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하면서 유료방송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통신 중심의 시장 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유료방송 업계의 현안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두 번째 순서로 ‘지역성’ 문제에 주목했다.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통신사와 달리 직사채널을 통해 지역 단위의 방송을 송출해왔다.  ‘지역성’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케이블이 ‘지역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가 공존한다. 케이블의 ‘지역성’이라는 가치가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케이블의 지역 콘텐츠 현황을 살펴보고 과제를 점검하기 위해 주목할만한 시도를 해온 3명을 인터뷰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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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감사원이 서울 용산구가 관할하는 생활폐기물 관련 사업 업체 임원이 구청장의 친인척인 점을 지적하며 시정 요구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취재해온 천서연 기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조치다. 이른바 ‘RFID 대형감량기’ 사업에서 담당 업체가 구청장 친인척과 연관됐다는 제보를 접하고 그는 취재에 나섰다. 업체를 직접 방문하고 등기부 등본을 떼 임원이 구청장의 외사촌형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지역 의회에서 쟁점으로 부상했고 주요 지상파 방송사도 후속 보도하면서 전국구 이슈가 됐다.

▲ 천서연 딜라이브 기자.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 천서연 딜라이브 기자.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중앙에서 보기에 큰 이슈는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지역 사람들에게는 정말 중요하고 내 생활에 밀접한 이슈다.” 천서연 기자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 말을 여러번 강조했다. 그는 “지역은 작은 중앙과 같다. 행정, 입법기관이 있고 산하기관도 있다.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은 이슈, 관에서 제공하는 자료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슈를 드러내고 의제를 만들어내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천서연 기자를 18일 서울 가양동에 위치한 딜라이브 사무실에서 만났다.

천서연 기자는 대학생 때 지역 KBS에서 일하면서 방송 업계 일을 시작했다. 2003년 딜라이브에 카메라 기자로 입사했다가 이후 취재기자로 옮겼다. 지역 밀착형 취재로 주목을 받은 천서연 기자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우수프로그램 시상식 최다 수상자이기도 하다.

SO 기자들의 업무는 다른 기자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전국 곳곳에서 사업하는 딜라이브 권역 안에서 3~4년에 한번씩 ‘출입처’격인 ‘지역’을 옮긴다. 현재 천서연 기자의 출입처는 서울 마포구다. 구청, 구 의회, 산하기관, 동사무소 등 구 곳곳을 누비며 행정, 정치, 사회, 문화, 민원 등을 전방위적으로 취재한다. 

▲  ‘RFID 대형감량기’ 전담 회사 임원이 용산구청장과 친인척 관계라는 천서연 기자의 보도.
▲ ‘RFID 대형감량기’ 전담 회사 임원이 용산구청장과 친인척 관계라는 천서연 기자의 보도.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를 묻자 이전 출입처인 ‘용산구’에서 집중했던 ‘RFID 대형감량기’ 사업 보도라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2~3주 아프면서 취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의혹을 부인하다 부구청장이 인정하고 그럼에도 문제는 없다고 했으나 감사원에서 시정 요구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보도한 지역 이슈가 크게 번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는 등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천서연 기자는 “지역에서 우리 채널이 무서운 이유가 있다. 지상파와 종편에서 우리 방송을 모니터링한다. 우리가 쓴 기사가 더 널리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예민해하는 거 같다”며 지역 언론 그 자체로는 영향력이 크지 않더라도 파급 효과가 있다고 했다.

중앙이 보도한다고 지역 보도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같은 사안을 다루더라도 지상파 방송과 딜라이브 보도에 차이가 있었다. 천서연 기자는 “같은 사안을 다룬 지상파가 리포트 하나로 보도할 때 우리는 3개를 내보냈고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 다룰 수 있었다. 반면 여러 이슈를 다루는 지상파는 한번 치고 빠지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중앙에게 단신이 우리에게는 메인이다. 중앙에서는 가끔 단타로 보도하고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도 차이다. 우리는 후속보도이건 연속보도이건 끈질기게 다룰 수 있고 이슈를 키울 수도 있다. 우리는 1분20초 리포트에 갇히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가 출자한 ‘마포인재육성 장학재단’의 방만 운영 문제도 그의 손을 거쳐 바로잡혔다. 천서연 기자는 “정보공개, 자료조사 등으로 취재했다. 3억원의 장학금을 주는 재단인데 운영비로 1억5000만원 가량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장학재단과 비교를 했고 행정안전부 지침을 위반한 사실도 찾아내 보도했다”고 했다. 

