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입을 막을 것인가? 지난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상호 비난을 자제”할 것을 합의했다. 일본 정부가 불편해하는 “소녀상은 관련단체와 협의해 해결하겠다”고 했다. 종합하면 일본이 주는 10억엔을 받으며 소녀상을 옮기고, 청와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잘 달래면 된다는 뜻이다. 

중앙일보가 지원에 나섰다. 지난 30일 기사제목은 “할머니 분노부터 풀어드리고 실질적 지원해야”였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주장은 외면했다. 같은날 사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들을 설득할 것”을 요구했다. 합의 다음날인 지난 29일 아베 일본 총리가 사죄했으니 “새로운 관계 열어나가자”고 했던 중앙일보다. 

31일 중앙일보는 사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이란 명분으로 해묵은 현안이 원만히 해결되길 기대했던 게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라며 “이번 위안부 합의 성패는 결국 한국 정부의 대국민 설득과 함께 일본의 진정성 여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설득은 가능할까? 앞으로 중앙일보의 보도가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 31일자 중앙일보 사설
 

동아일보 5면기사 “청와대 ‘할머니들 감정 가라앉힐 시간 필요’”를 보면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위안부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기사만 보면 박 대통령이 일제의 인권침해에 문제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합의 내용을 보면 ‘어떠한 관심’인지 의문이다. 

걱정하는 여성대통령, 이해해주지 않는 피해자?

해당 기사에서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여성 대통령이기에 위안부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며 “일단 피해자들이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 권력에 의한 범죄 사건이 아니라 남녀의 문제로 한정한 뉘앙스도 문제지만 ‘여성 대통령’이 나섰는데 왜 피해자들이 분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해당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동아일보는 “당장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를 만날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해줬다. 만나면 해결될 일인가? 지난 29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조태열 외교부 차관이 만나서 할머니들의 슬픔은 치유됐나? 일을 일단 저질러놓고 불만을 잠재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만나 협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방안을 고려중이지만 아직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며 “자칫 피해자들이 대통령 앞에서 비판을 쏟아낼 경우 대내외에 ‘실패한 협상’이라는 점이 부각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잘했는데 피해자들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청와대가 원한 건 대통령이 피해자를 달래는 한 폭의 ‘그림’일 뿐이다. 나쁘게 해석하면 피해자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린다고 볼 여지도 있다. 분노는 청와대가 아닌 일본을 향하길 원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아베 총리를 유대인 학살에 사과하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와 비교하며 일본을 비판했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인 책임은 일본정부에게만 있지 않다. 

성토장이 된 마지막 수요집회 
이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국내 갈등일 뿐 

지난 30일 1211차 정기 수요집회는 평소보다 많은 700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평소보다 3~4배 정도 많은 숫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시민들은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최종적 합의라는 말로 한국 정부는 왜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죽이느냐”며 울먹였다. 

   
▲ 31일자 한겨레 만평
 

신주백 연세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 “이러려고 ‘타협’했는가”를 통해 “이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주요한 갈등은 한·일간에서 우리 내부로 전환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이에 따라 국제협력은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일본은 힘들이지 않고 코를 푼 셈”이라고 덧붙였다.  

양보해서 재단을 설립하는 건 현실성이 있을까? 한겨레는 “(일본의) 10억엔 출연은 재단 설립을 전제로 한다는 지적인데, 피해자 할머니와 관련 단체의 반발 강도에 비춰 볼 때 재단 설립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재단을 출범하겠다며 시간표를 짜고 있다. 

10억엔은 약 97억4300만원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한 피해자 238명(사망 192명 포함)에게 분배하면 1인당 4093만원 꼴이다. 한국정부가 관련 법령에 따라 등록 피해자한테 지원하는 생활안정지원금(월126만원)과 간병비(월105만5000원)등 각종 지원 방안을 논하더라도 1인당 4300만원의 ‘일시 특별지원금’보다도 적다고 한겨레는 비판했다. 

물론 전액을 일괄 분배할 수도 없다. 재단 운영비는 한국정부가 내더라도 기금의 상당부분은 관련 사업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겨레는 “정부가 성격도 불분명하고 액수도 미미한 이 돈을 왜 받겠다고 합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찍히면 해고

올 한해 노동시장 구조개악으로 불렸던 저성과자에 대한 정부의 일반해고 가이드북 초안이 지난 30일 발표됐다. 국민일보는 “정부는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는 매뉴얼 형태 대신 대법원 판결로 나온 판례를 정리해 현장에서 참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북’ 형태를 선택했다”며 “정당한 일반해고의 기준 등은 여전히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 31일자 국민일보 6면
 

국민일보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일반해고’의 예외 기준을 정부가 하위 지침으로 정한다는 것이 그만큼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증”이라고 봤다. 기준이 모호한 것에 대해 이 신문은 “‘일 못하면 해고할 수 있다’는 인식만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도 인정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불리해지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는데 정부는 이와 관련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지금도 전국 곳곳에선 희망퇴직이란 이름을 내건 사실상의 정리해고가 넘쳐난다”며 “어차피 구속력도 없는 가이드라인 제정에 속도전 치르듯 목매단 이 정부가 과연 기업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직무 및 성과 평가나 충분한 해고회피 노력 등의 전제조건을 지키고 있는지나 제대로 감시하리라 기대할 수 있겠냐”고 주장했다. 

정부의 ‘해고지침’ 초안 공개에 반발해 한국노총은 노사정합의를 파기하고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한국노총은 임시국회가 열리는 내년 1월8일까지 한국노총 중집위와 중앙위원회 등을 거쳐 파기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매우 늦은 감이 있으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공개된 것은 다행”이라며 환영했다. 

다음은 31일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살아있는 권력’ 부조리 고발 세상 뒤흔든 ‘마지막 인터뷰’>
국민일보 <아듀! 2015, 새해엔 새로운 국회로 거듭나라>
동아일보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 19곳 늘어 올해 54곳>
서울신문 <한국 경제 새해엔 우뚝 솟아라!>
세계일보 <저물어 가는 을미년…우리 경제 병신년엔 활활 타오르길>
조선일보 <롯데월드타워 114층서 본 ‘2015년 해거름’…한강은 또다른 기적을 꿈꾼다>
중앙일보 <1조4000억 투입 해운업계 살린다>
한겨레 <할머니들 사진 들고 “졸속 합의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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