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는 1961년 8월 역사상 최대의 언론말살 사건인 ‘민족일보 사건’의 담당 심판관으로서 반민주 악법의 칼날을 휘둘러 조용수 사장을 ‘반국가단체 동조’ 혐의로 사형시키는 등 언론말살과 인권탄압에 앞장섰다.” 자유민주연합의 송석찬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이총재의 정계은퇴를 주장하며 쏟아낸 말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은 민족일보 사건의 한 원인이 된 반공특별법 제정 당시 집권 민주당의 대변인으로 이 법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5·16군사쿠데타의 중심이었다”고 비난해 논란이 벌어졌다.

이총재가 조용수 사장의 사형선고에 서명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가 된 사안이다. 지난 95년 1월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발행)을 펴낸 경향신문의 원희복 기자는 “당시 혁명재판소의 민족일보 사건에 대한 군사재판은 육군대령이 재판장을 맡고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심판관을 맡았는데 당시 서울지법 판사로 근무하고 있던 이총재가 혁명재판소에 심판관으로 파견돼 1심 재판에서 조용수 사장에 대한 사형선고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당시 상황에 대한 원기자의 파악이 정확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원기자는 “이총재가 96년 초 기자단 인터뷰에서 ‘40년 판사생활 중 가장 기억이(회한이) 남는 재판이 뭐냐’는 질문에 민족일보 사건을 꼽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총재를 직접 만났다. 이때 이총재는 “파견지시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서열 낮은 순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당시 분위기에 대해 원기자는 “민족일보 진상규명위원회 법률자문인 강신옥 변호사에게 ‘파견을 거부했던 판사는 군인들에게 뺨까지 맞았다’고 들었다. 보통의 신참판사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총재의 민족일보사건 재판 관련사실은 지난 97년 이총재가 신한국당 대표 취임 때 보도된 바 있으며, 대선이 임박하자 국민회의가 다시 이 문제를 기사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또 MBC주최 15대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이총재는 “조용수 사장에 대한 사형선고의 근거인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소급입법이며 위헌이라는 사실을 몰랐느냐”는 박원순 변호사의 질문에 대해 “당시에는 헌법재판소 등도 없었으며 위헌여부에 대해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답했다.

원기자는 “1심 사형선고에 서명한 이총재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당시의 쿠데타 주역들이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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