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재팬’ 깃발 소동, 관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노 재팬’ 깃발 소동, 관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아침신문 솎아보기] 서울 중구청 오전에 걸었던 깃발 오후에 내려
조선일보 “아베 보좌관 ‘한국, 과거 매춘관광국’” 발언 보도

서울 중구청  ‘노 재팬’ 깃발 논란

7일자 여러 아침신문이 해프닝으로 끝난 서울 중구청의 ‘노 재팬’ 깃발 소동을 보도했다. 서울 중구청은 6일 한때 관내에 ‘노 재팬’ 깃발을 내걸어 논란이 일었다. 중단해달라는 국민청원 게시판 글에 1만명 이상 서명하고 ‘노 재팬’과 ‘노 아베’는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자 4시간만에 결국 철회했다.

한겨레신문은 7일자 12면에 2개의 기사를 실은데 이어 사설에서도 일본에 대한 과잉 보이콧을 경계했다.

한겨레는 7일자 ‘노 재팬 아닌 노 아베, 지혜롭고 성숙한 대응을’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노 재팬과 노 아베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일본 내에서 영향력을 가지도록 한국에서 지지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일 시민들의 연대 움직임에 주목했다. 한겨레는 “한일 시민사회가 광복절을 앞두고 한일 관계 대응방안 포럼을 열고 원폭 피해자들을 기리는 자리도 마련한다”고 소개했다.

실제 양국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광복절인 15일 서울에서 국제평화행진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 7일자 한겨레 12면.
▲ 7일자 한겨레 12면.
▲ 7일자 한국일보 11면.
▲ 7일자 한국일보 11면.
▲ 7일자 한겨레 사설.
▲ 7일자 한겨레 사설.

한국일보도 7일자 11면에 ‘서울 중구 노 재팬 깃발 무리수… 싸늘한 여론에 내리기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일 분위기를 관이 나서 부추긴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일본 우익 세력에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서울 중구청의 ‘노 재팬’ 깃발 게양에 “여론은 싸늘했다. 관이 자발적인 불매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도했다. 서울 중구는 명동과 남산, 청계천을 끼고 있어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조선일보도 7일자 12면에 ‘중구청장 NO 재팬 내걸다… 상인 반발로 4시간만에 철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주 전쯤부터 일본인 관광객만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일 깃발을 내걸 생각을 하다니 구청이 미친 것 같다”는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기념품점 직원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12면 기사 말미에 “‘중구청 반일 깃발이 일제 프린터로 인쇄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이 기사는 6일 저녁 일요신문이 ‘중구청 NO 재팬 현수막, 일본 인쇄기로 제작됐다’는 제목으로 단독보도한 내용이었다. ‘VJ밸류젯’이라는 일본제품으로 제작됐다. 인쇄업종에서 사용하는 기기의 상당수가 일본 제품인 게 사실이다.

▲ 7일자 조선일보 12면.
▲ 7일자 조선일보 12면.

조선일보 “아베 보좌관 ‘한국, 과거 매춘관광국’” 발언 보도

조선일보가 7일자 4면에 아베 총리의 보좌관이 한국 의원들과 식사 자리에서 “한국은 과거 매춘 관광국”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발언이 지난달 31일 일본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김영춘, 자유한국당 김세연,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과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에토 세이이치 보좌관 사이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이 자리에서 에토 보좌관이 “과거 일본인들이 주로 매춘 관광으로 한국을 찾았는데 (나는) 그런 걸 싫어해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에토 보좌관의 발언에 “위안부와 매춘을 연관시키는 것으로 들리는 발언이었고 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는 한국 측 한 참석자의 말을 전했다.

실제 1973년 12월19일 오후 이화여대 학생 10여명이 김포공항에서 ‘기생관광’ 반대 시위를 했다. 당시 일본 여성들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기생관광’ 반대 시위를 했다. 이처럼 엄혹한 유신 치하에서도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는 이뤄졌다. 한국의 문화공보부 장관은 그 해 12월29일 ‘관광행정 부조리 개선’을 명령해 ‘기생관광’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 관광호텔들의 외국인 관광객 수가 격감하기도 했다.

이 내용은 덕성여대 지명관 교수가 유신정권 때 일본으로 피신해 1973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의 민주주의 말살 장면들을 T.K라는 가명으로 일본 월간지 ‘세까이(세계)’에 썼던 칼럼을 모아 나온 책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1974년 1월호에 실렸다.

▲ 7일자 조선일보 4면.
▲ 7일자 조선일보 4면.

당시 외국 언론엔 한국의 기생관광이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유신 정부는 초기엔 외화 획득이란 이유로 침묵했다. 조선일보가 이런 보도를 할 처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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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8-07 12:49:18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단지, 지역상인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좀 아쉽다. 참고로, 일본인 70퍼 이상이 경제보복에 찬성했다. 이 말은 일본인 대부분이 강제징용 배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파리대왕 2019-08-07 10:04:04
웃긴건 중구청장은 일본반대지자체 150개에 안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냥 흥미거리로만 쓰고 있는 것이지

장동기 2019-08-07 13:07:58
뭐가 성숙하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