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낸 국민 3명 중 1명만이 국정화를 찬성했다. 전체 47만3880명 중 반대의견을 낸 인원은 32만1075명(67.75%)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찬성 우세’로 집계한 뒤 국정화를 강행했다. 정부의 의중이 4일자 아침종합신문에 반영된 듯 신문 9개 중 3개(1/3)만이 국정화에 반대했다.  

다음은 4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42년전 유신독재 시절로 ‘국정화 역주행’>
국민일보 <‘국정화’ 속도전…최몽룡 등 대표 집필>
동아일보 <쐐기박은 국정화…정부 속도전>
서울신문 <최몽룡 등 원로학자 6~7명 대표 집필>
세계일보 <“민주화·산업화 왜곡 없이 서술”>
조선일보 <國史교과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앙일보 <역사교과서, 상고사·고대사 늘린다>
한겨레 <역사는 권력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한국일보 <국정화 반대의견 68%는 묻혔다>

국정화 고시당일, 조선일보는 교과서보다 개콘 걱정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정부종합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정화를 확정 발표 전후로 청사 인근에는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온라인에는 국정교과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국정화는 역사 쿠데타’라는 비판까지 등장하며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가운데 조선일보 홈페이지 톱기사는 3일 오후 내내 전혀 다른 주제의 기사였다. 

조선일보 <15년간 정상 달리던 ‘개그콘서트’가 추락한 까닭>(3일자 오프라인 기사제목은 “열정 잃고 추락한 ‘개콘’…못 웃겨서 죄송합니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두 배가 넘는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정부가 강행한 국정교과서 관련 기사 대신 톱기사 자리를 4일 오전 6시 현재까지 지켰다. 

   
▲ 정부가 국정화 고시를 강행한 3일 오후 4시경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해당 기사는 최근 KBS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출연진이 ‘공무원화’ 돼 경쟁이 사라졌고, 그 결과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담긴 내용이었다. 이미 국민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함께 터지는 연예 관련 소식에 대해 ‘사건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황이다. 역사교과서보다 개콘은 중요했을까?   

2017년 3월 배포, 시간이 없다

4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국정화 관련 기사는 정부의 입장을 잘 정리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총리까지 직접 나서 현행 검정 교과서의 집필진이 특정 단체(전교조, 민족문제연구소 등) 소속이며, 북한을 적대시 하는 내용이 부족하며,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지 않아 99.9%가 편향됐다는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외면한 이날 보도는 고시 당일 개콘 톱기사만큼이나 정부친화적이다. 

황교안 총리의 업적도 짚고 갔다. 조선일보 "황우여 대신 나선 황교안"에서는 “정부가 ‘황교안’이란 브랜드를 내세워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여기서 국가 정체성이란 ‘색깔론’공세를 의미하며 황교안 총리가 법무부 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어 낸 사건도 소개했다.

정부는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등 6~7명이 대표집필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까지 약 서른 명의 집필진을 모아 내년 이맘때까지 집필을 완성하고 3개월 간 감수해 2017년 3월에는 학교 현장에 주입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조선일보 등은 “독립운동사와 민주화 등의 역사를 왜곡없이 서술하겠다”는 국민 대다수가 신뢰하지 않는 말도 비판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최몽룡 명예교수는 1987년 상고사학회를 창설해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정부가 상고사·고대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수능 근현대사 문항은 교과서 비중이 줄어든 만큼 함께 줄어들 예정이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 비중을 줄이겠다는 작정이다.  

   
▲ 4일자 조선일보 1면
 

확정했으니 잘 만들어보자? 

정부가 국정화를 검토하고 행정예고하는 동안 다수 역사학자들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했다. 집필진 30여명을 구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참가자들의 신상털이를 우려한 정부는 6~7명의 대표집필진만 공개한 뒤 나머지 집필진 명단은 비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비공개 인사에 대해서는 교과서 완성본이 나온 뒤 공개하겠다는 게 국사편찬위원회의 방침이다. 

정부가 '불도저식'으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수 언론이 비판했지만 국정화를 확정했으니 이제부터 발목잡지 말자는 식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교과서 국정화가 국정 블랙홀이 돼선 안 된다"에서 “대한민국은 정치권이 ‘교과서 블랙홀’에 빠져 예산과 법안 처리를 미뤄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국정화 비판을 접자는 목소리를 냈다. 

야당에 대해서도 비판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중앙일보는 위 사설에서 “야당은 얼마든지 국정화 강행을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 현안들을 전부 제쳐놓고 올인 할 사안은 아니”라며 “장외투쟁 대신 국회 상임위에서 따지고 공청회나 토론회에서 반대여론을 수렴해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 4일자 중앙일보 사설
 

반대여론을 수렴해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순리일까?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국정화 방침을 이틀 앞당겨 고시하면서 법으로 정한 행정절차마저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견제출 기간이 종료된 지 불과 11시간 만에 고시를 강행했고, 통상적인 3일정도 걸리는 ‘종이관보’가 아닌 즉각 할 수 있는 ‘전자관보’로 게시해 시간을 단축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의견제출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거의 유일한 창구인 교육부 역사교육팀 팩스를 꺼뒀으며,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올해 들어 국정화 관련 단 한차례의 공청회나 토론회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의 두 배가 넘었지만 교육부는 연서명한 반대 의견의 경우는 1건으로 처리해 찬성 여론을 비중 있게 받아들였다.

   
▲ 4일자 경향신문 만평
 

국정화 강행 주역 6인
박근혜·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전희경 

한겨레는 2면에서는 박근혜·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 경향신문은 6면에서 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전희경를 각각 국정화 강행 5인의 주역으로 꼽아 사진과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다음은 이 신문들이 꼽은 국정화 강행 주역들의 주요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 (10월27일 시정연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번 역사전쟁에서 우리 보수 우파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 (10월31일 새누리당 경기도당 등반대회)

황교안 국무총리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 현행 검정 발행제도는 실패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11월3일 국정화 확정고시 기자회견)

황우여 교육부 장관 “과거 학생시위 때문에 역사학 제대로 되지 않았다.” (10월20일 대교협 간담회)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교과서에 다양성을 어떻게 집어넣나. 그건 안된다.” (10월15일 KBS 인터뷰)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경제·문학·윤리·사회교과서도 불평과 남 탓, 패배감 심어”(10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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