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론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 전시됐던 ‘더러운 잠’은 수많은 논란거리를 불러왔다. △‘더러운 잠’이 국회에 전시되는 것은 적절한가 △‘더러운 잠’은 여성혐오 작품인가 △‘더러운 잠’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인가 등에 대해 여러 입장이 쏟아져 나왔다.

24일부터 ‘더러운 잠’에 대해 오고가는 수많은 의견 가운데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평소에는 젠더이슈에 큰 입장을 내지 않았던 이들이 ‘여성 인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좌-우 언론을 합작하게 만들었다면 ‘더러운 잠’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려는 이들과 여성단체를 묶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가운데에서는 “이들이 여성인권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가”싶은 생각이 드는 모습도 보였다. 한 예로 25일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는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 ‘더러운 잠’을 비판하며 표 의원의 부인을 벗기겠다는 성희롱 문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나왔다.

그들 중 한명은 “예술을 빙자한 외설, 여성들은 분노한다”라는 손피켓을 들었고 한명은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는 손피켓을 들었다. 같은 단체에서 만든 것인지가 궁금할 정도로 상반된 손피켓이다. 이는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이 ‘여성’ 전체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 전시됐던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 ‘더러운 잠’을 비판하며 표 의원의 부인을 벗기겠다는 성희롱 문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민중의 소리
젠더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야당 의원을 비난할 목적으로 ‘여성 인권’을 운운하는 모습은 황당하다. 물론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젠더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분노하는 여성들에 공감한다면 기쁜 일이지만 이 상반되는 두 피켓을 보고 있으면 이들에게 어떤 기대를 걸기란 어려워 보인다.

이런 태도는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25일 ‘민주당, 박근혜 누드화 내건 표창원 제명하라’는 사설을 썼다. 이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풍자를 가장한 인격모독이고 질 낮은 성희롱”이라며 그림을 두고 “여성혐오다”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논조는 비슷한 사설을 쓴 조선일보보다 수위가 높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같은날 사설에서 “여성 알몸을 정치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전체 여성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25일 중앙일보 사설.

보수 신문들의 젠더감수성이 갑자기 예민해진 것일까. 하지만 다른 사안에 대한 이 신문들의 접근방식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중앙일보는 하루 전날 ‘갈수록 초췌해지는 조윤선, 8일 사이 변화’라는 기사를 올렸다. 22일에는 ‘'너무 다른' 조윤선의 화장 전후 모습’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들은 공직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조윤선 전 장관을 비하하고 있으며 전혀 중요한 사안이 아닌 외모를 부각시켰다. 여성인 공직자들에 대해 업무 외적인 외모나 의상들을 지적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보도다.

지금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수많은 여성이슈가 보도될 때에도 침묵을 지켰던 일부 언론들의 이러한 '각성'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않는 이유다.  

지금까지 여성 이슈에 대해 무감각했으니 계속 여성이슈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주문은 아니다. 표창원 의원을 저격할 때만큼의 젠더 감수성을, 다른 여성 이슈를 바라볼때도 똑같이 적용해달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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