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가짜뉴스는 ‘갑툭튀’가 아니다
5·18 가짜뉴스는 ‘갑툭튀’가 아니다
[미디어오늘 1201호 사설]

미당 서정주는 자신의 친일 행각을 자주 털어놨다. 1942년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한 미당은 11편의 노골적인 태평양전쟁 독려 글을 썼다. 미당은 언젠가 “일본이 못 가도 몇 백년은 갈 줄 알았다”고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미당은 해방 뒤에도 발빠른 처신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1946년 재빨리 이승만 전기 집필자가 되고, 1948년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에, 1954년 예술원 초대 회원이 됐다. 1966년엔 월남 참전 독려 시를 썼고 1980년엔 광주 5·18을 일으킨 전두환 장군 TV 홍보연설에 나섰다. 1986년엔 전두환 대통령의 56세 생일잔치엔 축시 ‘처음으로’를 지어 바쳤다. 이 시의 부제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였다. 송시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로 시작해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로 끝난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 사진=나무위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 사진=나무위키

5·18 역사왜곡은 최근 불거진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미당이 전두환 홍보연설에 나선 이후 39년째 계속 중이다. 노재봉 서울대 교수는 1988년 6월 민정당 의원세미나에서 “80년 당시 당권을 잡을 수 없게 된 김대중씨가 외각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광주사태”라고 왜곡했다. 지금 떠도는 가짜뉴스와 같은 맥락이다. 6개월 뒤 노재봉 교수는 노태우 대통령 특보로 임명됐다. 당시는 여소야대 국면에 광주학살 진상규명 요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올 때다. 광주를 팔아 정치에 입문한 교수 노재봉은 1991년 국무총리까지 지낸다. 1980년 노재봉이 토크빌의 정치사상을 연구한 책 ‘시민민주주의’를 썼다는 건 두고두고 아이러니다. 

언론은 39년 전 광주를 어떻게 다뤘을까. 1980년 8월19일부터 ‘새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이란 제목의 4회 연속기사를 경향신문에 실어 돌풍을 일으킨 김길홍 기자는 전역도 하지 않은 현역군인을 전임 대통령 하야 직후 칭송했다. 

이어 ‘인간 전두환’(조선일보 김명규 기자), ‘솔직하고 사심없는 성품’(중앙일보 전육 이석구 김재봉 성병욱 기자), ‘우국충정 30년, 새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동아일보 최규철 기자),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한국일보 하장춘 김훈 이년웅 장명수 기자) 한국 언론은 1980년 여름 ‘전두환 찬양’ 각축전을 벌였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불길에 휩싸인 광주MBC.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불길에 휩싸인 광주MBC.

1980년 광주에선 어땠을까. 1980년 5월20일 밤 9시50분께 광주 시민들은 “사상자는 한 명도 없다”고 방송한 광주MBC에 불을 질렀다. 사흘 뒤 MBC 9시뉴스는 불타는 광주MBC 건물을 방영했다. 이득렬 앵커는 “폭도에 의해 불타는 광주문화방송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냐고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다음날 MBC 편집회의에선 노성대 부국장이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자 이득렬 앵커는 “내가 방송을 잘못했다는 거냐”며 반발했다. 노성대 부국장과 오효진 기자는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앵커 이득렬은 김영삼 정부 때 MBC 사장을 지냈다. 

MBC는 1978년부터 서울국제가요제를 열었다. 공채 1기 김우룡 프로듀서가 기획했다. 3회 대회를 준비하는데 5·18이 터졌다. 광주에선 학살 일어났는데 MBC는 1980년 5월24일 국제가요제를 강행했다. 당시 임택근 MBC 사장직무대행조차 “행사는 성공했지만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결국 MBC는 수익금 3000만원을 광주시민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단 한 번도 비틀어진 역사는 바로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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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2019-05-27 11:20:27
저때와 지금의 차이라 하면, 저때는 (정권에) 잘못하면 죽을 수 있었다는 최소한의 핑계라도 있다는 점이죠. 지금의 거짓말 뒤에는 탐욕 밖에는 없습니다.

뼛속까지 종놈이었던 서정주 2019-05-27 11:09:45
나라가 있던지 말던지
쿠데타정권이 들어서던지 말던지
권력잡은자 발바닥 핧아주며 잘처먹고 잘 살다간
천박한 기회주의자.

국민 2019-05-26 16:50:09
약 40년전 살벌한 정치-사회 상황에서 언론인들이 본인의 뜻대로 기사를 쓸 수가 없었겠지.. 지금처럼 소통방법이 많지 않던 시대니 만큼 믿는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소통방법이 다양한 시대에는 상상도 안되고 말도 안되고 믿을 사람도 거의 없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