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이라 불리는 안전운임 결정 논의가 고시일(10월말)을 넘겨 난항을 겪고 있다.

화물노동자에게 적정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 운행을 막자는 게 제도 취지인데, 당사자들은 논의기구인 안전운임위원회가 이 ‘적정’을 논하는 프레임을 잘못 설정했다고 우려한다. 화물노동자들이 가입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이 이대로 표결에 들어가면 파업한다는 입장이다. 안전운임제는 시행을 불과 20일 앞두고 있다.

안전운임위원회는 화물차 사고로 인한 죽음을 막기 위해 꾸려졌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53%가 화물차 운전자다(3월 경찰청 정책브리핑). 지난 3년간 화물차 사고로 총 2909명, 매일 2~3명이 숨졌다. 사람이 숨진 교통사고 가운데 75.5%가 화물차 사고다. 화물노동자들은 화물차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꼽아왔다.

화물노동자들은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다. 자기 명의 차량을 운송업체에 등록하고, 지입비와 번호판값 등을 내고 일감을 얻는다. 화물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개인은 화물운수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다.

이들은 당초 운수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90년대 중반부터 개인사업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최저임금도, 노동시간 제한도 없다. 차 연료비 450여만원과 통행료 80여만원을 비롯해 차량정비·타이어교체, 자동차세·환경개선분담금·주차료 등 각종 요금도 모두 개인 몫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지난달 26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안전운임 공익위원안 일방 강행처리 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사진=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지난달 26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안전운임 공익위원안 일방 강행처리 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사진=공공운수노조

한편 이들은 화주-화물주선업체-운송업체-차주(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물류 공급사슬의 밑바닥에 있다. 운송을 의뢰한 화물주인이 운송업체에 운임을 지급하면, 단계마다 떼고 남은 돈이 화물노동자 손에 떨어진다. 운수업체나 주선업체가 중간에 더 끼기도 한다. ‘화주’는 운송을 의뢰한 화물 주인을 말하는데, 현대자동차, 한국지엠처럼 주문 규모가 큰 대기업이 대표로 꼽힌다. 

이렇다보니 화물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려면 과로‧과적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교통연구원의 화물운송시장 동향에 따르면 시멘트 화물노동자는 하루 평균 16시간 한달에 25일가량 일해 230만원을 벌었다. 시간당 7587원 꼴이다. 장시간 중노동으로 교통사고가 나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김종인 화물연대본부 미래전략실장은 “자살하거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많지만, 집계는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정부와 화물업계는 화물노동자의 과적‧과로가 도로안전을 위협한다는 데 공감해 안전운임위를 꾸렸으나, 논의가 대기업인 화주 의견에 무게를 두고 진행된다는 우려 목소리가 높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토교통부 산하 안전운임위가 꾸려져 적정운임을 논하고 있다. 4명의 공익대표위원과 화물운송시장 공급사슬 정점에 있는 화주(화물주인)와 운수업체, 차주(화물노동자) 대표위원 각 3명이 꾸렸다. 개정안은 안전운임 지급을 어기면 500만원 과태료를 물리고, 불법 리베이트 적발시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매기도록 했다. 

▲사진=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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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위는 두 종류의 운임을 논의 중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인 차주가 최소한 받아야 할 몫(차주운임)과 화주가 최소한 지불해야 할 몫(운송운임)이다. 화물업계의 다단계 사슬을 볼 때, 차주가 받을 운임만 정해선 다른 피해자 생길 거란 판단에서 공급사슬 정점에 있는 화주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지웠다.

그러나 화주와 공익위원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적정운임 수준을 찾는 게 아니라, 장시간 노동으로 작동하는 현행 운임을 기준 삼아 인상안을 내놨다. 김재광 화물연대본부 교육선전국장은 “이미 하루 14시간해서 나오는 운임을 기준으로 논의를 하다보니 노동조건 개선에 역부족이다. 화주와 공익위원안으로 노조가 시뮬레이션을 돌리니 대부분 구간에서 오히려 현재 운임보다 낮은 소득이 나왔다”고 말했다.

차주들 반발에 공익위원들이 두번째 안을 내놨지만 역시 화주 쪽에 무게가 쏠렸다. 김종인 실장은 “안전운임위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모델로 하지만, 최저임금위 경우와 같은 노사 양자가 아니라 적어도 삼자가 참여한다. 게다가 화주끼리, 운송업체끼리도 이해관계가 달라 의견을 모으기 더 어렵다”며 “정부 측은 이 상황에서 ‘준비가 부족하다, 화주가 반대한다, 경제가 어렵다’ 등 이유를 대며 논의를 제대로 이끌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위는 9일 오후 1시 서울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추가논의를 한다. 국토부는 이날 표결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화물연대는 “노동자들이 합의하지 않은 최종안을 표결에 부치면 퇴장해 표결을 저지한 뒤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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