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기자들이 한번에 많은 질문을 던지자 ‘제가 머리가 좋아서 다 기억하지 머리 나쁘면 기억을 못 한다’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이데일리) 

“기자회견 때는 농담을 섞어가며 편안하게 이끌었다.”(헤럴드경제)

“박 대통령은 ‘경제 전투복’인 특유의 붉은 재킷과 검정색 바지를 입은 채 각종 현안에 결연한 말투로 답변해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한국일보)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연출된’ 기자회견 논란을 빚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기자회견 후 쓴 기사들이다. (관련기사 : ‘연출된’ 13개 질문 끝나고 “여기까지 받겠다”는 청와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이어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모두 13명의 기자들(서울신문·KBS·조선일보·이데일리·헤럴드경제·경상일보·OBS·뉴데일리·JTBC·한국일보·평화방송·일본 마이니치신문·대전일보)이 질문했고, 질문 순서와 내용은 미디어오늘이 사전에 입수한 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정해진 기자회견 시간 내에서 질문 주제가 겹치지 않게 현안을 골고루 질문하려면 어느 정도의 조율은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비록 기자회견은 ‘각본’대로 진행됐더라도, 폐쇄적인 기자회견 방식이나 예기치 못한 불편한 질문에 답변을 꺼리는 박 대통령의 태도를 지적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되레 이날 질문했던 일부 기자들은 박 대통령의 옷차림과 화법, 청와대 기자회견 방식을 띄워주기까지 했다.

   
지난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박 대통령 기자회견 장면.
@연합뉴스
 

최상현 헤럴드경제 기자는 “박 대통령은 이날도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때 즐겨 입는 붉은색 재킷을 입고 회견장에 들어섰다”며 “이날 행사장인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는 ‘권위’를 탈피하고 ‘소통’을 확보하려는 청와대의 노력이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

최 기자는 이어 “대통령과 기자들 좌석 사이의 거리도 지난해에 비해 훨씬 가까워졌다. 지난해 3m에서 올해는 거리가 2m로 1m가 줄어들었다”면서 “국민과의 거리가 30% 정도 가까워졌다. 자리 배치는 권위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소통을 늘리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기자들과 거리가 1m 줄어든 게 눈에 띄는 ‘권위’ 탈피와 ‘소통’ 확보로 보였는지, 어딜 봐서 국민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는지 갸우뚱한 대목이다.   

이준기 이데일리 기자는 “‘제가 머리가 좋아서..’ 여유 되찾은 朴대통령”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은 기자들이 한번에 많은 질문을 던지자 ‘제가 머리가 좋아서 다 기억하지 머리 나쁘면 기억을 못 한다’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기자는 위안부 할머니와 만남 계획 등 ‘머리 좋은’ 대통령이 명확히 대답하지 않은 사안이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개인적 평가 등 민감한 질문을 농담으로 넘기려 한 점에 대한 지적보다는 “여유가 묻어났다”고 평가했다.    

이지운 서울신문 기자는 “박 대통령은 회견 마지막 ‘규제 프리존 특별법’ 대목에서는 ‘여러분도 많이 도와주시고, 이거 꼭 해야 된다고 얘기 좀 많이 해 주세요’라고 말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생중계 영상에선 대통령만 웃었을 뿐, 터져 나올 정도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난 2003년 6월2일 청와대에서 열린 참여정부 출범 100일 내외신 기자회견 중 질문을 하기위해 기자들이 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은 폐쇄적 기자회견 방식과 대통령의 답변에 항상 너그러웠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연달아 두 번의 기자회견을 했을 때,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김정훈 동아일보 기자는 “회견 말미에 사회자가 ‘질문이 더 없느냐’고 묻기도 했으나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는 예정된 기자들만이 질문하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다”며 “일각에서는 ‘차제에 완전 자유질문 제도로 바꾸거나 충분한 질의시간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운영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또 노 대통령 측근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질문한 후 기사를 통해 “노 대통령은 특별회견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추가 해명으로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여러 의혹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다”며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동아일보는 “기자들 질문권 얻기 신경전” “‘닫힌 언론관’ 언제까지” 등의 비판 기사와 칼럼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에게 질문했던 고태성 한국일보 기자는 “대통령의 이중잣대”라는 칼럼을 통해 “노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선 ‘탈권위’라는 미래의 문화를 얘기하다가 (언론이) 자신의 거친 화법에 대해선 적절히 걸러주는 관행, 즉 과거의 문화로 돌아간 것이라면 그야말로 이중잣대”라며 “걸러준다는 것 자체가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에 적합한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태도, 청와대의 기자회견 사전조율 등을 문제 삼으면 날 선 보도를 해왔던 당시의 언론, 출입기자들의 모습과 현 정부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는 지적이 매년 나오고 있지만 올해도 똑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4일 방송보도 브리핑 자료를 내면서 “사전에 기자회견 질문지가 유출되고 미리 각본이 마련돼 있었다는 의혹도 있는 상황이고, 이번에도 외신 기자들은 기자회견 사전 통보를 못 받았다며 ‘연극’이라 비판했다”며 “하지만 방송 보도에서 대국민 담화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기자회견 각본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특히 TV조선과 채널A는 대통령 담화 때마다 보여준 ‘대통령 패션쇼 보도’를 또 반복하고 대통령의 한숨, 웃음 등에 지나치게 집중하며 가십성 보도를 했다”며 “‘사전 각본설’에 대한 의혹이 팽배한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 태도를 농담과 애드리브로 칭송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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