천서연 기자는 지역 비리를 캐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 밀착형 이슈에 주목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조금씩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검증하는 ‘보도자료 팩트체크’ 코너가 대표적이다. 천서연 기자는 “자치구에서는 정책을 홍보하려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쏟아낸다. 온갖 정책자료에 사업계획을 내는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방송 한번 타고 나서는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거의 청사진이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 '보도자료 팩트체크' 코너.
▲ '보도자료 팩트체크' 코너.

 

“완공됐어야 할 편익시설.. 착공도 못해” 리포트를 통해 다룬 ‘서울 복합화력발전소’ 이슈가 대표적이다. 복합화력발전소 건립 당시 마포구는 2017년까지 ‘주민편익시설’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착공도 하지 않았다. 취재 결과 지역구 의원과 마포구, 시공사의 의견이 맞지 않아 시기를 놓치게 된 문제가 있었다.

‘제로페이 팩트체크’도 반향이 작지 않았다. 서울시에서 소상공인 간편결제 시스템인 제로페이를 적용한 자치구에 특별교부금을 편성하면서 자치구에서 경쟁적으로 관련 조례까지 마련했다. 마포구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정책을 마련해 교부금을 받았으나 정작 현실에서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천서연 기자는 “조례를 보면 체육센터나 주차장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했을 때 10% 할인해준다는 조항이 있는데 현장에 가 보니 할인이 안 되더라. 보도 이후 마포구에서 결제 시스템을 완비했다. 시스템부터 갖추고 조례를 제정해야 하는데 순서가 잘못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통시장 화재 사건이 이어지면서 서울 중랑구는 전통 시장 9개에 2개씩 미니소방서를 배치한다고 공언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점도 천서연 기자 눈에 들어왔다. 취재 결과 시장 두곳은 각각 하나씩만 배치했다. 중랑구는 장소가 협조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취재 다음날 바로 설치를 완료했다. 천서연 기자는 리포트를 통해 “불과 하루만에 설치가 가능한 것이었다면, 장소 협조의 어려움을 이유로 1년이 넘게 설치되지 못했다는 것은 꼬집어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자치구별로 같은 정책을 비교하는 '업앤다운'. 고양시와 서울시 공공자전거를 비교했다.
▲ 자치구별로 같은 정책을 비교하는 '업앤다운'. 고양시와 서울시 공공자전거를 비교했다.

지역별로 정책을 비교하는 ‘업앤다운’ 프로젝트도 주목을 받았다. 특정 사안을 놓고 가장 잘 하고 있는 자치구와 그렇지 않은 자치구를 비교하는 콘셉트다. 천서연 기자는 “언론에서 문제제기는 많이 하는데 해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 그 해답을 찾으려는 취지로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바꾸면 돼’라고 메시지를 주는 거다. 우리가 여러 지역에서 운영하는 MSO(복합종합유선방송사업자)다 보니 여러 권역을 비교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여러 자치구를 비교하는 일은 취재가 어려웠지만 지역별 차이가 뚜렷하게 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겨울철 ‘제설함’ 실태를 분석한 결과 한 자치구는 열화칼슘이 굳어 있거나 물과 섞여 사용하기 힘든 반면 다른 자치구는 보관상태가 좋은 것은 물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바가지를 비치해놓기도 했다. 

▲ 천서연 딜라이브 기자.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 천서연 딜라이브 기자. 사진=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구청장 친인척 비리, 장학재단 방만 운영, 편의시설 문제 등은 중앙에서는 잘 모르는 이슈다. 그러나 지역민들에게는 중요하다. 특히 복합발전소 주민시설 문제는 주민들이 관심 갖고, 분노했던 사안이다. 이처럼 지역에서는 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슈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지 궁금해하신다. 그걸 긁어주는 게 바로 지역채널의 역할이다.” 

더욱 밀착된 보도를 하면서 동시에 중앙언론과 다른 접근을 하고 다른 시각을 보여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천서연 기자는 “지역은 감시와 견제에서 동떨어져 있다. 중앙 중심 시각의 보도가 많고 지역 시각에서 견제하고 목소리 내는 언론이 많지 않은 거 같다. 사실 지역 미디어들이 보도자료 베끼기를 많이 한다. 적어도 지역 케이블은 그렇게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케이블의 ‘지역성’이 화두다. 천서연 기자에게 케이블 ‘지역성’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패러다임 전환을 맞는 시기다. 지금까지를 평가하자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큰 결과물도 없었다는 지적도 맞다. 그러면 없어져야 하는 건가? 지역이 존재하는 한 방향성은 분명하다. 1기 때 못 만든 성과를 앞으로 더 크게 만들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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