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규제 기구나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이 20대 총선 국면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 출신이 자신을 추천한 정당에 입당하거나 출마자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직접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과 권미혁 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를 영입했다. 

시민운동가인 권 전 이사는 여성민우회 상임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시민방송 부이사장 등을 지낸 저명인사다. 정치권에서는 ‘박원순의 사람’으로 꼽고 있다. 

권 전 이사는 지난 2012년 8월부터 3년 동안 야당 추천 9기 방문진 이사였다. 방문진은 MBC 대주주로서 사장 임면권을 갖고 있는 기구다. 

   
▲ 이철희(왼쪽부터) 두문정치연구소 소장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미혁 전 방송문화진흥회 야당 이사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입당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9기 방문진을 거치며 MBC 신뢰도는 바닥을 기고 있다. 지난해 시사저널의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조사에서 MBC는 7위로 추락했다. 영향력 부문도 2011년 42%에서 2015년 18.8%로 떨어졌다. 한국기자협회의 2015년 신뢰도 조사에서도 MBC는 1.1%를 받는 데 그쳤다. 

2012년 파업 관련 소송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됐음에도 여전히 파업 참가자 다수는 현업에서 배제돼 있다. 다수 여당 이사(6명)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점, 여당 이사들이 MBC 경영진을 두둔하며 비판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 등은 소수 야당 이사(3명)로서 겪게 되는 구조적 한계다.  

그러나 MBC 안팎에서는 9기 이사진이 MBC 경영진의 전횡을 막지 못하는 등 무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관련기사 : MBC의 가짜 주인 방문진, MBC가 산으로 가는 이유>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직에서 물러난 허원제 새누리당 예비후보(부산 진구갑)도 논란의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2월21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직에 대해 사의를 표명하고, 박근혜 정부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가올 총선에 대비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떠났다. <관련기사 : 허원제 여당 방통위원, “총선 출마” 사퇴>

부산 출신인 허 예비후보는 국제신문·부산일보·경향신문·KBS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2006년까지 SBS에 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특보 겸 방송단장으로 활동했다. 2014년 2월 새누리당 추천을 받고 방통위 상임위원직을 수행했다. 

   
▲ 이길영 전 KBS 이사장(왼쪽)과 허원제 새누리당 예비후보.
 

KBS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14년 8월 사퇴한 이길영 전 KBS 이사장이 김문수 새누리당 예비후보(대구 수성구갑) 후원회장을 맡은 것이다. 지난해 12월21일에는 김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 위촉장까지 받으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2012년 당시 이길영 KBS감사가 KBS이사로 추천되자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이길영씨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김관용 경북도지사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을 위해 뛰었으며 선거 이후에는 김관용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을 맡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공영방송 이사나 방통위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이라며 “이를 역임했던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공적 영역을 사유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언론시민사회 안팎에서도 “이사 시절 업무가 정치적으로 독립된 활동이었는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데 공영방송 이사직이 하나의 이력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된다. 

반면,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송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국회 입법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며 “거꾸로 정치권을 기웃대다가 공영방송 이사가 되거나 방통위원으로 낙점되는 경우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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