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향년 88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민주화 운동 이력과 집권 기간 정책 등을 재조명하는 칼럼과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현 정부가 일반해고 완화 등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골자로 하는 ‘박근혜식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김 전 대통령의 ‘노동법 날치기’가 여러 언론 및 전문가 등을 통해 회자되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칼럼은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실장 칼럼이다. 김 실장은 23일 ‘YS의 노동개혁 실패, DJ 탓도 컸다’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YS 집권 시절) 제대로 노동개혁을 했더라면 외환위기도 정권교체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썼다. 

   
▲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23일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김 실장은 “금융위기의 원인은 (위기) 1년 반 전부터 추진한 노동법 개정과 금융개혁법을 김대중씨가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YS 발언을 빌려 외환위기 책임을 DJ에게 돌렸다. 

YS가 추진하려고 했던 노동법 처리가 보다 빨리 이뤄졌어야 했으며 이마저도 노동계 총파업으로 인해 속도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취지다. DJ가 대통령이 된 뒤 그가 “민주노총 위원장을 노동부 장관 이상으로 대접”했고, 그로 인해 “전 국민이 노동자의 10% 밖에 안 되는 노조의 노예처럼 될 판”이 됐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 문민정부 ‘노동법 날치기’는 ‘동아일보’를 포함한 언론들의 뭇매를 맞았던 사안이다. 동아일보는 1998년 11월 20일자 기사를 통해 “노동법 날치기 처리는 범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다”며 “해가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한보 비리 사건까지 겹치면서 문민정부는 급속히 무력해져 갔다”고 분석했다.

그때의 노동법 개정은 △정리해고제·파견제 허용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파업 기간 대체 근로 인정 △무노동 무임금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쟁점이 됐던 것은 ‘복수노조 허용’이었다. 복수노조와 관련한 OECD 규범에 따라, 문민정부는 1996년 5월 대통령 직속 기구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구성, 민주노총을 대화상대로 인정했다. 재계는 반발했다. 정부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나아가 당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은 정부안을 수정해 복수노조 허용도 ‘3년 유예’키로 했다. 

당연 노동계 반발은 극심했다. 노동법이 통과된 직후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했다. 파업은 한 달 넘게 계속됐다. 민심 역시 문민정부를 외면했다. 안기부법과 함께 날치기 통과된 노동법 개악은 YS정권 레임덕을 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97년 3월 여야는 국회 본회의를 통해 복수노조 허용, 정리해고 2년 유예, 노조 정치활동 금지 규정 삭제 등을 포함하는 ‘신노동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합법화했다. 1997년 1월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영수회담을 한 결과이기도 했다. 

   
▲ 민노총 산하 노조원 2천여명이 1997년 1월 4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안기부법,노동법 무효화'촉구대회를 갖고,국회 날치기 통과에 대한 범국민적인 투쟁을 벌여나갈것을 결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YS는 2009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시 상황에 대해 “외환위기 책임의 65%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있다”, “(DJ가) 노동법, 한은법 개정, 기아사태 등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반대했다”, “DJ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한자도 안 고치고 노동법 개정, 한은법 개정, 기아사태 등 전부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을 자기가 다 해서 환란을 극복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이는 핑계나 다름없다. 절차를 무시하는 날치기는 자충수로 돌아왔고, ‘복수노조 유예’ 조항 등은 문민정부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노동법 개악 과정에서 터진 한보 사태에서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되는 등 정권 스스로 레임덕을 가속화했다. 

김순덕 논설실장은 YS 특유의 사투리를 빌려 “세계화 개방화 유연화 같은 ‘학실한’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는 시대적 역할을 ‘학실하게’ 해냈다”고 평가했지만, ‘노동법 날치기’야말로 노동 유연화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식 노동 개악의 서곡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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