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축제가 열린다. 바로 연말 시상식이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뛴 배우, 탤런트, 예능인들의 업적을 평가하고, 제작진의 노고를 기리는 자리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시상식의 의미가 더해질 법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중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기는커녕 판에 박힌 듯한 수상 소감과 ‘나눠 먹기 시상’이 고질병으로 지적될 정도다. 

시상식 이후 남는 건 의상 관련 가십거리, 혹은 수상자를 둘러싼 ‘자격 논란’이다. 어쩌다 연말 시상식이 시청자들의 환대를 받지 못하고 ‘그들만의 잔치’가 되었을까. 

시상식은 한 마디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인정’의 범주에는 대중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사람)부터 휘발성이 강한 유행 탓에 주목받지 못한 숨은 보석 같은 작품(사람)까지 해당된다. 

시상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드라마, 예능, 음악 홍수 속에서 놓쳤던 작품(사람)들을 결산하며 관심을 환기시킨다. 대중성, 작품성, 다양성의 영역 모두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배우, 가수, 제작진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는 역할까지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대중의 지지가 쌓이고, 시상식의 권위도 서게 된다.

하지만 국내 영화계, 방송계 시상식은 차곡차곡 정통성과 신뢰를 쌓기도 전에 논란을 달고 다녔다. 최근 반세기 넘은 역사를 지닌 ‘대종상 영화제 파행’이 인터넷을 달궜다. 주최 측이 영화제에 불참하는 배우는 수상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지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결국 수상 후보들이 대거 불참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정통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종상 영화제 직후 청룡영화제 사회를 맡은 김혜수가 “상 참 잘 주죠”라는 ‘사이다 발언’이 회자됐지만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듀나는 “올해 청룡영화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고 그들 대부분은 노력과 재능에 걸맞은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상식의 목표가 연말 파티였고 수상 결과 역시 그 분위기를 위해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며 씁쓸한 평을 남겼다. (한겨레 칼럼 <청룡상·대종상은 무엇을 주는가>)

   
▲ 방송인 이휘재가 지난 27일 ‘2015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KBS화면 캡처)
 

영화계만큼이나 방송계 시상식도 논란으로 제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잦다. 공동수상 남발, 일종의 ‘나눠먹기’에 급급하다보니 도리어 노력에 보답하는 시상의 의미가 퇴색되기 일쑤였다. ‘중고 신인상’, ‘TV 인기상’, ‘10대 스타상’, ‘베스트패밀리상’과 같은 심사 기준과 평가가 애매한 부문의 상들이 신설되는가 하면 추후 캐스팅을 위한 특별상이 관례처럼 굳어지면서 시상식 부문이 20개가 훌쩍 넘어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상자가 시상 남발에 일침을 가하는 발언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박미선은 지난 2011년 ‘MBC 방송 연예 대상’에서 쇼 버라이어티 부분 여자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골고루 상을 다 드리는 것 같아 조금은 지루했지만 잔칫날 같아서 보면서 흐뭇하고 좋았다”며 뼈 있는 발언을 남겨 화제가 됐다. 

또한 방송사들의 시상식 규정 변경으로 시상식 신뢰도 하락을 자초했다. MBC는 지난해 대상을 시청자 투표로 결정해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섰다. 당시 “다양한 시청자들을 참여시킨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시청자 문자 투표 100%로 대상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건 주최 측의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올해 MBC는 대상에서 시청자 투표 규정을 없앴다. SBS는 최근 연기대상의 전체 방영분의 70% 이상 방송돼야 후보가 되던 규정을 50%로 낮췄다. 현재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배우 김현주가 ‘1인 3역’을 연기한다고 할 정도로 열연하고 있는데다가 마니아층의 지지로 드라마가 화제를 낳고 있기 때문. 시상 규정 변경으로 김현주도 연기대상의 유력한 후보에 오르는 기회를 얻게 됐지만 일각에서는 ‘김현주 몰아주기’가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간 말 많고 탈 많던 연말 시상식의 올해 모습은 어떠할까. 지난 26일 시상식의 스타트를 끊은 ‘2015 KBS 연예대상’은 대상 수상자 논란에 휩싸였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신동엽, 차태현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휘재가 대상을 수상하자 ‘자격 논란’이 불거진 것. 

호명 당한 이휘재도 “이 상은 ‘슈퍼맨’에 처음 출연했던 모든 아이들과 출연진들의 대표로 제가 받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서 “제 이름을 듣는 순간 댓글은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염려 섞인 소감을 표했다. 데뷔 23년 만에 대상을 수상한 그로서도 대상 자격에 대한 분분한 뒷이야기를 의식하는 듯 했다. 

이처럼 방송사들은 매년 공정성 시비, ‘나눠 먹기’라는 비판에 부담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시상식 신뢰도 상승은 물론 대중이 함께하는 ‘잔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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