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중앙언론사와 계열기업 및 대주주 등에 탈루법인세 5056억원 추징. 국세청이 지난 20일 발표한 내용이다.

국세청은 이번 발표와 관련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각종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며, 조사의 당위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의 공개관행 범위 내에서 조사결과를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세청의 ‘기대’와는 달리 언론계에선 각종 유언비어 등 불필요한 오해가 더욱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한 신문사의 경우 추징세액이 1000억원에서 2000억원까지 거론되자 일각에서는 매출액에 괘씸죄를 곱한 숫자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의 투명한 공개를 촉구하는 언론·시민단체 등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과 일선 기자들도 세무조사 결과공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더욱이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가 지난 2월 국세청과 재경부를 대상으로 신청한 정보공개일부거부처분취소청구에 대해 국세청과 재경부가 각각 지난달 18일과 19일 청구기각을 통보하며 “피청구인이 특별히 공익 또는 개인의 권리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개별적으로 공개하는 경우는 별론으로 한다”고 이전의 결과공개 거부입장에서 다소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바 있어 상황에 따라 보다 투명한 결과공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측의 이같은 입장은 세무조사 결과 공개에 대한 해석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며 그동안 국세기본법 81조8 비밀유지조항에 의해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온 것과는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세청도 지난 99년 `보광그룹과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고발사안 외에 추징세액과 탈루소득 등 사실상 전반적 결과를 공개하며 ‘배경에 대한 의혹해소와 국민의 알권리, 불법적 탈세행위 방지를 위한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공개에 대해 일선 기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세무조사에 담긴 정치적 의혹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공개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공개하지도 않을 것을 왜 조사하느냐”며 “원칙대로 공개해야 세무조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초유의 사주구속을 경험했던 다수의 중앙일보 기자들은 “세무조사 결과공개는 형평성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원칙적으로 비판·감시·견제 기능을 하고 있는 언론사는 다른 기업에 비해 더 투명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 놓고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세무조사라는 의혹이 더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방송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특히 KBS는 감사원이나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매해 정기적인 감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기자는 “정기적 감사를 받는 KBS와 달리 그동안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던 신문사들에 대해서도 세무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데 찬성한다”고 밝혔다.

SBS 기자들도 대체적으로 “언론의 감시기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도 세무조사 결과공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SBS와 지역민방과의 관계에 대해 국세청이 어떤 잣대를 들이댈 지에 대한 우려는 있으나 원칙적인 결과공개에는 찬성한다는 것이다.

세무조사 결과공개를 촉구해온 언론·시민단체의 입장은 더욱 분명하다. 신문개혁국민행동(본부장 성유보)은 20일 국세청 앞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공개 촉구대회’를 갖고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세무조사 결과는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을 신문개혁 쟁취 총력투쟁의 달로 삼은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세무조사 결과공개를 주요 전략목표로 삼고 신문개혁국민행동과 연대투쟁중이다.

언개연은 19일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공개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가 밀실거래를 막고 언론탄압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세무조사 결과를 반드시 공개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며 “김영삼 정권이 언론사와 물밑 흥정을 벌여 사법처리를 면해주고 추징세액을 감면해주고도 정권말기에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아 결국 몰락을 자초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개연 김주언 사무총장은 “언론시장 정상화를 위해서도 검찰고발 외에 상속세나 광고시장 등과 관련된 공적인 부분에 대한 공개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세무조사 결과를 비공개로 할 경우 권력과 언론간의 물밑흥정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장은 16일자 동아일보 사설의 예를 들며 “언론사들도 탈법·탈세 사실을 숨기려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스스로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국민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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