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 ‘극한직업’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신주도 오르고 탄광에도 들어간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용은 보는 게 아니라, 저 속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 동료를 생각한다. 고압철탑을 같이 올라가서 같은 높이의 앵글에서 찍어내는 거다. 극한직업을 찍는 PD가 실제 극한 직업이라는 현실을 생각해주길 바란다.”(독립PD협회 복진오 권익위원장)

복진오 권익위원장의 말처럼 독립 PD들 다수가 4대 보험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계약서조차 체결하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탓에 독립 PD들은 수입이 불안정하며 인권침해적인 상황에도 자주 노출된다고 밝혔다. 독립 PD들의 노동인권 실태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독립PD협회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독립 PD 1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면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고 답한 독립 PD는 23.4%인 41명에 그쳤다. 응답자의 474.% 구두계약을 체결한다고 답했으며 특별한 계약이 없었다고 답한 이도 29.2%에 이른다. 

문제는 계약서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3년 4월 콘텐츠산업진흥법 제25조에 의해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 3종을 마련해 발표한 다음 계약서 체결을 권고했다. 하지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75명 중에 171명(98.3%)이 표준계약서 존재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알고있다는 답이 3명이며 무응답은 1명이다. 

 

   
▲ 안주식 한국PD연합회 회장이 17일 열린 독립 PD 노동인권 긴급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그리고 응답자 98.4%가 이 표준계약서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 관계자는 “정부 권고사항으로서 강제할 수 없는 표준계약서는 현장에서 무용지물애 불과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라며 “따라서 표준계약서를 제정하는 것을 넘어서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독립 PD들은 4대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만 가입이 가능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경우가 더 심각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답한 사람은 175명 중 각각 12%와 13.1%에 불과했다. 반면 이들 보험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고용보험은 82.7%, 산재보험이 92%였다.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이어졌다. 특히 임금이 그렇다. 독립 PD들은 현재 노동환경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낮은 임금을 꼽았다. 175명 중에 월급으로 임금을 지급받는다고 답한 이는 44%에 불과했다. 대부분 응답자는 회당 지급받는다(47.4%)고 답했으며 주급으로 받는다는 응답자도 4%다. 

임금 체불 비율도 높았다. 이 문항에 대해 175명 중 121명이 응답했는데 임금 체불이 있다고 응답한 이는 78명(64.4%)에 이른다. 78명 중에 1000만원 이상 체불을 경험했다고 답한 이는 17명이며, 2000만원 이상 체불을 경험했다고 답한 이도 13명에 이른다. 프로그램이 제작 전 또는 제작 도중 취소됐을 경우에도 제작비를 항상 받았다고 답한 이는 168명 중에 13명(7.7%)에 불과했다. 

MBN 폭행사건 으로 불거진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응답자 123명 가운데 104명(84.6%)가 인격무시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61명이며, 이 가운데 5회 이상 욕설을 들었다고 답한 이는 19명이다. 기타 응답에는 ‘매일 시사 때마다’ ‘프로그램, 시사 때마다 무수히 많음’ 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인권침해 가해자로는 주로 방송사 PD나 직원이었다. 

이에 대해 독립PD협회와 한국PD연합회, 언론노조 등은 “외주제작에서 공정거래구조를 확립할 수 있는 정책, 권고가 아니라 강제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외주제작 가이드라인과 표준제작비 도입 등을 촉구했다. 표준제작비는 프로그램 장르에 따라 일정 제작비를 정해놓은 것이다. 또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비정규 제작인력의 집합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이나 단체를 통해 단체교섭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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