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식 출범하게 된다.” (정규재TV 강의)
“왜 아직도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고 믿고 있는지…”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 토론회)

EBS 사장 내정설의 주인공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는 친일·독재 미화 등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된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저자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인 ‘1948년 건국절’ 주장을 펼쳐왔다. 스스로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 중에 뉴라이트 계열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다”(2013년 6월5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고 말할 정도다.

한국사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이명희의 뉴라이트 역사관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그는 지난 8월13일 자유경제원에서 주최한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교수는 “국민은 일본의 패망이 곧 독립이라고 생각해 아직도 광복 70주년이라고 믿는다”며 1948년이 대한민국의 건국연도라고 주장했다. 1948년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것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상하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하고, 이승만 정부 출범이 대한민국의 출발이라는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이명희 교수는 한국사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술을 부정한다.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라 여겨지는 강화도 조약에 대해 “근대화와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조선의 자주적 판단으로 맺어진 조약, 불평등 조약 아니다”라며 “조선이 일본에 종속적인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내부의 긍정적 의견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2013년 9월 1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침략행위를 합리화하고 나아가 조선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필요하기도 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전제가 될 수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이 교수는 “금성출판사는 간악한 일본과 일본을 지원한 제국주의 국가, 이완용 등 친일파 때문에 대한제국이 멸망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 나라의 멸망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려도 좋은가, 역사 속에서 국가의 흥망성쇠는 어느 나라에든 있는 일이다”(2014년 11월 정규재 TV)고 말했다. 이 역시 친일파들의 친일만행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발언이다.

   
▲ 지난 8월13일 자유경제원에서 주최한 ‘광복 67주년 기념 특별토론회’에 참석한 이명희 교수. 왼쪽에서부터 네번째가 이명희 교수. 사진=자유경제원 화면 갈무리
 

“4.3 제주 사건은 폭동” 발언에 근거 없이 노무현 대통령 흠집 내기까지
이 교수가 대표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는 2013년 한국역사연구회 등의 역사단체에 의해 부정확한 서술 및 편파적 해석이 170건 있다고 지적된 적 있다. 대표적 편파 서술 가운데 하나가 제주 4.3 사건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4.3폭동 진압과정에서 많은 경찰과 우익인사가 살해당했고,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됐다”고 썼다. 

또한 이 교수는 “건국에 반대한 남로당 사람들의 폭동이었던 것이 4.3 사건이고, 좀 문제가 되는 것은 4.3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좀’ 학살 당한 일”(2013년 6월5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 4.3사업소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경찰과 우익 인사 희생자 수는 1047명이었으나 양민 희생자는 12953명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양민 희생자보다 경찰과 우익 인사의 죽음을 더 부각하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이 교수의 발언 역시 양민 희생자의 희생에 ‘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특징은 기존의 역사 서술에 대해 ‘부정적 역사관’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2013년 9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근현대사 역사교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고 해명했다. (관련기사: 노무현 대한민국 부정발언 근거는? 이명희 “잘 모르겠다”

   
▲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사진=연합뉴스
 

역사관에 이어 정치관도 편파적…"반공이데올로기 주입 교육은 대한민국 수호한 교육 성과"
이 교수는 정치적 인식에서도 편파적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저는 종북 세력이 한국에 있고 그들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각성시킨 공로가 있다”, “현재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를 장악했다”(2013년 새누리당 의원 대상 강연), “반공 이데올로기 주입 교육은 대한민국을 수호한 교육의 성과”(광복 70주년 기념 학술회의) 등의 발언이 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해양경찰이 희생양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인가?’라는 강의에서 이명희 교수는 “최근 세월호 사건에서 해양경찰이 큰 희생양으로 전락한 것을 볼 수 있다”며 “이는 산업화 이후 대한민국의 큰 꿈이 사라지면서 희생양 만들기와 같은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면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초동대응을 포함해 제대로 된 구조작업을 벌이지 못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에 사망자가 아닌 해양경찰을 ‘희생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공주대 안에서도 이 교수에 대한 반발의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일던 2013년 9월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동문 243명이 ‘친일과 독재를 옹호하는 이명희 교수는 공주대학교를 떠나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 성명에서 이들은 “1950년대 미국사회 레드컴플렉스를 부추겼던 매카시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미래의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문은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이명희 교수가 있을 곳은 대학이 아니라 세속 정치의 한 귀퉁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동문께 드리는 글’(2013년 10월2일)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학생들 손에 들어가면 그동안의 모든 오해는 눈 녹듯 풀릴 것”이라 말했다. 새누리당의 공부모임에서 역사 강의를 한 것에 대해서는 “지식인으로서 사회활동의 일환”이라며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시간을 쪼개어 10차례에 걸쳐 공부하고자 하는 모임에 초청되어 강연한 것이 어떻게 공주사대 역사교육과의 불명예가 되겠습니까?”라고 반박했다. 

   
▲ 친일, 독재 미화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이명희는 친일파다” EBS 내부 격한 반발
최근 EBS 사장에 이명희 교수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논란인 가운데 실제로 이명희 교수가 EBS 사장에 지원해 내정설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EBS 사장으로 선임된다면 다시 공주대 내에서 반발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EBS 내부의 반발은 이미 시작됐다. 전국언론노조조합 EBS 지부는 여러 차례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이명희 교수가 선임될 경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관련기사: ‘교학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 이명희 교수 EBS 사장 유력?) 23일 EBS 지부는 ‘친일파 이명희는 교육방송 사장 응모자격도 없다’는 성명을 내고, 이 교수의 △일본군부대에 위안부가 따라다녔다는 발언 △강화도 조약이 조선의 자주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발언 △친일파 김성수 옹호 발언 △일제가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낸 것처럼 오도한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이명희는 친일파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는 1960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출생해 1983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학위를 수료하고 1994년 일본 쓰쿠바 대학교에서 콜링우드 역사철학에 기초한 ‘추체험적 역사학습’이론의 구성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 국악중학교에서 역사교사로 역사를 가르치다 2001년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겸임교수로 교수직을 시작한다. 공주대학교 역사교육학과로 2002년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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