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하면서 유료방송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통신 중심의 시장 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유료방송 업계의 현안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1994년 9월28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뉴미디어 탄생 축하쇼’가 열렸다. 당시의 뉴미디어는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아닌 ‘케이블’이다.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출범 때 “깨끗한 화면 맑은 음향 24시간 방송 30개 채널”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전기선을 통해 방송을 내보내는 케이블의 ‘강점’은 지상파 방송 직접 수신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한계이기도 했다. 케이블 도입 전만 해도 TV를 통해 볼 수 있는 방송은 무료 지상파 채널뿐이었다. 방송을 보려면 ‘안테나’는 필수였고 TV가 잘 나오지 않으면 안테나를 돌려가며 화질을 체크해야 했다.

“솔직히 안 팔리고 싶은 케이블 사업자가 있을까요.” 유료방송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되는 한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통신3사 IPTV의 시장 점유율이 케이블을 앞선 것은 물론이고 케이블 SO 1, 2, 3위 사업자가 나란히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통신3사가 추진하거나 검토하는 인수합병이 완료되면 유료방송 점유율 86%가 통신사와 계열사의 몫이 된다. 25년 동안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 유료방송 점유율 추이. 2003~2007년 자료=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집(2012년 발간). 2008~2017년 자료=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집(2018년 발간). 2018~2019년 자료=과기정통부 유료방송 가입자 수 및 시장점유율 발표자료. 디자인=이우림 기자.
▲ 유료방송 점유율 추이. 2003~2007년 자료=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집(2012년 발간). 2008~2017년 자료=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집(2018년 발간). 2018~2019년 자료=과기정통부 유료방송 가입자 수 및 시장점유율 발표자료. 디자인=이우림 기자.

 

노태우 정부 국책사업 케이블

‘케이블 방송’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민정당이 발표한 공약 사항으로 처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지상파를 제대로 보기 힘든 난시청 가구가 적지 않았고 민주화 이후 다양한 방송채널에 대한 수요도 커졌다. 케이블 도입은 1990년 ‘방송제도 개편안’을 통해 공식화된다. 전국 권역을 116개로 나누고 각 권역마다 개별 사업자가 독점 운영하도록 했다. 이후 SO 간 겸영 제한 조항이 사라져 CJ헬로비전, 태광티브로드, 현대HCN등 대기업 중심으로 여러 SO를 복합 소유하는 시장으로 재편된다.

케이블 방송 사업자는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나뉜다. 콘텐츠 사업자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라고 부르고 케이블 플랫폼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라고 부른다. 엠넷, 투니버스, tvN, 종편 등 채널이 PP다. CJ헬로, 딜라이브, 티브로드, 현대HCN 등이 대표적인 케이블 SO다. 케이블이라고 하면 ‘채널’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를 송출하는 SO사업자가 중추다. SO는 각 지역에 승인을 받은 케이블 사업자들로 해당 지역 내에서 여러 채널들을 모아 서비스를 하는 개념이다. 이용자 입장에선 매월 유료방송 요금을 납부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케이블 도입으로 시청자들은 처음으로 돈을 내고 방송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시청자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뉴스 등 다양한 전문 채널을 시청할 수 있게 됐고 24시간 방송 도입으로 심야에도 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케이블SO는 해당 지역 내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사’채널을 통해 지역성을 구현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케이블SO는 도입 8년 만에 가입자 1000만을 돌파했다. 당시 전국 가구 수가 1600만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가구 3분의 2가 케이블에 가입한 셈이다. 이후 케이블은 인터넷, 인터넷 전화 등 사업에도 진출해 사업 다각화를 하며 안정기를 맞는 듯 했다.

