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 점심 해결할 장소를 찾을 시간이다. 회색빛 건물에서 시내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 무리에 섞여 새로 생긴 음식점들을 탐색한다. 신통방통한 맛일 거라,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입장한다. 상냥한 종업원 대신 세로로 긴 가판대가 일행을 맞이해준다. 세로로 긴 가판대 이름은 바로 ‘키오스크’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키오스크의 효율성을 생각해 본다. 키오스크는 ‘당연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휴게시간도 필요 없다.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 무단결근과 퇴사통보 걱정에서 해방된다. 주문이 들어가지 않거나 잘못 됐으면 주문자 책임이다. 친절하지 않은 음식점이란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서비스노동으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낮추는데 기여한다.

키오스크에는 220V의 전력이 상시 연결돼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격소비전력은 150W 정도다. 한국전력 홈페이지에서 계산해본 월 전기요금 추가부담액은 일반용 전력(갑)I 기준으로 약 2380원 정도다. 기기 가격이나 렌탈비용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합리적 수준이다.

맘스터치 매장을 찾은 고객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주문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맘스터치
맘스터치 매장을 찾은 고객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주문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맘스터치

키오스크 광고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계에 대한 공포다. 키오스크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최신 RFID(무선인식) 기술이나 드론 같은 무인화 기술이 기존 저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특히나 이런 기술은 노동집약적 서비스산업에 영향이 크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증기기관이 처음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수천명의 실업자가 생기고 부가 자본가에게 집중될 것을 우려했다. 그런 공포는 기계 파괴로까지 나아갔다.

현대에 이르러 기술진보로 실업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이전만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쇠퇴산업과 성장산업 간 노동이동이 쉽지 않은 걸 착안해 쇠퇴산업에서 생긴 실업을 ‘구조적 실업’이라 정의한다. 이에 기계가 특정산업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은 구조적 실업으로 분류된다.

최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실업과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최저임금 인상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기술진보의 원인조차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파악해 최저임금은 실업 증가와 일자리 감소의 모든 책임을 덮어쓰고 있다. 그러나 기술진보가 독립적으로 노동시장의 수요곡선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을 고려하면, 이런 견해는 기술진보의 충격이 최저임금 상승보다 실업과 더 큰 r값(상관계수, correlation coefficient)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은 항상 임금인상을 수반하기에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더라도 자연적 임금인상분이 존재한다.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적 임금상승분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상승과 실업 증가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관계는 과대평가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3~4% 수준으로 줄이자는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고 있다.(한국일보 5월21일자 1면 머리기사)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이자는 건 저성장기조가 뚜렷한 현 상황에서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해결책일 수 없다.

숙련노동자와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저숙련노동자의 임금격차, 곧 ‘임금 프리미엄’이 커지면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제성장지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임금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의미 이상으로, 노동력 착취를 막고 소득재분배를 실현한다는 헌법적 명령이다(헌법 32조 1항).

소모적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서 벗어나 기술진보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저숙련 노동자를 교육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두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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