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안전운임제는 세계 화물노동자들의 관심사다. 대기업 화주(화물의 주인)와 2~4개의 운송회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사슬의 밑바닥에 놓인 처지는 해외 화물시장도 마찬가지다. 화물운수업종 외주화로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탓에, 노동․임금조건과 안전기준의 사각지대에 있는 점도 그렇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해마다 국내 1000여명의 화물노동자와 일반 도로 이용자들이 화물차 사고로 숨진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시장에서 위험과 책임 외주화를 완화하는 시도다. 2012년 호주정부가 처음으로 전역에 도입했다. 표준운임을 정하고 대기업 화주에게 지급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노동자 생계와 차량유지비를 보장해, 과적․과속․과로를 막고 도로안전을 지킨다는 취지다. 한국은 안전운임을 명시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3년만 시행하고 전체 화물차의 10%에 못 미치는 컨테이너·시멘트 트레일러에만 적용토록 해 논란이다.

▲국제운수노련 대표단으로 방한한 팀 비티(Tim Beaty) 미국팀스터노조 세계전략실장과 티모시 도슨(Timothy Dawson) 호주운수노조 서부지부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국제운수노련 대표단으로 방한한 티모시 도슨(Timothy Dawson) 호주운수노조 서부지부 지부장(왼쪽)과 팀 비티(Tim Beaty) 미국팀스터노조 세계전략실장. 사진=김예리 기자

팀 비티(Tim Beaty) 미국팀스터노조 세계전략실장과 티모시 도슨(Timothy Dawson) 호주운수노조 서부지부 지부장은 지난달 31일 “안전운임은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요구”라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이윤만 챙기며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다. 안전운임이 없다면 이 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특수고용인 화물노동자 처지를 두고 ‘오분류(misclassified)’라 표현했다. 화주와 운수업체의 지시에 종속돼 일하는 이들이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돼 있단 얘기다.

팀 비티(Tim Beaty) 전미팀스터노조 세계전략실장과 티모시 도슨(Timothy Dawson) 호주운수노조 서부지부 지부장을 이날 서울 구로구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이들은 국제운수노련 대표단으로 한국 안전운임제 전면실시 요구에 연대를 표하고 국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27일 방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임월산 국제국장이 통역했다.

- 국제운수노련에 가입한 화물노동자들은 이들이 운수업체와 맺은 직접적 계약관계를 뛰어넘는 규제, ‘책임의 사슬’ 을 강조한다. 안전운임도 그 일환인데, 책임의 사슬이 왜 중요한가.

티모시 도슨 지부장(도슨) = 화물운수 공급사슬을 보면 알 수 있다. 화물운수 서비스 과정에는 다양한 운수 수단이 포함된다. 그 중 화물차로 운송하는 마지막 단계가 가장 위험하다.

화물노동자들은 사슬 맨 밑에서 가장 큰 압박을 받는다. 화주는 운송사와 최저가 입찰로 계약을 맺어 돈을 충분하게 지급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이하 보수를 받는다. 이들은 운임이 낮기에 장시간, 위험운전 할 수밖에 없다. 차량 유지보수도 제대로 못한다. 더구나 화물노동자가 달리는 도로는 당신의 가족도 함께 쓴다. 공급사슬 정점에 있는 유통․제조 기업을 강제해 운송회사에 주는 화물노동자 운임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들에서 안전운임을 실시했을 때 훨씬 노동자와 도로 모두 안전하다고 입증했다.

팀 비티 세계전략실장(비티) = 자본주의의 본성은 기업들이 돈 벌리는 업무만 자사 것으로 유지하고, 돈 벌기 어려운 관련 업무는 모두 외주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자본가들은 이른바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란 식으로 분류하지만, 결국 안전을 책임지지 않겠단 얘기다. 우리가 말하는 건 기업이 도로운수업무를 외주화한다면, 챙기는 이윤만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티모시 도슨(Timothy Dawson) 호주운수노조 서부지부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티모시 도슨(Timothy Dawson) 호주운수노조 서부지부 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 미국과 호주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어떤가. 어떻게 화물시장 내 책임의 사슬을 보장하나.