“핸드폰 바꾸면 방송이 공짜”

‘초고속인터넷 가입하면 방송공짜’ ‘핸드폰 바꾸면 방송공짜’ 한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전단지다. 이 같은 전단지의 등장은 케이블 산업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케이블SO는 외부 경쟁자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0년 들어 인공위성을 통해 방송을 송신하는 위성방송이 도입됐고 2009년 통신3사 모두 IPTV를 출범한다. 케이블SO는 IPTV도 지역별로 사업을 하는 ‘동일 규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케이블TV 20년사’는 당시 상황을 “전국 규모 거대 통신사업자의 진입으로 케이블 사업자들은 힘겨운 경쟁에 직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통신사 진출을 계기로 유료방송시장은 요동친다.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케이블에 비해 시작부터 디지털 기반인 IPTV는 VOD 등 양방향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가격’ 경쟁력도 차별 포인트였다. 이때 통신사의 주무기인 ‘인터넷’ ‘핸드폰’ 등과 묶은 결합상품이 등장해 시청자 입장에선 케이블에서 IPTV로 갈아타야 할 요인이 커졌다. 1만원대 요금제 경쟁이 이어지던 가운데 KT는 월 8000원대 요금을 내놓기도 하는 등 출혈경쟁이 심각해졌다.

▲ 통신3사는 결합상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며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 통신3사는 결합상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며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케이블 스스로 형성한 ‘저가 구조’가 발목을 잡은 측면도 있다.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중계유선사업자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저가구조가 형성됐는데 이후 바로잡지 못하다 통신사의 등장으로 저가출혈 경쟁이 심각해졌다”며 “요금뿐 아니라 홈쇼핑 송출 수수료 수익이 적지 않다보니 인상 요인도 크지 않았다”고 했다.

IPTV의 성장은 파죽지세였다. 도입 직후 가입자가 2009년 10월 기준 100만을 돌파했고 2010년 4월 200만, 2010년 12월 300만, 2011년 6월 400만명을 넘어섰다. 당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연평균 IPTV 가입자 증가 속도가 세계 1위”라고 분석했다. 2018년 기준 IPTV의 방송사업매출액은 3조4358억원 규모로 SO(2조898억)를 상회한다. 같은 해 영업이익은 IPTV가 케이블의 6배에 달하는 1조8795억원을 기록했다.

케이블업계는 통신시장의 영향력이 방송으로 전이되는 ‘시장지배력 전이’가 일어난다며 ‘결합상품 금지’를 요구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 ‘유료방송 전체 시장 점유율 33% 상한 규제’를 3년 일몰로 도입했으나 국회가 공전하면서 폐지됐고 현 정부는 유료방송 인수합병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같은 규제가 다시 도입될 가능성은 낮다.

“TV가 안 나와” 초유의 ‘블랙아웃’

2011년 TV를 켜도 방송이 안 나오는 초유의 ‘블랙아웃(송출중단)’사태가 벌어졌다. 전국 93개 SO는 2011년 11월28일 KBS2, MBC, SBS HD방송 재송신을 중단했다. 이듬해 1월에는 KBS2의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송 송출을 하루 동안 중단해 1200만 가구가 KBS를 시청하지 못했다.

발단은 2007년 재송신 분쟁이다. 케이블SO는 케이블 채널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도 함께 내보냈다. 전파로 송출되는 지상파 방송을 다시 케이블로 끌어와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를 ‘재송신’이라 부른다. 2007년 방송 디지털 전환이 추진되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들은 케이블SO에 ‘재송신’ 대가를 요구한다. 지상파는 SO가 무단으로 지상파의 콘텐츠를 내보내 저작권, 저작인접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케이블SO는 오히려 자신들이 지상파를 보지 못하는 시청자의 난시청을 해소해줬고 지상파가 도달하는 시청자를 늘려 지상파 광고 수익 규모도 키웠다며 반발했다.

▲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수수료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수수료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이 가운데 사업 진출과 동시에 지상파와 협상하게 된 IPTV는 재송신 대가를 가입자당 280원에 빠르게 합의했다. 1만원 가량의 유료방송 요금 중 지상파 채널 하나당 280원씩 수수료 몫으로 떼주는 식이다. 반면 이전부터 지상파를 내보내온 케이블은 협상이 결렬돼 ‘블랙아웃’사태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다. 케이블SO와 지상파의 소송은 2015년 기준 67건에 달했다. 현재 지상파는 500원대 재송신 수수료를 요구하며 케이블과 대립하고 있다.

