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굴뚝에 올라간 홍기탁과 박준호는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200일 동안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은 3승계와 함께 노동악법 철폐, 헬조선 악의 축 해체(독점재벌 국정원 자유한국당)를 덧붙여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내려오지 않겠다는 얘긴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당연한 요구인데도, 그들의 요구가 부조리해 보인다.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요구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느 새 사고가 부조리한 현실에 젖어있는 걸 깨닫는다.
촛불정권이 뭐하는 거냐고. 정권만의 문제일까. 그들의 투쟁이기 때문이 않을까. 노동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들이 투쟁으로 일궈낸 벽돌로 집을 짓고 그 속에 편안히 앉아서, 화면 너머로 바라보며 그들의 투쟁을 타자화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투쟁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다. 그들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결코 굴뚝 위에 올라갈 수 없을 것이다. 그 고통이 개인의 한계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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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펴지 못하는 75미터 고공에서 난방 없는 겨울을 보내고 씻지 못하는 여름을 보낸다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저려온다. 광화문 캠핑촌에서 노숙을 하며 겨울을 날 때, 너무 추워 새벽에 온기를 찾아 할리스로 가 몸을 녹이고, 며칠을 씻지 못하다 간신히 사우나에 가서 머리를 감으며 견뎌냈던 기억이 몸에 남아있다. 아직도 추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을 느낀다. 그런데 그마저도 못하고 흔들리는 75미터 고공에 갇혀있다고? 도망갈 곳도 기댈 온기도 없는 그 감옥보다 못한 공간에서 200일을?
부당해고의 고통도 가늠하기 힘들다. 가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해체되는 고통. 다시는 그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아니라면, 단식을 하고 굴뚝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더 극단적은 고통을 선택해야 그나마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일까.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태워 등대처럼 빛을 내고 있는 그들의 투쟁이, 우리의 투쟁이 될 때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튼튼할 것이고, 내 자식이 쉴 집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선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쌓이지 않는 세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는 것. 그 기다림이 부조리하던 내 마음을 만져준다. 이제 난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