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상담을 할 때나, 또는 부당한 해고에 법적인 구제절차를 함께 할 때는 매번 많은 부담을 느꼈다. 법이 금지하는 해고의 기준은 추상적인 반면에 해고사유는 다양하고 맥락의존적이어서 같은 행위라도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한편 해고는 노동자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준다. 생계를 위협하고 생계불안은 삶의 다른 영역으로 쉽게 퍼진다. 경제적 어려움도 문제지만, 조직에서 배척당했다는 슬픔과 분노로 인한 마음의 상처도 더 큰 문제가 된다. 노동자가 절박하면 할수록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상황은 악화돼, 지옥에 사는 것과 비슷해진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에 참 많이 공감하면서도 불안함을 느낀다.

이 말은 해고한 사용자를 비난하기에 충분한 말이지만, 해고자를 너무 궁지로 모는 것은 아닐까, 해고를 죽음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면 회사는 생명줄이니 꼭 붙잡고 있어야 할까,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실업급여도 적고 기간도 짧아 좋은 직장으로 재취업이 어려운 게 해고를 더욱 절박한 문제로 만든다. 대체로 직장이 주는 이익이 클수록 해고는 심각한 문제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계약기간을 정해서 재계약을 안하는 것으로 해고를 대신하는 경우에도 몇몇 노동자는 부당하다고 여기고,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려고 한다.

지방 군청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용잡급 명목으로 예산이 배정된 사무직 노동자가 당한 해고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그는 담당 업무를 수년간 계속해 매년 바뀌는 공무원보다 더 잘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계약기간만료로 해고됐다. 일용직이라고 하기에는 오래 일했기에 비교적 쉽게 이겨 복직됐지만, 좁은 지역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다.

또 다른 청년은 공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수년간 파견과 도급으로 일해오다 기간만료로 해고됐다. 밝고 당당했던 그는 1년 넘게 소송하며 점점 위축돼 가다가 터무니 없이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하려고 했다. 그동안 50번도 넘게 면접을 봤다던 그는 간신히 불안함을 억누르고 협상을 끌어서 더 나은 조건으로 복직할 수 있었다.

해고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에 법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더 힘들다. 절차를 거쳐 승리해도 상처 뿐인 영광일 때가 많다. 서울노동권익센터 같은 단체에서 지원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도 정당한 이유를 주장하기에 법적인 판단은 현실에서 노동자가 느끼는 부당함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결과를 알 수 없다. 복직돼도 당연히 꽃길이 열리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해고싸움에 너무 절박하게 매달려서는 삶의 나머지 영역이 불안정해진다. 

해고가 노동자의 삶에 위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법적인 구제절차가 약자에게 더 관대하고, 사회가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지원하고, 재취업이 원활해서 반드시 그 직장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온전히 개인이 책임져야만 하는 조건이다.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해도 소송을 위한 경제적·심리적·시간에서 비용을 가혹하게 지불해야만 하고 결과도 장담할 수 없고 마음도 피폐해져서 그야말로 ‘해고는 살인’이 되어버린다. 이때 부당하게 해고당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까?

▲ 이혜수 서울노동권익센터 사업조정국장·공인노무사
▲ 이혜수 서울노동권익센터 사업조정국장·공인노무사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상담을 하는 노동자에게 이 모든 어려움을 설명하고 그냥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어떤지를 말한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다른 직장을 구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결국 진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노동자가 삶을 희생하지 않고도 권리를 찾고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때는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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