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사업장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여력이 안 된다고 전제하는 프레임이 영세사업장의 양극화를 낳고, 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악순환을 부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권리찾기 유니온(권유하다)’는 2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권리찾기를 위한 직접행동,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이 자리에서 “전체 노동자 권리를 떨어뜨리는 데 ‘영세사업장의 지불능력’이 이용된다”며 “정부는 5인 미만 사업장을 놓고 무조건 지불능력이 없다고 전제해, 이를 내세워 아래로부터 권리 신장을 반대한다. 이는 실제 여력을 묻고 개선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에 책임 지우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최소 권리를 규정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이마저 피해간다. 근로기준법 11조1‧2항은 “상시 5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고 규정한 뒤 대통령령으로 일부 예외를 정했다. 5인 미만 업장은 해고를 둘러싼 규정과 연차유급휴가‧휴업수당‧휴게시간‧연장근로제한 등 노동시간과 수당 규정, 취업규칙 관련 규정 등에서 전면 제외된다. 정부는 사업주의 지불능력이 부족하고 정부의 관리감독이 어렵다고 근거를 댔다.

▲‘권리찾기 유니온(권유하다)’는 2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권리찾기를 위한 직접행동,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권리찾기 유니온(권유하다)’는 2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권리찾기를 위한 직접행동,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실상은 5인 미만 사업장도 소득과 전문직 비중이 다양하다. 보건의료업이나 사회복지서비스업 업장은 전문직이 많다. 출판과 영상, 방송통신, 정보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2013년 근로기준법의 5인 미만 사업장 예외 조항에 헌법 소원한 당사자는 5인 미만 변호사 사무실에 채용됐다 해고된 직원이었다. 헌재는 지난 4월 ‘사용자의 법준수 능력’을 들어 해당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김혜진 활동가는 “같은 5인 미만이라도 전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과 도소매업, 다단계 하도급 밑바닥 사업주는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정부는 일률로 간주한다”고 짚었다. 그 결과 5인 미만 사업장은 임시·일용직이 65%이고, 근로기간 계약을 맺지 않은 비율은 58%다. 비정규직도 72%에 이른다. 월평균 임금은 138만원으로, 1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 정도다. 한 마디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장기로 일하고도 임시직이며, 계약서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정부와 주류 언론의 ‘5인 미만 무능력’ 논리는 노동자 전체에 책임을 전가한다. 김 활동가는 “노동자의 힘든 노동조건을 말하면 ‘영세사업장의 어려움을 생각하라, 정규직 노동자 임금 격차부터 올리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5인 미만 소상공인·자영업 사업장을 최저임금 적용 제외하자는 내용의 국민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밝히고 소속 의원들이 관련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 지불능력 없는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제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조기퇴직해 자영업 시장이 포화상태인 점 △원하청 불공정거래 △과도한 임대료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했다. 그럼에도 누구도 구조적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25일 ‘권리찾기를 위한 직접행동,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25일 ‘권리찾기를 위한 직접행동,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권유하다 정책팀에 참여하는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은 “‘5인 미만 무능력 논리’는 5인 미만 사업장은 반드시 영세하고, 사업장 보호가 노동자의 고통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 기초한다”며 “이 판단이 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일어나는 문제를 과연 ‘정책적 판단’을 이유로 외면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아래로부터 권리찾기’에 나서야 이같은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자가 조직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캠페인과 선전전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가 가능한 의제를 제기해야 한다. 또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완전 적용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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