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을 반대하며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한지 1일로 7일째다. 현재 필리버스터는 기로에 서 있지만, 아직까지 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서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짚고 있다.

47년 만에 이뤄진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높다. ‘마국텔(마이국회텔레비전)’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SNS상에 의원들의 발언이 재가공된 동영상, 사진 등이 떠돈다. 유권자들 스스로 의원들의 발언을 요약하고 발언에 나선 의원 개개인을 캐릭터화하며 즐기고 있다.

그런데, 기성언론은 지난 일주일여 간 의원들의 발언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160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의원들이 릴레이로 쉬지 않고 발언을 이어갔으니,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 단위의 단어가 사용됐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의원들의 발언을 고스란히 전하는 인용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보도 중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소식을 조금이라도 전하는 기사 내에 의원들의 발언이 얼만큼 인용됐는지를 살폈다. 인용문이 포함된 문장을 모두 포함했고 인용이 아니더라도 연설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도 포함했다. 시간경과 등 단순한 사실전달, 필리버스터 현장이 아닌 본회의장 밖의 논쟁은 포함하지 않았다.

10%가 되지 않았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다음날인 지난달 24일 조선일보의 경우 본회의 장 내 필리버스터 관련 소식을 다룬 기사는 2건, 총 1289자였다. 이중 의원의 발언이 인용된 것은 97자. 7.52%다. 중앙일보는 총 2건의 기사의 2492자 중 170자를 인용(6.82%)했다. 동아일보는 3건의 기사에서 3850자가 나왔지만 의원 발언 인용은 78자(2.02%)에 불과했다.

2016년 2월24일자. 동아일보 1면. 이때만 해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는 1면이었다.
하지만 이날 기사만으로 이들 신문이 의도를 가지고 의원들의 발언을 축소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단 23일은 신문 마감 시간까지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 명만이 발언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총 2건의 기사 1290자 중 71자를 인용(5.50%)했고, 한겨레는 3건의 기사 3460자 중 385자(11.12%)를 인용했다.

그런데 25일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조선일보의 경우, 이때는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취재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이날 조선일보는 총 3건의 기사 2263자 중 단 한 글자도 의원들의 발언을 인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한 기사에 필리버스터에 대한 야당 대변인의 논평이 나오는데, 이를 포함해도 104자, 4.59%에 불과하다. 동아일보도 2건의 기사 1623자 중 필리버스터 연설 인용은 48자(2.95%)에 불과했다.

중앙일보는 1건의 기사 1458자 중 291자(19.95%)로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언을 인용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에 대한 부분은 기사의 도입부, 은 의원의 마무리 발언이 전부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테러방지법 막겠다더니…은수미 뜬금없이 ‘세 모녀 발언’’이다. 나머지 인용문은 은 의원이 준비부족으로 의제에 벗어난 얘기를 했다는 비판이다.

2016년 2월25일자. 경향신문 4면, 야당 의원들의 발언시간과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반면 경향신문의 경우, 총 3건의 기사 2574자 중 679자(26.37%)를 인용했다. 한겨레는 총 2건의 기사 2276자 중 327자(14.36%)를 인용했다.

대통령에게는 70%가 주어졌다.

원래 언론은 인용에 인색할까? 그렇지 않다.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치며 국회를 비난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25일 각 언론을 보면 조선일보는 931자 중 710자(76.26%)가 인용이었고 동아일보는 911자 중 616자(67.61%)가 인용이었으며 중앙일보는 1058자 중 833자(78.73%)가 박 대통령의 말을 인용한 문장이었다. 물론 언론사 별로 필리버스터를 하는 의원들과 박근혜 대통령 발언의 무게가 다르다고 판단할 수 있다.

26일 보도도 비슷하다. 조선일보는 3건의 기사 2549자 중 205자(8.04%)만을 인용했다. 동아일보는 1건의 기사 1308자 중 51자(3.89%)만이 인용됐다. 한겨레는 1건의 기사 1282자 중 659자(51.40%)가 인용됐고, 경향은 4건의 기사 2636자 중 481자(18.23%)가 인용됐다. 놀라운 건 이날 중앙일보, 한 건도 없었고, 당연히 인용된 문장도 없었다.

2016년 2월26일자. 중앙일보 1면.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현장은 종종 사진으로 대체됐다.
27일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조선일보가 필리버스터 상황을 전하는 기사 총 2건을 냈는데 총 1139자 중 인용된 문장의 단어가 266자(23.35%)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용도는 제목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 ‘“발언자 3분 내로 화장실 다녀와라” 허리 아플까봐 발판 마련하기도’ 기사와 ‘요즘 국회는 그들만의 눈물바다’ 기사다.

중앙일보도 1건의 기사 1103자 중 115자가 인용문장에 들어갔다. 다만 인용의 목적이 테러방지법 반대와는 좀 다르다. 컷오프된 김현‧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과 행동을 전하며 “이날 공천배제 명단에 포함된 더민주 김현 의원이 등장했다”고 썼다. 이 와중에, 동아일보는 1건의 기사도, 1자의 인용구도 없었다.

2016년 2월27일자. 조선일보 5면. 필리버스터에 대한 외적인 사안, 비판기사에 의원들의 발언이 인용됐다
한겨레는 1건의 기사 1380자 중 441자(31.95%), 경향신문은 1건의 기사 912자 중 291자(31.90%)의 의원들 발언이 인용됐다.

필요할 때만 써먹었다?

그리고 29일은 다시 모른척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필리버스터 현장 소식이 한 건도 없고, 당연히 인용문구도 없다. 중앙일보는 1건 886자의 기사에서 상황을 일부 전했지만 인용은 단 한자도 하지 않았다. 반면 한겨레는 아예 의원들 발언을 모아 기사를 썼다. 그래서 1건 2076자 중 1677자(80.78%)가 나왔다. 경향신문은 2건 1148자 중 428자(37.28%)를 인용했다.

2016년 2월29일자. 한겨레 3면. 테러방지법 반대에 관한 의원들의 주요 발언내용을 담아 하나의 기사로 재구성했다.
정리하자면 적게는 2시간여, 많게는 11시간 40분 동안 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지만 조사 대상 5개 언론 중 3개 언론엔 거의 그들의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설령 그들의 목소리 일부가 지면에 실렸더라도 필리버스터를 비판하는 기사에 인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모든 언론이 거의 대부분을 인용해 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이 언론의 독자들은 대체 야당 의원들이 160시간 동안 국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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