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플레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어떤 장르인가?”
“모른다. 전혀 관심없다. 어떤 콘텐츠가 인기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이용자에게 어떤 콘텐츠가 잘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 ”

지난 2일 프로그램스 사무실에서 박태훈 프로그램스 대표를 만났다.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습관적으로 던진 질문에 의외의 답이 나왔다. ‘TV로 TV를 보지 않는 시대’에 등장한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한 영상 서비스) 시장이라고 해도 획일화된 인기 콘텐츠를 많이 팔아야 한다는 TV시대의 사고를 하기 쉬운데, 이를 벗어난 답이었다.

그가 이례적인 것처럼 유력 미디어 사업자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OTT 시장을 파고든 프로그램스의 왓챠플레이는 ‘별종’이다. 직원 25명 규모의 군소사업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자들과는 사업의 목적과 순서가 판이하게 달랐다. 미디어 사업자들은 콘텐츠를 잘 팔기 위해 추천서비스를 도입했지만, 프로그램스는 추천서비스가 먼저였다. 이용자의 별점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추천 콘텐츠를 제시하는 서비스인 ‘왓챠’를 만들고, 이 서비스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OTT ‘왓챠플레이’를 만든 것이다. 

박태훈 대표는 인터뷰 내내 ‘개인화’ ‘자동화’ ’추천‘을 강조했다. 그는 아직은 시장이 작지만 “편리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만 한다면 언제든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강력한 경쟁자인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한국 이용자, 한국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우리가 더 잘 추천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이다.

- 원래 넥슨에서 게임서비스 개발업무를 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왓챠를 만들게 된 건가.
“사실 넥슨엔 병역특례로 입사했다. 게임제작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어려서부터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많았다. 이 서비스들의 특징을 정리해보니 ‘개인화’ ‘자동화’ ‘추천’으로 요약 됐다. 이걸 구현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영화에 평점을 주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좋아할만한 영화를 추천하는 서비스인 ‘왓챠’를 만들게 됐다.”

왓챠플레이를 만들어 OTT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원래 염두에 둔 건가? 동영상 플랫폼은 규모가 큰 회사들이 해왔는데, 위험부담이 큰 것 아닌가.
“처음엔 왓챠플레이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왓챠를 운영하다보니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는 건 좋은데, 그 영화를 어디서 봐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용자들이 많았다. 이 가운데 왓챠가 안착하다보니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꼬맹이가 그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웹하드가 아니라 VOD서비스를 한다고?’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 왓챠플레이 모바일 앱 화면.
- 회사규모가 작다보니 콘텐츠 수급이 쉽지 않았을텐데, 보유 콘텐츠가 1만1000건이 넘는다는 게 신기하다.
“우리가 왓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왓챠플레이를 한다고 했으면 돈이 많이 들었을 거다. 우리는 영화를 추천해주다보니 콘텐츠 사업자들과 관계가 좋았다. 더욱이 왓챠는 신작 뿐만 아니라 오래된 작품 중에서 개개인에게 맞는 작품 추천이 잘 되기 때문에 기존 작품에 대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채널이다. 이 점을 중점적으로 설득했고 콘텐츠 사업자들도 공감했다. 실제, 시청 기록을 보면 신작과 구작 중 한쪽에 쏠리지 않고 잘 퍼져 있다.”

- 대규모 자본이 없으면 콘텐츠 수급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지 않나. 플랫폼사업자라면 독자 콘텐츠가 많아야 이용자를 끌 수 있는데, 왓챠플레이는 그런 상황도 아니다.
“맞다. 그런 약점이 있다. 그래서 강점으로 약점을 커버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업자들이 아무리 콘텐츠를 많이 갖고 있어도 유저들한테 도달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추천을 잘해주는 게 강점이다. 또, 다른 사업자들은 기본적인 회사규모가 있기 때문에 지킬 게 있는 반면 우리는 ‘개인화’가 중요하다는 비전만 지키면 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자체 콘텐츠 제작이나 독점 콘텐츠 공급을 고려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 월 요금이 4900원으로 넷플릭스의 절반 정도다. 이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지 궁금하다.
“아니다. 절반보다 조금 더 싸다. 왓챠를 꾸준히 쓰는 이용자들이 왓챠플레이를 어느 정도만 써주셔도 수익이 나는 구조다. 왓챠가 196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이 왓챠플레이 회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회원수는 예상한 만큼 늘고 있다. 성공이라고 말하기 힘들 수 있지만 일단 ‘적자가 나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다.”

- 지난달 모바일 앱을 출시했는데 반응은 어떤가?
“이용자들이 모바일 앱을 빨리 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반쯤 화를 낸 분도 있다. ‘내가 한달에 컴퓨터를 몇 번 켠다고 생각하냐’. ‘넌 집에서 컴퓨터 하냐? 회사에서 보라고?’라고 묻기도 하더라. 이제 모바일이 퍼스트 스크린이 됐다. 주변 분들에게 물어봐라. 퇴근하고 잘 때까지 컴퓨터를 한번도 안 켜는 경우가 훨씬 많을 거다. 실제 모바일 앱을 출시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유입되는 이용자를 보면 모바일이 훨씬 더 많기도 하다.”

