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사이신? 술국에 얼큰하라고 넣는 걸 어떻게 사람 눈에다 뿌렸대 그래. 그거 얼마나 독한데.”

“그러게요.”

11월14일 자정, 서울 서소문의 한 순대국집. 민중총궐기 대회 취재를 마치고 겨우 한술 뜨려는데 아주머니가 자꾸 말을 시켰다. 마침 식당에 놓인 TV에서는 이날 경찰이 시위대에 쏜 캡사이신 액이 도로에 허연 무늬를 만들며 배수구로 흘러가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나도 저거 써봐서 안다”면서 연신 손등을 긁었다.

기자로서 순대국집 아주머니 같은 독자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단어 하나로도 전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을 거의 손실 없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반면 캡사이신이 뭔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단순한 화학 성분표 수준의 정보를 넘어 이날 시위현장의 폭력적인 분위기를 전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글을 쓰는 펜 기자의 난감함은 카메라 기자에 비해 한층 더하다. 글로 하는 정보 전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경찰 물대포가 향하는 곳은 공기가 와사비(겨자) 맛이 된다’고 표현했지만 누군가는 그 구절을 읽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초밥의 알싸한 맛 정도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맞으면 욕이 절로 나오며 키 180㎝ 장정도 반대편으로 인사를 하게 되는, 피멍 드는 경찰의 물대포도 활자로 볼 때는 통증이 없다. 하물며 그 강렬한 물줄기가 자신을 노리며 빠른 속도로 쫓아올 때의 공포를 유사경험 없는 독자가 제대로 이해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 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뿌리고 있는 경찰. 사진=이치열 기자
 

민중총궐기 대회 이후 소셜 네트워크 일각에서 ‘시위대가 폭력 시위를 한 게 문제’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아마도 이런 측면 때문이라고 본다. 부지런히 썼겠지만 독자에게 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주지 못한 것이다. 그날 현장에서 경찰이 보인 진압의 수위는 시위대의 폭력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경찰은 생중계 중인 기자의 뒤통수에 물대포를 쏘고,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사람의 머리를 조준 사격했다. 심지어는 부상자를 긴급 이송하는 구급차에도 최루액을 쐈다. 당일 15초간 경찰에게 물대포 조준 사격을 당한 한 농민은 열흘째 사경을 헤매고 있다. 물론 이런 정보들은 모두 보도가 됐다.

   
▲ 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뿌리고 있는 경찰. 사진=이치열 기자
 

대회 3일 뒤인 17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선보인 살수차(물대포) 시연에서 기자들이 보인 태도에는 이런 고민들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날 취재기자들은 표적을 세우고 거기에 물대포를 쏘라고 경찰 측에 수차례 요구했다. 진보든 보수든 소속 매체 성향과 관계없이 경찰을 닦아세웠다. 일부 취재진은 ‘방패를 들고 직접 물줄기를 맞아보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자신이 집회 현장에서 취재하며 실제로 맞아본 경찰의 물대포는 살상무기나 다름이 없는데 이를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우니 스스로 표적이 되겠다는 취지였다. 이날 경찰이 밝힌 물대포 최대 압력은 15바(bar). 소방 살수차가 내뿜는 물줄기의 2배를 가뿐히 넘는 수준이다.

   
▲ 김동환 오마이뉴스 기자
 

며칠 전 프랑스에 있는 시민기자가 자신의 프랑스 친구와 나눈 대화를 기사로 입력해왔다. 프랑스 파리가 지난 13일 이슬람국가(IS)로부터 대규모 테러를 당한 상태지만 정작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자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있었던 경찰의 진압 행태에 대해 설명하자 프랑스 친구가 매우 흥분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그가 ‘너희는 IS의 테러에는 그렇게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왜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그렇게 흥분하느냐’고 묻자 프랑스인 친구는 ‘우리는 테러 단체에 테러를 당한 것이지만 너희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테러한 것 아니냐’고 답했다고 한다. 묘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궁금함이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그 프랑스인에게 뭐라고 설명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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