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디어 교육을 교육현장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산업적 위기를 겪는 언론 입장에서도 미리어 리터러시는 위기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정치사회 교육과도 단절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프랑스, 핀란드, 영국 등 미디어 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의 미디어 교육 현황을 돌아보고 발전적인 미디어 교육을 위한 제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프랑스에서는 올해 들어 미디어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지난해까지 30명이던 지역 센터의 미디어 교사(코디네이터)의 수는 6만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지난 1월 벌어진 샤를리앱도 사건 때문이다. 이는 올해 이슬람주의 프랑스인 3명이 시사 만화 잡지 샤를리앱도에 침입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다. 총기 난사 이후 이어진 인질극까지 포함해 이 사건으로 총 17명이 숨졌다. 

이를 두고 프랑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고, 언론이 당시 인질극을 보도하는 과정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인질극을 생중계 한 언론사와 범인 인터뷰를 방송한 언론사들이 주의와 징계를 받았고 일부 언론사가 반발해 또 한 차례의 논란이 벌어졌다. 

샤를리앱도에 대한 관심은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 이후 많은 학생들이 샤를리 앱도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주제로 신문을 자체적으로 발행했다. 프랑스의 모든 학급신문은 국립 미디어교육센터인 끌레미(CLEMI)로 보내지는데 당시 끌레미는 이 주제만 모아 ‘특별판’을 발행할 정도였다. 이 특별판은 30매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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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한 편의점. 40여종의 주간지가 배치돼 있다.
 

학급신문 모아 만든 ‘샤를리앱도 특별판’ 

이처럼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학생들이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이어진 미디어 교육의 영향이 크다. 실제 프랑스 미디어 교육은 단지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닌 ‘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민이라는 건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갖고 나아가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중심에 국립 미디어교육센터 끌레미가 있다. 

끌레미는 교육문화부 산하의 미디어교육기관으로 지난 1983년 설립됐다. 미디어 교사를 양성하는 것부터 교육 프로그램 제작, 미디어 교육 활성화를 위한 ‘언론주간’과 같은 전국적인 행사까지 모두 끌레미가 담당한다. 끌레미의 특징 중 하나는 정부 산하 기관임에도 정부의 입김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30년 동안 정권의 성향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디비나 프라우 메이그스(Divina Frau Meigs) 끌레미 국장은 지난달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안전장치가 있다. 첫 번째가 끌레미의 국장은 객관적인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늘 학자나 교수가 맡는 것이며 두 번째는 독립적인 위원회(Committee Of Orientation and perfection)로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63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정부기관 인사, 미디어 분야 전문가, 일반 시민이 모두 동수로 꾸려져있다.
 
이런 기반 덕분에 끌레미는 안정적으로 미디어 교사를 양성하고 학교에서 사용될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다. 현재 끌레미가 양성하고 있는 미디어 교사(코디네이터)의 수는 무려 6만3000명에 이르며 이들은 프랑스 전역 학교의 도서관 사서 역할을 겸하고 있다. 디비나 국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디어 교사는 지역별 센터 30명에 불과했으나 샤를리앱도 사건 이후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 디비나 프라우 메이그스(Divina Frau Meigs) 끌레미 국장
 

30년 미디어 교육, 정부 성향에 휘둘리지 않아

사서를 겸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 학교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을 생각하면 안 된다. 교사 양성 과정부터가 다르다. 디비나 국장에 따르면 이들 미디어 교사는 일반 교사와 마찬가지로 5년 교육 과정을 거친다. 준비 교육 2년을 받은 다음 시험을 치르고 이후 3년 과정을 추가로 거친다. 또 이들은 일반 교과목의 교사와 함께 수업에 들어가 동시에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일반 교과와 미디어 교육의 접목이다. 

가령 역사 수업에서 1차 세계 대전을 배운다면 당시의 다양한 기사를 찾아보고 토론을 한다. 수학의 경우 기사의 그래픽이나 수치를 보고 수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기사가 되는지를 살펴보는 식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항상 두 개 이상의 미디어를 비교한다. 특정 미디어를 비판하지는 않되 여러 미디어를 비교하면서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미디어 교사는 아이들을 직접 참여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미디어 교육을 진행한다. 위키미디어(Wiki Media)와 매년 3월 개최되는 언론주간이 대표적인 사례다. 위키미디어는 위키백과와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정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운다. 언론주간도 각 학교의 미디어 교육 결과를 서로 공개하고 나누는 자리다. 올해 언론주간에는 3만5000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학급신문들은 모두 끌레미로 보내지고 끌레미는 이를 다시 교사를 교육하는 자료로 만든다. 끌레미에는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만들어진 프랑스 전국의 학급신문이 보관돼 있다. 자료보관실 담당자들에 따르면 1년에 대략 800개에서 900개의 학급신문이 끌레미로 도착한다. 지난해에는 초등학교에서 246개, 중학교에서 390개, 고등학교에서 275개의 학급신문이 끌레미로 배달됐다. 
 

