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근로기준법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내가 한 것이 임금을 목적으로 제공한 근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방송 현장에 있는 모든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

‘무늬만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 직접 개정입법 제안 운동에 나섰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6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기준법 입법추진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권리찾기유니온은 현행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추정하도록 하고, 사용자 측에 반증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기존에 근로기준법에서 적용 제외돼왔던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을 확대해 △직업 종류 △계약 형식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노동자라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6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기준법 입법추진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권리찾기유니온은 16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기준법 입법추진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권리찾기유니온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최소 권리를 규정한다. 그러나 5인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과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여기서 제외된다. 근로기준법 11조1‧2항은 “상시 5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고 밝힌다. 근로기준법 2조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 없이 임금을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자”로 정의하나, 법원과 정부는 이를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로 좁게 해석해왔다.

방송작가는 언론계에 만연한 ‘무늬만 프리랜서’의 대표 직군이다.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이날 “TV를 켜면 나오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는 작가들이 붙는다. 프로그램 기획부터 제작, 후반작업까지 모든 제작 과정에 역할을 한다”며 “휴일 없이, 밤낮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퇴근을 한다고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일하면서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그럼에도 정해진 주급, 일 한 시간에 비해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방송사 직원들보다 더 많은 일을 오랫동안 해도 아무런 수당을 받지 못한다. PD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작가들은 단지 프리랜서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퇴직금은커녕 실업급여도 없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일하는 사람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일”이라며 “방송 현장에 있는 모든 비정규직,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고, 저랑 비슷한 생각 하고 계신 분들 많이 계실 것이다. 직접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바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보자는 입법 운동이 그렇다”고 했다.

▲지난 3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사진=미디어오늘
▲지난 3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사진=미디어오늘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일하다 총 5차례 부당해고를 겪은 이현우 권리찾기유니온 부위원장은 “해고사유는 각기 다양했다. 일을 못한다. 마음에 안 든다. 경영이 어렵다 등”이라며 “근로기준법 11조에 의해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당사자”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더 이상 스스로를 책망할 수 없었고, 어떠한 잘못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저의 해고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라고 했다.

플랫폼을 통해 보육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 ‘수빈’씨도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아야’ 했다. 선택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시간도 노동할 수 없다”며 “최소한의 노동시간도 보장해주지 않고 최소한의 노동안전도 지켜주지 않는 플랫폼의 정체는 무엇이냐. 노동자와 사용자(양육·보육자)를 중재해 준다는 플랫폼은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사용자의 편만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 2조 1호 ‘근로자’ 정의에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근로자로 추정하고, 다만 사용자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입증하는 경우에 한해 근로자 추정을 거둘 수 있도록 개정입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자 추정에서 제외되는 사례는 △노무제공자가 사용자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경우 △노무제공이 사용자의 통상적 사업 범위 밖에 놓인 경우 △노무제공자가 사용자의 사업과 동종 분야에서 독자적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근로기준법에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동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2조의 해당 구절을 삭제하는 입법안도 제시했다. 이들은 “입법제안운동의 초기 제안자 24명도 모두 ‘무늬만 프리랜서’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당사자들이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근로기준법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대안을 입법의 방향으로 제시한다”며 “발의안을 준비한 뒤 국회의원실과 협업을 거쳐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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