노동 외면해온 공적 미디어

유료방송 노동자를 상징하는 희망연대노조는 원래 ‘지역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노조로 출범했다. 2010년 씨앤앰(현 딜라이브)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 상담을 하면서 ‘1호 케이블 노조’가 됐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케이블 방송을 사기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들여다보니 정부 승인과 규제를 받는 공적 성격이 있고, 지역 미디어를 부각하면서 출범했다. 그런데 지역 독점화 과정에서 노동자는 외주 비정규직에 시달리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적 역할을 하는 사업자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써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이 요원했다.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후 비정규직 노조 설립을 도왔다.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정규직이 함께해 ‘아름다운 연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조도 설립됐고 최근 CJ헬로 비정규직 노조가 들어섰다. 정부가 노동자 직고용을 외면하는 가운데 유료방송노동자 직접고용 등 운동을 벌이고 있다.

▲ 2014년 12월 씨앤앰(딜라이브) 노동자들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14년 12월 씨앤앰(딜라이브) 노동자들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서 노동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통신사 독점, 케이블은 없어도 될까

케이블 가입자 점유율을 조금씩 빼앗아오던 통신사는 인수합병을 통해 가입자를 대거 끌어오며 판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2015년 SK텔레콤이 당시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추진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권역별 독점 우려가 있다며 불허했다. 그러나 이후 넷플릭스, 유튜브 등 해외 미디어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갖춘 콘텐츠 사업자 육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인수합병 허용 기조로 바뀐다.

지난 13일 LG유플러스의 케이블 1위 CJ헬로 인수가 승인됐으며 SK텔레콤은 케이블 2위 티브로드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합산규제를 재도입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는 전제로 KT도 케이블 3위 딜라이브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통신3사의 인수합병이 성공하면 유료방송 점유율 86.15%를 통신3사와 계열사가 갖게 된다. 몸집을 키운 통신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콘텐츠에 투자해 콘텐츠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사업자들의 발상이자 정부의 기대다.

그러나 통신사 주도 환경에 따른 우려가 각계에서 나온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거대 통신사들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케이블 스스로 지역성이라는 경쟁력을 입증 못한 면도 있다.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며 “그럼에도 케이블 사업자가 해온 공적 역할이 있기에 변화한 매체 환경에서도 이를 보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  2019년 상반기 유료방송 점유율과 현재 추진 또는 검토 중인 유료방송 인수합병 성공시 점유율. 디자인=이우림 기자.
▲ 2019년 상반기 유료방송 점유율과 현재 추진 또는 검토 중인 유료방송 인수합병 성공시 점유율. 디자인=이우림 기자.

 

미디어 단체들은 SO가 사라지면 유료방송 ‘지역성’ 가치가 사라지는 점을 우려한다. 케이블SO의 지역성 구현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지역 시민단체와 연계해 시청자 참여 콘텐츠를 내보내면서 시민 참여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일부 방송은 지역밀착형 보도로 주목 받았다. 제주도에서는 지상파 못지않은 SO 뉴스 시청률이 나왔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지상파 방송사들이 개별 지역 개표현황을 전하지 않은 반면 지역 SO들이 지역 개표방송을 하며 일부 SO는 지상파 시청률을 추월하기도 했다. 지난 4월 강원 산불 당시 CJ헬로는 지역 밀착형 재난방송을 선보였다.

미디어 시민사회단체들은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LG유플러스와 CJ헬로의 지역 콘텐츠 투자액이 전체 투자액의 1%에 불과한 점을 지적하며 정부에 ‘지역성 보장을 위한 심사대책 및 정책’ ‘지역콘텐츠진흥 분담금(펀드)’ 조성 등을 요구했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독점’ 폐해도 우려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특정 지역에서 점유율이 높은 케이블 사업자들이 채널을 적게 편성하고 가격을 높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독점이 심화할수록 이런 경향도 커질 전망이다. 방송사들은 플랫폼과 힘의 불균형을 걱정한다. 플랫폼이 채널 제공 가격, 채널 배정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어서다. 한 공익채널 관계자는 “통신사의 경우 채널 편성을 할 때 더욱 상업화하는 경향을 띤다. 공익채널 제도에 대한 이해도 역시 떨어진다”고 했다.

가입자 ‘빼가기’도 예견된다. 인수된 케이블 사업자는 껍데기만 남긴 채 가입자를 IPTV로 옮길 수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가 인수 조건으로 부당한 가입자 빼가기 등을 금지한다고 밝혔으나 그 기준이 모호해 어떻게 점검할지 의문”이라며 “실제 KT에서 스카이라이프 가입자를 빼내려 한 사례가 있어 같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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