▲ 박태훈 프로그램스 대표. 사진 제공=프로그램스.
- 다른 OTT와 달리 넷플릭스는 외국 콘텐츠 중심이고, 추천기술이 발달했다는 점에서 왓챠플레이와 성격이 겹친다. 그런데 묘하게 넷플릭스와 왓챠 모두 1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왓챠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저작권자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콘텐츠를 ‘공급해줄 수 있냐’고 알아보는 와중에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소식이 들렸다. 천천히 오는 줄 알았고, 우리가 먼저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넷플릭스가 1월에 진출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출시를 빨리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회사에서 정말 많이 잤다. 너무 많이 자서 그 쇼파를 버릴 정도였다.”

-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수준은 넷플릭스와 비교하면 어떤가.
“기술의 수준을 떠나서 봐야 한다. 한국 이용자에 대한 데이터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가 적다보니 관련 데이터도 거의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넷플릭스보다 우리가 더욱 정확하다. 우리는 왓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경쟁사의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도 갖고 있다. 왓챠가 나한테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독점 콘텐츠인) 하우스오브카드와 데어데블을 보라고 추천한다.”

- 한국 이용자들의 콘텐츠 수요를 보면 ‘신작’ ‘국내’ ‘드라마, 예능’으로 꼽을 수 있는데 오래된 외국콘텐츠 중심인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글로벌 시장을 보자. 정말 예외가 없을 정도로 영화 VOD 시장이 커졌다. 그렇다면 한국만 유독, 예외적인 시장이 될 것인가? 넷플릭스가 미풍에 그칠 거라고 보는 사람들은 ‘엄청난 예외’라고 보는 건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넷플릭스는 어느 정도는 흥행할 것이라고 본다. 이 시장을 다 잡아먹을 정도는 안 되겠지만, 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 중 하나가 될 거다.” 

- 한국은 콘텐츠를 돈을 내고 시청한다는 인식이 거의 없는 시장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사람들이 콘텐츠를 돈을 안 내고 보는 경험을 오랫동안 간직해온 건 맞다. 이걸 끊기 위해서는 ‘편하게 보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면을 켜고 누르면 어떤 콘텐츠든 바로 볼 수 있게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 편안함이 무료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유료회원으로 가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라고 본다.”

“음원과 게임시장도 그랬다. 소리바다에서 공짜로 음악 다운로드 받을 때는 다운에 시간도 걸리고 파일이 제대로 된게 맞는지 살펴봐야 하고, 음질도 확인해야 하고 복잡하다. 그런데 편리한 스트리밍서비스가 도입되니 번거로움이 사라졌고, 자리잡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돈 내고 정품으로 게임 해본 사람 많지 않을 거다. 그런데  앱스토어 결제시스템이 편해지니 많이 사서 한다. 편리함은 유료구매의 장벽을 붕괴하도록 돕는다. 이 시장도 그렇게 될 거라고 본다.”

- 콘텐츠 장르별로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모른다. 우리는 그런 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개인화가 비전이기 때문이다. 어떤 류의 콘텐츠가 어떤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지는 관심 없다. 대신 이 유저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할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세상에 안 좋은 콘텐츠는 없다. 제대로 추천받지 못한 콘텐츠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관에서 인기 없는 작품이라도 개인에게 맞게 추천해주는 게 중요하다.”

- 최근 OTT의 트렌드는 VR(가상현실)과 MCN(1인 방송)이다. 다른 사업자들은 경쟁적으로 관련 콘텐츠를 모으고 있는데 왓챠플레이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단순히 콘텐츠 유통을 하려는 게 아니다. 개인에 최적화되고, 개인을 잘 이해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VR이나 MCN 콘텐츠에 대해서는 왓챠가 아무런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이걸 콘텐츠로 넣어서 추천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달로 가는 항공편을 만들겠다’는 표현처럼 말이 안 되는 거다.”

- 서비스에 광고를 찾아볼 수 없다. 통신사의 OTT들은 광고가 많은 편인데.
“왓챠플레이가 성공하려면 유저를 많이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광고가 없다는 건 이용자들에게 더 좋은 경험이 된다. 강력한 경쟁자인 넷플릭스도 광고가 없다. 앞으로 큰 일이 없는 한 광고를 계속 넣지 않을 계획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작은회사 입장에서는 광고를 붙이는 것도 '일'이다. 개발은 누가하고 영업은 또 누가 하나.”

- 일본에 왓챠를 선보였는데, 일본에도 왓챠플레이를 서비스할 계획이 있나.
“우리기술이 국적에 구애받는 성격은 아니니 일본에서도 OTT 진출을 하고 싶다. 일본은 콘텐츠 시장이 크고, 이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구입도 많이 해서 추천서비스가 의미있는 시장이라고 본다. 다만 저작권자들이 어떤 분위기인지 아직 잘 모르는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 시장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는데, 진출이 확정된 건 아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