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 직후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고대영 KBS 사장이 “진실이 드러나면 핵탄두급”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회의록이 공개됐다. 또한 같은 기록물에서 이 사건 이후 고 사장이 도청의혹 당사자인 장 아무개 기자를 만나 직접 휴대전화를 교체해줬다는 발언도 드러났다.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면 고 사장이 수신료 인상 요구 국면에서 논란이 됐던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5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김인규 사장 시절의 임원회의 내용이 담긴 회의록 일부를 공개했다. 이준삼 당시 정책기획본부장이 작성한 이 회의록은 약 500페이지에 달하며, 앞부분에는 김인규 당시 KBS사장에게 전하는 헌사도 실려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2011년 7월25일 임원회의에서 고대영 당시 본부장은 “회사 내부에서 갤럭시 S 교체 이후 반납 필요 없다고 해서 놔둔 것 줬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이 도청 의혹 당사자인 장 아무개 기자를 만나 직접 휴대전화를 교체해줬다는 맥락으로 풀이되는 발언이다. 장 아무개 기자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일체를 분실했다고 말한 바 있다.

▲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같은 회의 자리에서 고 본부장이 “한 가지만 더 얘기하면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면 핵탄두”라며 “회사 불이익과 관련돼 얘기 안 할 뿐”이라고 말한 내용도 적시돼있다.

회의록에선 또한 도청 의혹 사건이 터지기 수개월 전 수신료 인상이 국회 내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던 즈음 김인규 KBS사장이 특정 언론과 당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의원들을 접촉해 KBS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것을 주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기록에 따르면 2011년 1월29일 수신료대책회의에서 김인규 사장은 “홍보주간 연휴 중에 사설 통해 작업하라. 조중동 아닌 문화 등 접촉 필요. 문방위원들 연휴 동안 작업 필요”라고 말했다. 고대영 당시 보도본부장은 “오늘이라도 동원할게요(정치부 기자들)”라고 답한다.

김인규 사장은 2011년 2월24일 수신료 대책회의에서도 “정치부 기자들 맨투맨 접촉하라. 정말 수신료라면 소름끼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요하게 해야 한다. 신문은 그렇게들 한다. 아주 학질을 뗀다고 한다”고 말했다. KBS본부측에 따르면 당시 정치부 기자들은 실제로 문방위원 접촉에 나섰다. 이후 같은 해 6월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이 터진다.

지난 21일 KBS기자협회 소속 민주당 도청의혹 진상조사위원회도 당시 관련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로부터 진술을 확보해 공개한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KBS보도본부 소속 정치부의 한 책임 있는 기자가 “상황이 더 악화되면 본인이 형사 처벌 받을 각오도 있다”고 발언했다는 증언을 공개했다. 의혹 당사자인 장 아무개 기자도 진상조사위 조사 과정에서 “내가 말하면 파문이 일 것이다. 파급력이 있기 때문에 시끄러워질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KBS 내부에서 우연히 민주당 회의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녹취록을 본 적 있다는 목격자 진술도 확보했다. 이 목격자는 “모든 내용이 너무나 자세히 적혀있었으며 회의 내용을 좔좔 풀어놓은 것처럼 전문이 다 적혀있었다”며 “회의 내용을 모두 들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작성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진술이 사실이라면 당사자를 포함해 사안을 알고 있는 인물들이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파급력 등을 감안해 사실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회의록 내용을 미뤄볼 때 고대영 사장도 도청 의혹 관련 사실관계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KBS본부측은 “6년이 지나 검찰 재수사가 들어간 상황에서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대영 사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KBS경영진은 노조 측이 회의록의 일부만 발췌했으며 노조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KBS는 지난 25일 “당시 KBS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KBS 기자가 도청 의혹에 연루됐을 수 있음을 가정하거나 암시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음을 확인한다”며 “당시 회의록에도 고 본부장은 ‘KBS기자가 관련되지 않았다’, ‘지시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다’는 내용을 강조하며 당시 경찰과 정치권, 일부 언론의 왜곡된 접근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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