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게이트의 주요 인물인 승리와 유인석 씨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다. 150여명이 넘는 수사 인력을 동원해 100일 넘게 수사한 결과가 불구속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하고 있다. 영장을 기각한 신종열 영장전담판사가 검색어 1위가 되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신종열의 해임을 건의하는 청원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물론 구속 수사는 처벌처럼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신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권리이기에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구속수사 여부는 해당 사건의 무게, 해당 범죄가 얼마나 중대 범죄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한국의 현행법(형사소송법 70조)에서도 불구속 수사와 구속수사를 결정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이며, 다른 하나는 중대범죄(사안의 심각성)이다.
‘버닝썬게이트’로 불릴 만큼 대규모 성범죄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수많은 여성피해자가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 단순히 ‘증거인멸 여부’로만 판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묻게 된다. 구속수사는 구속해서 수사할 만큼 중대한 범죄이고, 불구속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피의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것도 목적이다. 버닝썬은 다양한 성범죄(마약에 의한 성폭력, 성매매, 불법촬영, 집단강간)가 벌어진 심각한 범죄집단이라 볼 수 있고 그곳 대표인 승리는 대표로서의 책임만이 아니라 관여 정도도 높다. 그러나 판사는 이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경찰의 부실수사와 판사의 대규모 성범죄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승리와 유인석 등은 풀려났다. 사람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왜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성폭력)는 중대범죄로 취급되지 않는가.
권력형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승리의 구속영장 기각에 분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버닝썬에서 벌어진 성범죄는 ‘게이트’가 따라붙을 정도로 조직적인 권력형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공권력(경찰)과의 유착, 유명연예인 등이 지닌 문화 권력의 사용, 유흥산업의 경제력 등이 얽혀있는 성범죄다. 권력형 성범죄는 검찰과 경찰 같은 공권력의 비호 하에 성폭력과 성착취가 일어나고 은폐되기 쉬워 수사와 처벌이 어렵다. 최근 벌어진 버닝썬 사건도 이렇게 가벼이 다뤄지는데 과연 오래된 권력형 성범죄인 故 장자연 성폭력사건(‘언론․정치권의 연예인성범죄리스트’ 사건)과 김학의 법무차관의 성범죄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고 처벌되겠냐는 회의가 들게 된다.
그러나 상사와 부하, 기획사와 소속 연예인, 교수와 학생 등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신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하기에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도 신고 이후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 때문에 고 장자연 씨처럼 죽음을 택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용기를 내 신고를 하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기소도 안 된다. 따라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어떻게 수사하고 어떻게 처벌하는가는 국가의 성폭력 근절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고 장자연 성폭력 사망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은 권력형 성범죄 근절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거대언론사 사주일가, 대기업 관계자, 고위검찰간부, 연예계의 영향력 있는 자들이 연루된 만큼 사건은 10년이 지났지만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버젓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13일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은 법무부 과거사위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제 20일 법무부 과거사위는 수사여부를 포함한 권고를 발표할 것이다. 공소시효 때문에 그나마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강제추행죄가 중심이 돼야 실효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일 고 장자연 사건 과거사위 발표에는 재수사가 천명되고 그에 따른 특별법 제정 등이 논의돼야 할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의 권고를 떠나서 권력형 성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회차원의 입법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