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 운동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와 청계피복노조에서 시작했다’는 일반론에 “실상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YH무역노동조합 김경숙 열사 40주기에 맞춰 여성노동운동사를 주제로 30일 열린 학술대회에서다. 

유경순 한국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는 이 자리에서 실제로 여성이 중심이 돼 꾸린 노조는 전태일 열사나 청계피복노조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전태일 열사가 여성노동자들을 일깨웠고, 여성노동운동의 역사가 청계피복노조로 시작됐다는 이야기들이 많다”며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냥 노동운동이 아닌 여성이 이끄는 노동운동을 그렇게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서울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 니콜라오홀에서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는 30일 오후 서울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 니콜라오홀에서 김경숙 열사 40주기 기념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는 30일 오후 서울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 니콜라오홀에서 김경숙 열사 40주기 기념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태일 열사가 일한 청계피복노조는 70년대 결성돼, 73년 민주노조로 발을 내디뎠다. 유씨는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이 다수인 곳에서 지부장은 계속 남성을 뽑는데 문제 제기했고, 두 번 좌절됐다”고 했다. 반면 여성노동자가 설립을 주도한 원풍모방과 동일방직 노조는 72년에 설립됐다. 원풍모방은 남성노동자와 함께, 동일방직은 남성이 협조하지 않아 여성을 중심으로 했다. 

유씨는 “여성노동운동 관점에서, 전태일 열사는 ‘큰오빠’의 시각으로 여성노동자를 바라봤다”고도 짚었다. 대구의 장남이었던 그는 여성을 주체적 동료 노동자로 보고 조직하기보단, 여동생처럼 여겼다. 친여동생에겐 몸가짐을 당부했다. 그가 조직한 삼동 친목회(바보회 후신)도 남성인 재단사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는 “한국 노동운동 역사가 전태일로부터 시작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 운동의 역사가 70년대 민주노조 운동으로 출발했다고 할 때, 전태일 열사를 기점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여성노동자 운동을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말했다.

▲유경순 한국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 사진=김예리 기자
▲유경순 한국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 사진=김예리 기자

한편 YH무역노조 등 여성노동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사이에도 여성노동자들에게만 과도한 기대치를 전제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초까지 경공업의 주노동력인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 기대어 성장전략을 폈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활용해 단가를 낮춰(덤핑) 수출하면서 외국자본의 신규투자 효과도 누렸다. 이후 1973년부터 중화학공업에 주력하면서 경공업 여성노동자는 방치됐다.

YH무역노조 역사도 이와 겹쳤다. 가발을 생산한 YH무역은 벌어들인 외화의 상당액을 도피시키고 1979년 폐업을 선언했다. 노조는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며 종교단체 등 지원을 받아 당시 서울 마포구에 있던 1야당 신민당사로 향했다. 경찰은 1979년 8월12일 새벽 농성하던 180여명을 폭력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김경숙(22) 당시 노조 조직부차장이 숨졌다. 김경숙 열사의 죽음은 부마항쟁과 유신정권 몰락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됐다.

이날 토론에 임한 서아현씨(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석사)는 남성 지식인과 종교인 단체가 YH무역노조 등 여성노동운동 움직임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갑론을박이 오가는 데에 문제를 제기했다. 남성지식인의 영향과 여성노동자의 역량을 저울질하는 시도 자체가 여성인 노동자에게만 완벽한 주체성을 요구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씨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이전에 여성이면서 노동자였던 이들이 외부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노조 활동을 펼쳐야 했다. 이들에게 여성의제와 민주노조 역량까지 증명하길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에 비해 당시 여성노동자를 지원한 남성지식인 집단이 얼마나 젠더감수성을 지니고 노동의제에 공감했는지를 따지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