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대 중반이라는데요.” 
“뭐 그게 대수라고.”

‘2019년 8월 고용동향’이 나오기 전날인 지난 10일 오후 기획재정부 기자실의 분위기는 심드렁했다. 핵심인 전년 동기 대비 취업자수 증가폭이 40만명대 중반 정도라는 이야기가 퍼져나갔지만, ‘딱히 새로운 게 있겠나’는 반응을 보인 이들이 여럿이었다. 45만2000명이라는 수치는 2017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다음날 통계청 발표와 그에 대한 보도는 몇 가지 숫자를 제외하곤, 사실상 이전 달과 별 차이가 없었다. 청와대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황덕순 일자리수석비서관을 내보내 “고용회복세가 뚜렷하다”며 경제성과 홍보에 나선 것만 빼고 말이다. 청와대는 조금만 경제지표가 좋아져도 요란하게 홍보에 나섰던 터라 예상된 일이긴 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자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고용지표와 관련해 쓸 게 뻔하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여건은 2018년 하반기 침체 국면에 접어든 뒤, 올 3분기(7~9월)에 급락 양상이다. 노동 수요는 경제가 활력을 되찾아야 느는 데, 경기하강 국면에서 월 단위 지표가 개선됐다고 고용회복세를 내지를 순 없는 노릇이다. 정부 일자리 사업 영향을 제외한 순수한 민간 고용 활력은 여전히 부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쓸 만한 건 정부 재정으로 고령 취업자가 대폭 늘었다거나, 청년 일자리는 여전히 냉골이라던가, 아니면 주당 근로시간이 17시간이 안되는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얘기들이다. 그게 싫다면 취업자수 증가폭이나 3.0%로 떨어진 실업률 등 고용지표의 밝은 면을 부각한다. 두 방식이 지나치게 한 쪽 편을 든다 싶으면 적당히 절충해서 쓰게 된다. 

정형화된 고용지표 기사의 얼개는 지난해 7월 취업자수 증가폭이 3000명까지 떨어지는 과정에서 짜여졌다. 이전까지 취업자수 증가폭은 통상 30만명대였고, 20만명대로 낮아지면 그 원인을 놓고 논쟁이 붙었다. 그러다 보수진영에서 ‘고용참사’라는 말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숫자가 나빠지자 원인 찾기 경쟁에 들어갔다. 1년 정도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파먹을 게 더 이상 없다”, “‘게임 NPC(Non-Player Character·게임에서 이용자가 조종하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나 다름없이 기사를 쓴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올 정도가 됐다.

고용지표에 대한 청와대나 정부 정책 당국의 반응도 기자들과 별반 차이 없이 NPC스럽다. 이쪽은 어떻게든 노동시장 여건이 나쁘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고용동향 발표 직후 내놓는 분석 자료에서 늘 “상용직 증가, 청년고용 개선 등 고용의 질 개선흐름 지속”이란 문구를 집어넣고 있다. 11일의 경우 “취업자 수 증가, 고용률, 실업률 등 3대 고용지표가 모두 크게 개선되면서 고용시장 회복세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라고 좀 더 공격적인 서술을 했다. 취업자수 증가폭이 5000명이었던 지난해 8월에는 “제조업 고용 부진, 생산가능인구 감소 영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비스업 고용도 감소 전환”했다는 관료적인 코멘트를 내놓았었다. 

▲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게시판에 게시된 채용공고 안내문. ⓒ 연합뉴스
▲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게시판에 게시된 채용공고 안내문. ⓒ 연합뉴스

 

조건 반사적인 해석이 오가는 가운데 노동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는다. 조선·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이 일단락 되면서 제조업 취업자수 감소폭이 줄어들었다지만, 신규 고용 창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하는 이는 없다. 고용보험 가입자를 놓고 보면 제조업 취업자 중 20~40대는 줄고, 50~60대는 늘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는 없어지는 데, 장노년층의 저임금 취업만 늘어난 셈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일자리 사업 효과도 ‘블랙박스’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예술·스포츠·여가관련 서비스업’ 종사자는 2018년 8월 44만2000명에서 올 8월 52만5000명으로 1년만에 18.8%(8만3000명)가 늘었다. 통계청은 “정부 일자리 사업 영향”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그 뿐이다. 어떤 유형의 일자리가 어느 정도 규모로 만들어졌는지 정부는 설명이 없다. 

지방 고용 문제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경상남도의 20대 고용보험 가입자(6월 기준)를 보면 취업자가 가장 많은 제조업은 3만9500명으로 1년 전보다 1100명이 줄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 일자리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공공행정(2200명)은 400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1만7900명)은 1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신 숙박음식점업(1100명), 도소매업(300명) 위주로 20대 일자리가 늘어났다.  

▲ 조귀동 조선비즈 경제부 기자
▲ 조귀동 조선비즈 경제부 기자

 

고용지표를 둘러싼 ‘담론 전투’의 문제는 진영에 따라 지표 해석이 완전히 엇갈리는 것이 아니다. 수면 위에 올라온 숫자 몇 개를 가지고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이, 정작 수면 아래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는 살피지 않는 게 진짜 문제다. 건설적인 토론과 진지한 대안 모색을 바라는 건 무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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