   
▲ 끌레미 자료 보관실 담당자가 프랑스 청소년들이 만든 신문을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교사 양성에 5년

학급신문에 참여하면서 정보와 미디어 이해 능력을 키운 학생들은 학교 밖의 미디어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교육 출판사 플레이백(Play Bac)의 몽꼬띠디엥(Mon Quotidien, 나의 일간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7세에서 10세 아이들은 대상으로 한 쁘띠꼬띠디엥(Petit Quotidien, 작은 일간지), 10에서 1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몽꼬띠디엥, 14세에서 1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락뛰(L' Actu, 헤드라인 뉴스)로 세분화 돼서 발행된다.
 
재미있는 건 구독자들이 매일 신문의 주제를 정하는 것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플레이백은 신문이 발행되기 전에 이메일을 통해 구독자들에게 주제를 선택하게 하며 이 선택된 주제로 다음날 신문이 구성된다. 물론 같은 내용의 주제가 정해진다고 해도 연령대별로 다른 단어와 다른 사진, 만화가 사용된다. 적은 차이이긴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지난 해 몽꼬띠디엥의 유료 구독자는 13만명이었다. 

독자들의 참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플레이백은 일주일 임기의 ‘어린이 청소년 편집위원’도 두고 있다. 편집위원들의 일과는 오전 10시 편집국 회의로 시작된다. 이들은 편집국 기자들과 함께 다음날 발행될 신문의 주제에 대해 논의한다. 편집위원들은 기사에 들어갈 사진에 대해 의견도 전달하며, 그 또래에서 인기있는 책이나 영화를 기자들에게 알려준다. 미디어오늘과 편집장 인터뷰에도 이 편집위원들이 함께 했다.

프랑소아 뒤푸르 편집장은 “53살인 내가 14살 아이들의 관심사를 아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또 구독자이기도 한 아이들이 직접 주제를 정하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 함께 한 마르고(15)는 “우리의 의견이 반드시 기사에 반영이 되지는 않지만 기자들이 참고한다”며 “우리끼리도 돌아가면서 편집장을 정하고 편집회의를 거친 다음에 진짜 편집국 회의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이 몽꼬띠디엥 편집국에서 프랑소아 뒤푸르 편집장과 어린이 편집위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어린이 편집위원들이 일간지 기자에게 조언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드는 학급신문이나, 플레이백에서 발행되는 ‘나의 일간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혀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끌레미로 보내진 학급신문에는 샤를리앱도 사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 러시아 푸틴 정권 등에 관한 내용이 가득했다. 끌레미 도서관 자료실을 관리하는 까롤(Carole)씨는 “학생들은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오히려 선생님들은 염려를 한다”고 말했다. 디비나 국장은 “교사는 가장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나의 일간지도 마찬가지다. 프랑수아 편집장은 “우리는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주제를 다루지만, 동시에 모든 주제를 다룬다. 아이들이 보는 ‘진짜’ 신문이기 때문”이라며 “구독자가 어린이라고 해서 ‘전쟁에는 죽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얼리티를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플레이백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매일 4분씩 짧은 방송 뉴스도 진행하는데 최근 방송된 주제는 마약거래, 할로윈, 온실효과 등이었다. 

실제 아이들이 이런 주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미디어오늘이 이날 만난 편집위원들에게 물었다. 15살인 끌로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다룬 기사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나의일간지 지하 1층에는 지난 1년간 매달 가장 인기있었던 주제의 신문을 전시해놓는데 7세에서 10세 같은 경우는 동물에 관한 기사가 가장 인기가 많지만 그 이후 연령에서는 샤를리앱도, 아프리카 나라의 진흙쿠키 등이 인기가 많았다. 

 

   
▲ 샤를리 앱도와 관련해 올해 1월 파리에 모인 프랑스 시민들. 사진=플리커
 

“미디어 교육 효과? 집회 참가자 400만명이 증거”

이같은 교육은 프랑스 사회를 여전히 ‘읽는 사회’로 지탱하는 있는 한 축이다. 지난 30년간 대부분의 미디어 교육이 ‘종이’와 ‘활자’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디어 학교 에콜드코뮤니카시옹(Ecole de communication)가 올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젊은 층의 72%가 신문(생활정보지 포함) 을 읽고 있다고 답했고 고등학생의 24%가 신문을 읽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을 통해 정보를 접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끌레미의 디비나 국장은 “프랑스 미디어 교육의 목적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나온 정보라고 해서 기존의 미디어와 다르게 교육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교육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플레이백의 프랑수아 편집장도 “종이는 한번에 펼쳐서 여러 사진과 그림, 기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모바일로는 불가능하다. 종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프랑스 미디어 교육에 대한 자체 평가는 어떨까. 디비나 국장은 “수치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측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30년간 국민들의 시민 의식이 향상된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령 샤를리앱도 사건 이후 400만명 이상 사람들이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사회에 참여한 것이다. 끌레미가 바라는 ‘효과’는 이 같은 사회참여”라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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