하여 ‘안전장치 해제 등 비정상작업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서울반도체 조사에서 ‘비정상 작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확보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과 달리, 다른 신고기관들에서는 이러한 객관적인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실한 조사로 ‘비정상작업이 없었다’는 확인을 해준 것이라면 지극히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는 이번 사고발생장비처럼 안전장치가 쉽게 해제되는 설비를 ‘안전의 구조적 결함이 있는 장치’로 규정하여 정부가 폐기조치해야 한다는 서명을 받아서 원안위에 제출합니다. 위험을 미리 막지는 못해도, 확인된 위험은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안위는 위험설비를 수거·폐기 조치해야 마땅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