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에서 남성의 공간을 확보해야한다는 내용으로 집 안에 남성 맞춤형 공간을 선물하는 인테리어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집을 고쳐 준다’는 컨셉에 몰래카메라 요소를 더해 재미를 갖췄다. 

하지만 ‘가족과 상의 없이 가족 혹은 부부의 공간을 오롯이 남성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한다’는 프로그램의 대전제에는 뭔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는 지난 11월10일부터 케이블 채널 XTM에서 정규 편성돼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9일까지 총 12화가 방송됐다. 가장 역할을 맡는 남성의 의뢰를 받아 집의 한 공간을 바꿔 주는 게 주요한 콘셉트다. 

   
▲ 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홈페이지 이미지.
 

 

의뢰인들은 집 안에 낚시터·캠핑장·노래방·당구장·만화방·PC방 등 공간을 요구하고 제작진은 예상보다 훌륭하게 집 인테리어를 뒤바꾼다. 리모델링 시간을 한나절에 한정해 시청자에게 미션 달성이라는 또 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시공 전·후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통해 가족의 반응을 살피는 점도 재미거리로 등장한다. 제작진과 남성인 세 MC는 바뀐 집 모습을 보고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가족, 특히 부인의 반응을 몰래 카메라로 훔쳐 본다. 그리고 의뢰인 부인이 알아채기 전에 ‘현장’에서 도망치듯 떠나면서 프로그램이 끝난다. 

집안 인테리어에도 관심 있고 ‘몰래카메라 류’의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던지라 익숙한 포맷에 편안했고 색다른 조합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은 것은 ‘남성 의뢰인’의 의뢰 내용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 자체다. 

최근 가정에서 남성이 소외되고 있다는 류의 진단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올해 3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남성의 자녀 돌봄 시간은 1999년 13분에서 2009년 20분으로 10년 동안 단 7분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여성은 같은 기간 84분에서 93분으로 9분 증가했으나 남성과 비교하면 절대적인 수치는 2009년 기준 4.6배에 달한다. 남성의 돌봄 노동 시간은 유럽 등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도 현저히 떨어진다. 

‘수방사’에는 이런 남성 소외가 반영됐다. 수방사의 캐치프레이즈는 “남자가 꿈꾸던 공간이 와이프 몰래 현실이 된다”다. 스스로는 프로그램에 대해 “집에 들어가도 할 것이 없는 남자, 화장실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남자,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남자들의 반격. ‘집’을 통째로 점령한 아내를 향한 남편들의 대 공습이 시작된다”고 소개한다. 

수방사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남자”라며 가족에서 남성, 남편, 아버지를 스스로 소외시키는 자발성이나 ‘집을 아내가 통째로 점령했다’고 하는 오해에 대해서는 지면이 아까우니 스스로 공부하시길 바란다.  

   
▲ 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방송 화면 캡쳐.
 

 

다만 그 해결 방법이 왜 공간을 공유하는 가족과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만들어 지문 인식 장치로 중무장한 ‘남성만의 공간’이 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한희정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는 “최근 남성의 육아·요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연성화된 남성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에 반해 ‘수컷’을 강조한 마초적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 아니겠느냐”며 “함께 사는 가족의 의견을 듣지 않고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배려 없음이 과연 ‘남성 다움’, ‘수컷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사실 가족은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데 남성만 억울하다는 식의 문제제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남성만이 오롯이 가정의 생계부양자가 되는 오래된 모델보다 함께 일·가정 양립을 이야기하는 최근 현상을 반영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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