비티 = 미국에서 가장 큰 캘리포니아 LA의 롱비치 항만을 들겠다. 미국이 수입하는 전체 물류의 40%가 롱비치로 들어온다. 25000명의 항만트럭 노동자들이 일한다. 트럭 노동자들은 부두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항만 밖 물류단지나 철도승강장까지 옮긴다. 이들은 당초 직접고용된 노동자이자 팀스터 노조원이었는데, 80년대부터 규제완화로 화물운수업이 모두 외주화되면서 자영업자가 됐다.

말만 ‘독립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이지, 독립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언제 도착해 어디서 대기하고, 무슨 화물을 내보낼지 지시한다. 한 마디로 ‘위장 피고용’이다. 노동자들은 자기 생계와 트럭유지비, 보험, 세금 모두를 책임지면서, 일하며 생기는 위험도 진다. 운임은 낮아 빈곤선 밑에 살았다. 미국 USA투데이가 2017년 이를 폭로하며 ‘계약머슴’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노동자들은 10년 전부터 열악한 상황을 바꾸고 싶어 팀스터에 가입하려 했지만 그도 어렵다.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라, 단합해서 운임을 표준화하면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셈이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을 지원한다. 핵심은 잘못 분류된 지위에 대해 소송을 걸거나 노동부에 진정해 직접고용을 얻어낸다. 우리는 이들이 ‘최소한 최저임금을 받고, 주 차원의 사회보장과 사용자가 가입한 사회보험 혜택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들이 고용상태임이 인정되면 운수사업자가 벌금과 체불임금, 보험료 등을 지불해야 한다. 어떤 회사들은 파산해버린다. 파산하지 않은 운수사업자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쓰게 된다.

- 특히 플랫폼으로 위장 자영업자인 운수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해외 특수고용 운수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어떻게 보고, 대처하나.

비티 = 플랫폼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 미국에선 우버(Uber)와 리프트(Lyft) 같은 호출형 차량공유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 계약이 또다른 ‘위장 자영업’이라고 본다. 우버와 리프트가 세금, 사회보험, 최저임금, 노동법을 피해가려고 이 계약을 이용한다. 대처 방향은 두 가지다. 핵심은 이들이 ‘고용된 노동자’라는 점을 기업과 대중에 인식시키는 일이다. 플랫폼들은 자기 앱을 통해 운수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 상원에서 AB5(Assembly Bill 5) 법안을 논의 중인데, 통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법안에는 플랫폼 노동자를 실제 개인사업자로 볼지, 고용된 노동자로 볼지를 판단하는 ABC 테스트가 있다. ABC 테스트 기준에 따르면 우버와 리프트 노동자들은 고용된 노동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업들은 이제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자기 사업모델을 바꿔야 한다. 또 시애틀에선 우버와 리프트 드라이버들이 (반독점법에도 불구)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 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다.

▲팀 비티(Tim Beaty) 전미팀스터노조 세계전략실장. 사진=김예리 기자
▲팀 비티(Tim Beaty) 미국팀스터노조 세계전략실장. 사진=김예리 기자

도슨 = 호주는 음식배달앱 딜리버루(Deliveroo)가 있다. 호주는 연방법이 노사관계를 규제하고, 주 차원에선 사업장 안전보건이나 산업재해 책임을 기업에 묻는다. 호주노조는 법제도에 나오는 ‘피고용’에 대한 정의를 활용한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피고용인이기에 최저임금을 보장 받고, 산재보험 혜택도 받아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호주연방정부가 보수정부라 플랫폼기업에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 하지 않고, 보수에 치우친 언론도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자 대부분이 학생이거나 어려서 조직하기 쉽지 않지만, 노조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계약이 어떻고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도 설문조사하고 있다.

- 한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시위 등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면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정당들도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언론은 비방과 왜곡보도를 하기도 한다. 각 나라의 여건은 어떻고, 어떻게 시민들을 설득하나.

비티 =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국민 응답자의 66%가 노조활동을 지지한다고 답한다. 다수 미디어가 자본이나 자기 소유주에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에 나쁜 이미지를 씌우려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기에 언론의 비방에도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도슨 = 호주도 다수 국민이 ‘노조가 회사의 위선과 부정부패를 방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수 정부가 노동권을 되돌리려 하고, 보수언론도 지지하면서 노조를 공격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 노조들이 하듯 다른 시민사회 운동단체와 협력하고 있다. 노숙인 문제 해결과 가정폭력 방지, 성별 임금격차 해결, 유색인의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싸움에 연대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