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에게 평등하려면
일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에게 평등하려면
[일하는 당신곁에]

장류진 작가가 쓴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지금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소설이다. 작가가 직접 겪은 회사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어서인지 웹사이트에 소설을 업로드한 당일 서버가 다운되고 직장인 사이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로 입소문을 탈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재밌다는 평을 많이 접해서 홀린 듯 책을 샀다. 일 자체에서 오는 환희와 환멸, 노동법과 동떨어진 일터에서 일어나는 웃기고도 슬픈 사건들, 상사의 부당한 대우를 개인 차원에서 기어코 이겨내고야 마는 ‘을’의 빼어난 생활력 등이 촘촘하고도 리얼하게 펼쳐져 있었다. 출퇴근길 1시간씩만 읽었는데도 구입 이틀 만에 300장짜리 책을 독파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엔 동시대 직장인들의 두터운 공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종의 묵직함이 있다. 여성과 남성, 갑과 을, 취직에 성공한 자와 취직을 준비하는 자가 살아가는 세상의 편차가 글에 여실히 드러난다. 똑같이 신입으로 입사했음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연봉을 1천만 원이나 덜 받고, 갑이 휘두르는 권력에 감히 대항할 수 없어 혼자 속 썩이고, 고난 끝에 취직한 자의 발걸음과 돈이 없어 어학연수 대신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자의 발걸음의 무게가 다른 것은 우리 주변에 널린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들이 느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자신이 디딘 위치, 딱 그 만큼에 정확히 해당해서 더욱 소름 돋는다. 책을 읽다 보면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직장내괴롭힘금지법, 감정노동자보호법,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우리 현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법은 항상 현실보다 늦기에 이미 일터에서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위안도, 대안도 되어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노동법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단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노동법 자체가 실효성을 가지도록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소설 속 한 인물은 상사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는다.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소설 속 인물이 상사의 행태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노동청에 신고했으리라. 그러나 위법임을 알았더라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는 대신 포인트로 제품을 사서 타인에게 되파는 형식으로 환금을 하는 상황도 이해가 된다.

그렇기에 개개인이 법을 아는 것과 법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함께 가야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법 교육을 들으며 자신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알아가고 있지만, 일터의 현실은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우리 센터의 대상별 노동법 교육신청횟수를 분석해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특성화고 학생, 일반인, 청년들에 비해 사업주와 관리자의 교육 신청이 현저히 적다. 노사 모두 노동법을 제대로 알고 서로 잘 지켜야 하는데 한쪽은 너무 많이 알아서, 한쪽은 너무 모르거나 몰라도 괜찮아서 문제가 생긴다. 또한 문제의 결과는 언제나 한쪽에게만 슬픈 경우가 많다.

우리는 모두 일하고 있지만 사회적 조건과 직급에 따라 느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천지차이다. 기후위기처럼 일 역시 더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야박한 기쁨, 더 넓은 슬픔을 준다. 다만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일하며 끝내 작은 기쁨을 얻었듯, 노동법을 비롯한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법과 현실을 잇는 다리들이 많아지고, 일하는 주체들 간의 배려와 준법정신이 수반된다면, 일의 기쁨과 슬픔도 모두에게 좀 더 평등한 넓이로 주어지지 않을까. 우리 센터는 그런 바람을 갖고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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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2-01 08:54:53
노동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일하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법은 입소문으로 서서히 퍼져나간다. 인프라 위에서 싸우는 것과 아무런 제도 없이 싸우는 것의 차이는 크다. 세계에는 성문법도 있지만, 관습법도 존재한다. 그만큼 관습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런 관습은 수백 년 이어져 왔고, 법을 바꾼다고 할지라도 몸이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관습도 역사다. 관습과 새로 생긴 법 사이에 괴리감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시간적 배경을 무시하고 바로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무리일 수도 있다. 새로운 법 적용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양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